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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리툰에서 만난 꽃 파는 할머니

- 중국 북경 방문기


나는  APM 쇼핑몰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안개가 섞인 밤거리는 약간 쌀쌀했다.


아직 7시가 되지 않은 초저녁이지만 거리에는 행인들이 드물었다.

대로변에는 환한 야광빛을 띤 명품 샵들이 빛나고 있었고 쉴 새 없이 자동차들은 공포에 질린 아이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유리와 철 기둥으로 조합된 현대식 건물과 전통 가옥의 지붕을 머리에 이고 중국식 대문을 단 호텔도 보인다. 

대륙의 건물답게 웅장하고 거대하다. 어떤 건물은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르네상스식 호텔이다.                   


나는 북경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누른다. 대로를 지나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서있고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거나 가게에 들러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있다. 나는 오늘 밤만큼은 한국인이 아니라 북경인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눈빛을 보고, 그들의 말소리를 듣고자 하였다. 


여행은 현지인들과 멀리 떨어져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근접하여 현지인들과 짧은 대화 혹은 손짓과 몸짓을 조금이라도 나눌 때 자신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왕푸정 거리로 돌아와 지하철로 이동했다. 오늘 밤 마지막 여정은 싼리툰 빌리지이다. 북경의 이태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만큼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고 다양한 술집과 쇼핑몰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다. 딱히 여기에 갈 이유는 없었으나 북경의 밤문화 속에서 베이징의 속살을 보고자 하였다.

지하철 10호선 퇸제후역에서 내려 7~8분 정도 인도를 따라 걸었다.

멀리 파란색과 빨간색이 다소 촌스럽게 치장된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건널목을 건너자  UNI CLO와 아디다스 매장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흔히 보는 메이커이다.             


그 매장 사이를 들어서자 애플 스토어가 있다. 도대체 북경에는 애플 스토어가 몇 개란 말인가. 광장에는 젊은 청춘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밀회를 나누고 있고 나와 같은 여행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이따금 사진을 찍는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형형색색의 쇼핑 몰들이 반딧불처럼 빛나고 있고 외국인들을 위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맥주집, 커피 샵, 레코드 점, 피자 집, 심지어 섹스 샵까지 붉은색 전등을 밝히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손님들은 외국인이었다.  그야말로 서울의 이태원이었다. 북경의 한 복판에 소비와 쾌락의 업소들이 난무하고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부담감없이 즐기는 모습을 보니 중국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2차선 정도의 골목길을 걸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목요일 저녁 8시 정도가 지나는 시간인데 술집과 음식점마다 외국인들이 넘쳐 난다. 심지어 테라스 바깥까지 밀고 나와 맥주병을 부딪히며 북경의 밤을 즐기고 있다. 여기가 베이징인지 뉴욕인지 알 수 없다

간혹 삐끼 같은 중국인들이 전봇대 옆에 서서 호심탐탐 어리숙한 여행객들을 노리고 있다. 벌써 2명째 내게 다가와 치근덕 거린다. 나는 골목길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다시 유니클로 방향으로 나오자 전방 1미터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 모금함을 앞으로 밀며 지렁이처럼 땅바닥을 기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연민의 감정 대신 놀라움과 당혹감이 앞섰다. 그동안 다녔던 왕푸정, 스치하이, 첸멘다제 등에서 만날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중국 북경 거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문득 싼리툰 빌리지로 걸어오는 동안 도로 구석진 곳에서 만났던 몇몇의 노숙인이 생각났다. 몇 겹의 옷으로 헐벗은 몸을 감싼 채 웅크리고 있던 모습. 거기에는 여성도 있었다.


나는 장애인의 오체투지와 같은 동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루를 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지상에 내려놓고 빈 모금함을 밀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비로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은 화려한 쇼핑몰과 다채로운 서양식 술집들이 즐비하여 이국적인 풍경들을 연출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북경의 슬픈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어떤 할머니는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은 술집 앞에 앉아 털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며 꽃을 팔고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지만 한 손에는 돈을 받을 수 있는 바가지와 또 다른 한 손에는 노랗고 빨간 꽃을 들고 초점 흐린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북경의 밤 속에서 꽃 파는 할머니가 애처롭게 앉아 계셨다.



거의 유니클로 매장 쪽으로 나오는 데 주변 풍경과 달리 샛노란 실내등이 비치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서점 '페이지 원'이었다. 왕푸점 서점과 달리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실내 장식이 되어 있었다. 나는 1층으로 들어가 염탐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책 구경보다 어떻게 서가를 구성하고 꾸몄는지가 궁금했다. 


전체적으로 책장은 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어 자연스러움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천정의 조명은 지나치게 밝지 않아 실내를 은은한 분위기로 만들었으며 각종 문구류와 찻잔 등 예쁜 소품들도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책 진열은 상당히 깔끔하고 질서 정연하게 그러면서도 미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실내 공간은 굉장히 넓은 편이었고 역시 외국인들도 볼 수 있었다.

페이지 원은 홍콩의 쇼핑 몰 단지인 하버시티에도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싱가포르의 마크탄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 지점이 있다고 한다. 사실 홍콩의 페이지 원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 뭔가 별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 다소 어두운 실내였지만 고급스러운 책장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고 한없이 빛나던 다양한 책들. 그곳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물론 북경의 페이지 원도 준수한 편이지만 홍콩에 비할바는 아니다.


나는 다시 바깥으로 나와 전철역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길 건너편에 이상야릇한 상점을 보았다. 아주 넓은 유리창 안에 주황색 불빛이 요란하게 빛나면서 벌거벗은 여인이 몸을 흐느적거리며 봉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이 문화의 전람 서점 앞에서 버젓이 음란 퇴폐적인 춤사위를 과시하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잽싸게 호객꾼들이 내게 다가오더니 술 한 잔 하라고 꼬신다.

쇼윈도를 멍청하게 주시하고 있으니 어떤 삐끼들이 그냥 지나치겠는가. 호구하나 물었다 생각하고 계속 추근 된다. 혼자 여행할 때 항상 이럴 때 위험하다.

빨리 이 지역을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이놈은 한 100미터 정도까지 계속 따라붙었다. 의지의 중국인이다. 9시를 넘어 시간 북경의 마지막 밤.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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