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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오이다바로 가다

- 동경만의 흐린 하늘, 그 아래 레인보우 브릿지(사진출처:JNTO)

역시 여행의 첫날은 무척 고단하다.



전날 밤 11시 30분까지 일을 하고 뒤늦게 주섬주섬 여행가방을 챙기며 잠깐 눈을 부친 후 5시 30분 인천공항발 새벽 버스를 타고 떠난 동경 여행.

새로 구입한 캐리어는 어색하게 뒤꽁무니에 부딪히며 따라다녔고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인천 공항은 여전히 떠나고 돌아오는 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떠난 다는 것은 지난날의 힘겨움과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구의 행동이다.

나의 일 년의 절반은 위험한 것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로 인해 온몸의 에너지는 방전된 채 62kg의 몸은 흐느적거리었다. 몸은 아무에게 샌드백처럼 사정없이 몰매를 맞았고 때론 예리한 칼날과 송곳으로 나를 베고  찔렀다.


인간에 대한 의심과 분노. 사소한 것에 대한 염증과 짜증이 예민하게 일어날 때, 더 이상 마음의 오아시스를 찾을 수 없을 때 여행은 좋은 치료제이다.


그 어떤 낯선 곳으로 떠나 은폐된 공간에  스스로를 유폐시킨다면 고독 속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언어와 먹거리, 문화와 풍습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떠나 깊은 골목과 낯선 거리를 배회하기를 즐겨했다. 진정 그곳에서 오롯이 나 혼자 존재함을 인식할 수 있었다.

불과 2시간 만에 나는 국경을 넘어 동경의 하늘에서 오후의 구름을 만나고 있었다. 도쿄의 구름은 뭉게구름이 아니라 먹구름이었다. 창 밖으로 옅은 검은 천들이 흘러간다.

나리타 공항의 활주로가 거대한 치마폭으로 보이고 주변의 목초지들은 한적한 시골의 풍경들이다.

여기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혼자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젊은 친구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캐리어를 옆에 끼고 어리 중절하는 중년의 남자는 나 혼자 뿐이다.

일본 텔레비전 타워, 하루 5회 정해진 시간에 맞춰 시침과 분침, 기계 인형들이 춤을 춘다


왜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혼자되고자 하는 것인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뜨올랐다.

나리타 공항 역 매표소에서 억지웃음을 보이며 호텔 약도를 보여주자 아름다운 여사원은 방긋 웃으며 동경 전철도를 보여주며 친절하게 환승해야 할 역과 하차해야 할 역에 형광펜으로 표시해 주었다.

대략 55분 정도 전철을 타고 오시아게 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므로 항상 긴장된다.

여하튼 숙소까지 도착을 해야 안심할 수 있다. 전철 안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도 혼자 여행하는 비슷한 또래는 없다.

창 밖의 풍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윽고 네모 전광판에서 환승역을 알린다. 또 모험의 시작이다. 동경의 전철은 상상 그 이상으로 복잡하다.


단지 한 번 환승을 하고 목적지인 호텔까지 도착하면 되는 단순한 이동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본 동경 지하철 노선은 뱀무늬 마냥 수직과 수평선, 대각선이 교차하며 어지럽게 늘려 있었고 낯선 지명은 발음조차 어려웠다. 전체 노선이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로 형형색색으로 구분된 전철 노선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환승역에 내린 사람은 나뿐이었다. 같은 칸에 동승한 동포 남성과 여성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의자에 파묻혀 있었고 나는 허리까지 오는 캐리어를 질질 끌며 환승역으로 이동했다.

우선 목적지를 확인하고 재확인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 수많은 노선 중에서 무엇을 타야 되는지 어리둥절했다. 순간적인 당황스러움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불안해졌다. 다시 최후의 수단으로 호텔 주소가 적인 메모지를 내 보미며 여승무원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부탁을 했다. 그녀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이미 구입한 전철권이 잘못되었다며 동전으로 다시 바꿔 직접 전철권을 끊어주며 탑승위치까지 알려주었다.

아!!아리가또 고자이마스였다.



이제는 키요슈미 쉬라카와역에서 내려 출입구로 나가면 곧바로 호텔 숙소를 만나게 된다. 일본 동경 전철은 우리 전철과 달리 폭이 좁았고 간혹 코너를 돌 때는 철로에 부딪히는 마찰음이 심하게 들렸다. 동경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고 있었고 다소 나이 든 늙은이들은 문고판 책을 읽고 있었다.

여기저기 여행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략 10분 정도 갔을까. 목적지 전철역에 도착하고 약도의 위치대로 출구로 나오자 곧바로 컴포트 호텔이 보였다. 동경의 하늘은 여전히 나리타에서 본 먹구름이 엷게 퍼져 있었다. 약간 보슬비가 내렸고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호텔은 1층에 로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2층에 마련돼 있었다.

