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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공원에서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다

- 중국 북경 방문기


다시 북경으로 돌아왔다. 안개 흐르는 차가운 장성에서 따듯한 버스 안으로 돌아오자 이내 잠이 스르르 들었다.




만사태평이다.  내가 낯선 곳에서 불상사를 당하더라도 그다지 도와줄 이 없는 막막하기 그지없는 장소에서 꾸벅 잠이 들다니.

북경 시내로 접어들자 역시 도로는 꽉 막힌 상태이다. 덕분에 질주하는 자동차를 구경할 수 있었다.

택시는 100% 현대 자동차 마크를 달고 달린다. 그 외 폭스바겐이 주종을 이루고 벤츠, 도요타, 푸조 등 다양한 외산차가 뒤섞여 달린다. 자동차를 보고 있노라니 아침 골목길에서 일어난 접촉사고가 생각이 났다. 지하철 타기 위해 대로로 나와 길을 건너려는 순간 무엇인가 내 왼쪽 허버지를 툭 하고 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골목길에서 줄지어 나오는 어린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접촉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승용차는 푸조 2008이었다. 한국에서 있을 때 요놈을 살까 하고 고민하고 견적까지 알아본 사랑스러운 자동차인데 재수 없게도 북경 골목길에서 나를 치려했던 것이다. 

나는 순간 운전좌석을 보았다. 아줌마가 핸들을 붙잡고 있었다.

근데 전방만 주시한 채 완전 나를 개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의 차와 부딪힌 것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나 알바 아니다는 막무가내 정신인지.

나는 순간 화가 나서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중국말은 되지 않고  한 손은 핸들을 가리키고 한 손을 눈을 가리키며 비언어적 표현으로 '운전 똑바로 해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녀는 웬 거지 나부랭이를 보는 듯 뭐라고 쏼라쏼라 말을 한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입술 모양을 보니 절대 미안하다는 표현은 아닌 듯했다.

나는 그 순간 더욱 열이 받쳐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한국말로 대차게 욕을 퍼붓고 말았다. 이 동네에서 생판 처음 이상한 언어를 들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옆 좌석에 남편인 듯한 사람도 나를 쳐다본다. 나는 기죽지 않고 조선인의 기백으로 열나게 항의를 했다.

그러나 힘만 빠질 뿐....



오늘 아침때 당한 사고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사실 북경의 교통질서는 보행자 중심이 아니라 운전자 중심이다. 특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 운전자들은 절대 보행자를 조심하거나 배려하지 않는다. 파란 불임에도 불구하고 차 머리를 내밀며 스멀스멀 지나가려 한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파란 불만 믿고 건너다가는 낭패 볼 수 있다.


다시 덕승문으로 돌아왔다.

오후 3시 정도를 넘어서는데 스모그 때문인지 날이 어두워지는 듯하다. 하루 동안 빵 한 조각 먹은 것이 유일한 식사였다. 장성의 안개를 빨아먹은 몸은 축 늘어지고 뱃구녕에서는 천안문 광장에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주저했다가는 해가 저물고 만다.

계획한 대로 천단공원으로 가야 한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톈탄둥먼 역에서 내렸다.

천단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800년 된 측백나무가 동방에서 온 샌님을 호위하듯 기년전까지 도열해 있다.

수령 800년된 측백나무의 도열


비록 다리는 지치고 아프지만 아니 걸을 수 없다.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는 않고 간혹 외국인들의 금발머리도 보인다. 대략 200미터를 걸었을까.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손사래를 치며 엉거주춤 춤을 추고 있고 남편인 듯한 한 사내는 피리를 불고 있다. 관객의 유무에 관계없이 댄서는 춤을 추고 무아지경에 빠진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기년전까지 칠십이 장랑이 쭉 이어져 있다. 그런데 옹기종기 노인분들이 모여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가까이 가서 보아하니 마작, 카드, 장기, 바둑, 악기 연주 등 그야말로 놀이마당이었다. 저마다 난간에 걸터앉아한 게임식 하고 있는데 서울발 파고다 공원이랄까.

고함을 치기도 하며, 시끄러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저마다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장랑이 끝나는 부분에서 문턱을 넘어서자 넓은 광장에 거대한 원통형 건물이 우뚝 서있었다.

천단 공원의 상징, 기년전. 황제가 매년 풍년을 기원한 장소


자금성의 태화전처럼 3단의 기곡단 위에 3층의 청색 건물은 웅장함과 미려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중국 대표의 건축물이다.

드넓은 박석의 광장 위에 천공을 향해 살짝 솟은 푸른 지붕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는 원형 둘레를 빙 돌며 나만의 소원을 빌어본다. 그리고 내부의 모습은 살짝 엿보았다.


사계절과 24절기, 우주의 생성원리를 상징하는 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하늘의 아들이 지상의 인간으로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하늘의 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 천안문 광장의 7배인 천단공원은 기년전 외에 원구단과 황궁우, 재궁도 볼만하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기년전 밖에 보지 못했다. 사전 정보의 미비, 계획 없는 여행 방식의 실수이다. 뒤늦게 관광 안내책을 보고 후회했다.

기년전 뒤편에 있는 황건전 그리고 편액


다시 동문으로 나오자 그제야 배고픔이 밀려온다.

또 무엇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도심에서 혼자만의 여행은 항상 먹는 것이 고역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왕푸정 거리의 APM 쇼핑센터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어제는 북경식 일본 라멘을 먹었는데 혹시 다른 메뉴가 없나 싶어 이리저리 식당가를 헤매고 다녔지만 혼자서 먹을 수 있고 입맛에 맞는 메뉴는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어제 먹었던 식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번에는 라멘과 밥, 음료수 그리고 반갑게도 김치 비슷한 무침이 있는 세트를 주문했다. 음식값은 50위안 정도. 꽤 비싼 편이다.

먼저 라멘이 나왔다. 어제 먹었지만 여전히 맛있다. 그리고 볶은밥. 나는 허겁지겁 밀어 넣기 시작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나기 그지없다. 그리고 차가운 음료수 한 잔. 백미였다.                              

나는 든든한 배를 툭 내밀고 왕푸정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두려울 것이 없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번화가의 불빛은 낯선 여행객을 위무하듯 거리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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