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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전에서 서태후를 만나다

- 중국 북경 방문기


배운전이다. 장랑을 따라 걷다 보면 아주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배운문이 바로 나온다. 

암수 청동 사자상이 무서운 기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청동의 껍질을 깨고 갈기와 꼬리를 뒤흔들며 덤빌 듯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이화원의 정전 배운전이 나타났다. 돌다리와 작은 연못이 나오고 연이어 덕휘전과 불향각이 만수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별개의 전각이 아니라 마치 층층 구조인 듯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 있다. 배운전의 편액은 만주어와 한자를 동시에 새겨 두었고 역시 붉은 지붕과 기와, 황금빛이 두드러진 단청이 화려하다. 월대와 계단은 온통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해 두었다. 철망을 뒤집어쓴 청동 용과 봉황이 배운전 앞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화원의 정전 배운전, 화려한 단청이 아름답다

배운전 중앙에는 서태후가 앉았던 옥좌가 보인다. 자신이 생일 때마다 문무백관과 황족들의 축하인사와 생일 선물을 받았던 곳이다.

배운전 뒤편은 덕휘전이 우뚝 서 있다. 양 옆의 장랑을 통해 오를 수 있다. 워낙 경사진 곳이라 그렇게 사람은 붐비지 않는다. 이곳 장랑도 신화 속 이야기와 복숭아, 사슴, 토끼 등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오래전 전설 속 풍경을 거니는 듯 과거의 시간이 내 몸안으로 들어왔다. 

                    


덕휘전에서 다시 불향각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름모꼴의 114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온종일 걸어 다닌 발바닥과 무릎이 비명을 지른다. 애써 왼발과 오른발을 교대로 계단 위에 올리며 힘들게 올라섰다. 역시 불향각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원함 그 자체였다. 


비록 곤명호 물결 위에 젖은 스모그로 인해 푸른 물결과 선명한 별궁들의 자줏빛 지붕을 볼 수 없었지만 마치 이화원을 점령한 무사처럼 밑에 납작 엎드려 있는 덕휘전과 배운전을 거만하게 내려 보았다.


불향각 위에서 바라 본 곤명호. 뿌연 스모그 속에 붉은 지붕이 날아 오른다


불향각은 8 각형 3층, 4겹의 처마 구조의 목탑으로 티베트 라마 불교 사원의 모습이다. 뒤편에는 북궁문에서 만수산으로 올라오며 거쳐온 지혜해가 보였다. 사실 지혜해에서 바로 불향각으로 내려와서 배운전으로 갔다면 조금 쉽게 이화원을 구경했을 것이다. 지도 한 장 없이 길 따라 내려가다 보니 서궁문으로 나갈 뻔했던 것이다.


티벳 라마 불교 양식의 불향각, 그 속에 5미터의 천수천안 보살이 있다


나는 불향각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리고 너무너무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바로 눈 앞에 높이 5미터의 천수천안 보살이 염화미소를 띄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생의 애욕과 집착, 자아에 대한 부정으로 한 곳에 천착하지 못하고 국외로 떠도는 나를 위무하듯 따듯한 미소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12개의 얼굴, 36개의 눈, 24개의 팔이 달린 불상이 999개의 꽃잎이 조각된 연화보좌 위에 서 있다. 나는 두 손으로 합장을 하고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이 생애 외롭고 쓸쓸한 가난한 자로 살아가는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길.......내가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게 도와주기를. 그리고 나의 가족들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며 나는 오랫동안 기도를 올렸다.



왠지 가슴속에서 터진 서글픔이 목울대를 타고 울라 왔다. 

나는 다시 지혜해쪽으로 넘어와 산길을 타고 내려갔다. 근데 웅장한 누각이 보였다. 그런데 어디서 본듯한 형상이었는데 조금 생각해 보니 처음 북궁문으로 들어와 보았던 사대부주였다.

잠시 지리 감각을 잃어버린 듯 바보같이 나는 만수산 뒤편에서 앞편, 다시 앞편에서 뒤편으로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다. 사대부주에서 곧장 나가면 북궁문과 지하철 역이 나올 것이다. 아직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화원에서 뭔가 보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화원 안내 책자에서 보았던 그 풍경을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지도를 펼치고 다시 안내로를 따라 걸었다. 길은 단정하게 주변의 나무와 잘 어울려 있었다. 대략 20분 정도 걷자 버들나무 줄기가 길게 연못으로 늘어뜨리고 연꽃들이 물 밖으로 푸른 잎을 내밀고 있다. 연못을 따라 누각들이 수면과 접하거나 수면 위에 기둥을 내리고 있다.

궁궐 속의 궁궐, 해취원


바로 해취원이었다. 궁궐 속의 궁궐이다. 나는 다시 돌담을 끼고 걷기 시작했고 S자 형태의 돌문을 빠져나와 걷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 눈 앞에 다시 안개 젖은 곤명호가 나타났고 좌측 방향으로 옥란당이 나타났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낙수당이었다. 나는 곤명호 물길이 넘실거리는 난간을 따라 걸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이화원 안내 책자에서 보았던 그 풍경의 핫 스폿이었다. 


이화원, 곤명호 일대의 옥란당과 문창각, 멀리 중항각이 보인다


여기저기서 한국말도 들렸다. 나는 태화전에서 주마간산식으로 대충 보고 옥란당과 문창각을 지나 지춘정까지 나아갔다. 나는 그 지점에서 멀리 중항각을 뒷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을 부리나케 찍었다. 점차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조금 더 일찍 사전 계획을 가지고 왔다면 알차게 구경하고 갔을 테인데 약간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래도 유명 유적지는 사전 지식을 충분히 인지한 뒤 찾아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이화원 언제 다시 내가 북경을 방문할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도 떠난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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