나는 여권과 바우처를 내보이고 방을 배정받았다. 511호였다. 숙소는 그야말로 1인용 객실로 딱 알맞은 방이었다. 성인 2인이 사용하기는 다소 좁은 형편이다. 대략 5~6평 정도 규모이다.

창 밖으로 멀리 동경의 고층빌딩이 보였다. 그 위로 안개 같은 먹구름이 잔잔히 흘러 다니고 있다.

나는 곧바로 첫날의 여정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딱히 여행을 오기 전 상세히 이동경로를 정하지 않은 채 대략 한 지역을 정하고 발길 닿는 대로 두루두루 돌아다니는편이다.

우선 오이다바로 가기로 했다. 이미 시간이 오후 4시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지역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레인보우 브릿지를 보고 싶었다. 하루키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속 배경을 등장했던 무지개 다리와 동경 깊숙이 파고든 도쿄만을 보고 싶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이오도메역에 내려 모노레일 유리카모메를 타고 인공의 섬 오이다바로 들어가기로 했다.

환승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쉽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노레일로 환승하기 위해 역사 밖으로 나오자 높은 빌딩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일본 텔레비전 타워 건물이다.

대부분 여성인 그들 중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도 보였다. 나는 호기심을 발동하여 가까이 가보니 티브이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

아마도 꽃미남 배우가 야외 촬영을 하는 듯 이를 지켜볼 모양으로 숱한 여인들이 모여든 것 같았다. 나는 동경 여인들을 훔쳐본 후 모노레일 탑승구로 이동했다.

무인으로 운행되는 모노레일 속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있었다.

모노 레일에서 바라 본 도쿄만 일대의 빌딩과 레인보우 브릿지


이내 조금 모노레일이 움직이자 창 밖으로 동경의 고층빌딩이 수직으로 먹구름 속에서 기립해 있고 도쿄만의 바닷물이 마천루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동안 나리타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할 때까지 주변 촌락만 본 채 동굴 속 같은 전철 속을 흘러 다니다가 동경만 주변으로 펼쳐진 높고도 높은 빌딩을 보자 진정 도쿄의 중심에 내가 서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 이곳이 동경이구나라는 생각....모노레일은 동경만 주변을 달리다가 레인보우 브릿지를 넘어가면서 동경의 빌딩 숲과 하늘. 그리고 먹구름이 비친 바닷물을 보여 주었다.


오다이바 해변역에서 내리니 곧바로 레인보우 브릿지와 네모 진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도쿄타워도 보였다. 나는 다시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이곳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천국인 듯했다.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지나가고 곳곳에서 재미나는 이벤트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가 웃음이었다. 나는 우선 쇼핑몰로 들어가 식당을 찾았다. 집을 떠난 후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여기저기 탐색을 하다가 전통적인 일본식 식당으로 꾸민 음식점에 들어가 맥주 한 잔과 해산물을 얹은 밥을 시켰다.

오이다바이에서 혼자 앉아 맥주와 함께 첫 식사를 했다


일본 식당은 혼자 만을 위한 배려가 잘된 곳이다. 한 잔의 맥주를 쭈욱 마셨다. 향기는 입 안을 돌고 돌아 목젖을 타고 내려갔다. 기린 맥주는 텅 빈 위장 주머니를 지나 바로 대장 깊숙이 박히는 기분이다. 항문 쪽이 물이 새는 듯하다. 이내 나는 허걱 지적 밥을 쓸어 담고 몇 점으로 나온 해산물을 간장에 발라 먹었다. 맥주 한 잔으로 긴장이 풀리고 밥한 술과 회 한 점은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빈 속을 채우자 그제야 풍경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양과 옷 매무새, 말소리도 분명히 들렸다. 여전히 중국인들의 와작 거리는 목소리는 동경 이곳에서도 변함이 없다.

먹구름 속의 무지개 다리, 레인 보우 브릿지


동경만을 가로지르는 레인보우 브릿지가 무지개 모양으로 공중에 걸쳐 있고 멀리 도쿄타워의 희미한 모습과 스카이트리의 바늘허리 모양이 우주 밖으로 뻗어 있다.


나는 여기저기 카메라를 갖다 대며 셔터를 눌렀다. 오이다바에서 바라보는 동경은 일본의 현재를 보여주는 증명사진이었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릴 무렵 젊은 친구 하나가 고성능의 캐논 카메라를 쓰윽 내밀더니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구레나룻과 턱수염, 콧수염이 무성한 외국 청년. 새삼스럽게 동일 브랜드의 카메라이지만 뚝닥이 수준의 내 카메라가 부끄러워진다. 이 젊은이는 이내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하였다.. 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카메라를 내밀며 부탁한다. 한 장 박아달라고.....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 나왔다. 댕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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