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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속살, 후퉁 탐색기

-  옛 것의 장소에서 쇠락의 아름다움을 느끼다.

오늘은 북경 마지막 날. 오늘 저녁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낯선 북경에서의 첫날은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면 마지막 날은 역시 아쉬움이다. 



나의 최고의 장점은 빠른 현지 적응력이다. 달리 말하면 탁월한 생존력이랄까. 

어쨌든 오늘 아침은 전날과 달리 일찍 일어났다.

항상 여행지의 마지막 날은 숙소 주변의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다. 동네 슈퍼에서 산 빵과 따듯한 차 한잔으로 빈 손을 달래고 숙소를 나선다.

북경의 첫날. 

공항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운전수에게 모든 운명을 맡기고 새벽에 도착한 이곳. 그 새벽에 나는 얼마나 참담하고 당황스러웠던가. 그때 스페인의 여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아침까지 후퉁 거리를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과일 행상 트럭과 골목길 문방구


오늘 아침은 그 골목을 내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한 마리 쥐새끼로 만든 미로를 복수의 다짐으로 자근자근 밟아줄 것이다.


북경의 아침 골목은 역시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분주하다. 이미 시작된 출근과 등굣길. 늦가을 후퉁은 젖은 낙엽들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골목 곳곳에 심은 나무들이 손을 쩍쩍 벌리고 낡은 가옥의 지붕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기어 다닌다. 


나는 지난 새벽의 악몽스러웠던 거리를 뜨올리며 이리저리 거닐어 본다. 역시 아주 오래된 주택가이다. 대부분 낡은 단층 가옥이고 시멘트와 벽돌로 벽을 세우고 기와나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었다. 내 어릴 적 70년대 동네와 유사하다.

오래전 옛날 그대로의 집들이지만 여기저기서 집수리를 하고 있고 각종 건축자재들을 골목 구석에 쟁여 놓았다. 어느 곳에서는 하수관 설치 때문인지 여러 사람들이 곡괭이를 들고 땅바닥을 파고 있고 소형 불도저도 보인다. 그런데 공사 인부 대부분이 중늙은이들이다. 무거운 곡괭이를 들고 맥없이 땅을 헤치고 있다. 그 사이를 위태롭게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북경 골목 역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여지없이 있다. 


진정한 북경의 모습은 후퉁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할머니가 아주 무거운 보이는 수레를 끌며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박스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스렁 거리고 낡은 옷들이 나뭇가지의 빨랫줄에서 죽은 시체처럼 걸려 있었다. 


일찌감치 동네 가게들은 문을 열고 장사를 개시했다. 작은 문방구도 어린 손님을 맞아 학용품을 팔고 어떤 식당은 나무 밑에 야외 천막을 치고 프로판 가스와 큰 솥, 드럼통을 설치해 놓은 채 한쪽에서는 반죽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빵을 굽거나 찌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동네 사람들이 빵을 사고 있었다.

과일 가게에서는 귤, 사과, 바나나 등과 채소류를 팔고 있다. 나는 주인아줌마와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귤 한 봉지를 사고 우물거리며 골목을 계속 배회했다.



벌써 등교를 마친 학생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골목으로 퍼져 나온다. 조금씩 그 새벽의 악몽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이 구글 맵에서 잘못 가르쳐 준 호텔의 주소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 담벼락에 우두커니 선 채 지난 새벽을 생각했다. 그리고 피식하는 헛웃음이 나왔다. 바로 학교 담벼락 밑에서 호텔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골목 몇 굽이를 돌고 돌자 스페인 여인을 만났던 가게도 눈에 보였다. 그날은 시끌벅적한 심야 술집인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샌드위치도 함께 파는 햄버거 가게였다. 심야에는 술도 파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평범한 페스트 푸점이었다.

화려한 고층 빌딩의 북경 시내와 다리 후퉁은 쇠락과 소멸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후퉁 거리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행객들을 위해 골목 곳곳에 bar와 누들 국숫집, 전통 가옥식 소형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술집은 철책문으로 닫혀 있고 빈 맥주병들이 일렬횡대로 줄지어 있다. 벽면에 허술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고 주인장의 빨간 속옷과 허름한 바지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그리고 무심하게 서 있는 자전거 한대. 이곳 후퉁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북경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검은 벽돌로 쌓아 올린 아치형 대문. 그 위에 붉은색 기왓장을 올리고 대문을 활짝 열더라도 절대 안쪽의 내실은 볼 수 없는 구조들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골목의 특정 구역마다 공중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처음에는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공공지역에 있는 화장실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여기는 주택지역이 아닌가. 그래서 조금 의구심과 호기심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아직 북경 외곽지역에 있는 서민동네에는 아직 화장실이 집집마다 갖춰 있지 않은 듯했다. 


간혹 동네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공중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 것이었다. 워낙 중국 화장실이 해외토픽감이다 보니 중국 당국에서 공중화장실을 만들어 담당 청소원들을 배치하여 주민들의 청결유지에 앞장서는 듯했다. 후퉁 지역의 건물 외벽에는 거미줄처럼 전깃줄이 엉켜 있고 각종 건축 자재들이 문 밖에 찌부려져 있다. 집집마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이 주차돼 있고 대문 앞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달아 이불을 말리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폭스바겐 자동차들이 참 많다는 점이다. 분명 외국차인데 여기서는 한국의 아반떼처럼 너무 흔하고 흔하다는 것이다. 아무 곳에나 정차돼 있고 어떤 차는 수북이 낙엽을 뒤집어쓰고 폐차처럼 늘 부러져 있다. 


재미나는 것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 자동차와 오래된 자전거 인력거들이 골동품 마냥 골목에 숨겨져 있다. 후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 같다.


북경의 노인들도 하수관 공사, 폐지 줍기 등 여전히 고단한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 바퀴 순회를 마친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소녀시대의 광팬인 직원에게 안녕을 고하고 배낭을 메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은 저녁 8시이다. 남은 하루 동안 루쉰 박물관을 들러 이화원까지 유람한 후 북경 비행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쉰 박물관은 2호선 푸청먼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루쉰 박물관을 찾은 이유는 특별히 존경하는 문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나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북경에 온 김에 한번 찾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구글 맵을 일찌감치 작동시켰다. 그러나 이내 의문과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는 방향이 아닌 듯했다. 나는 5분 정도 걷다가 다시 전철역 방향으로 되돌아 갔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의심스러울 때는 물어보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 어제처럼 무작정 길거리를 헤매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예상외로 루쉰 박물관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안내 표지판에 따라 대략 5분 정도를 걷자 박물관 정문이 보였다. 입장료는 무료였고 외부 공사가 있는지 다소 분주한 모습이었다. 

박물관은 아주 조용했다. 박물관 마당에는 루쉰의 원고지과 얼굴을 조각한 장식품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1층에는 어느 화가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자 루쉰 전시관이 있었다. 방문객이 대략 두세 사람 정도 있었고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루쉰의 친필 원고와 저서, 당시 활동 사진, 필기도구, 각종 의류 등 심지어 무수한 작품들을 쏟아 내었던 책상과 의자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아큐정전의 친필 원고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큐정전의 첫 페이지인 듯 제목과 함께 가로 쓰기 형태로 글이 이어져 있었다.


화선지 위에 만년필로 쓴 듯한 유려한 글자들이 흘림체 형태로 미끄러져 있고 군데군데 교열을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루쉰 박물관의 방문의 가치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했다.


나는 다시 푸청먼역에서 북경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이화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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