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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빛과 밤의 세계

- 어둠의 풍경,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네

항상 국경 밖으로 벗어날 때는 야간 비행을 했지.


밤과 밤 사이를 통과해 또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마법의 시간.

그 매혹의 떠남을 사랑하지.

지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빛이 가득한 공항으로  스멀스멀 모여들어.

지상에는 여전히 바쁜 발걸음. 이내 허공의 어두운 공간으로 사라질 사람들.

 

밤의 하늘에서는 지상에 닿지 않는 발을 웅크린 채 긴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 그 순간 떠남의 홀가분과 새로운 영토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지.  


묵묵히 비행 창을 통해 붉은 신호등이 반짝거림이 보이고 다행히 날개는 길을 잃지 않았지.


인천공항 가는 길, 그리고 남방공항 답승.  2시간만의 도착한 상하이 공항


우편배달부 생텍쥐페리는 사막의 밤하늘을 사랑했어.

자신을 “모래와 별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숨을 쉰다는 아늑함만을 의식하고 있는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했지. 그에게 밤하늘은 철학의 공간.

결국 그는 절대 고요의 하늘 공중에서 우주적 상상을 하며 높이 날아올랐지.  


10월 1일 월요일 저녁.
중국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는 제비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어.
나는 두둥실 부푼 풍선마냥 하늘로 날아오르지. 그리고 저 어둠 아래를 내려다봐.
인간의 심장 같은 불빛들이 지상의 별마냥 반짝거리고 황해의 밤바다 위에는 무수한 가로등들이 흩어져 있지.
이윽고 검은 물감 속을 헤쳐 나가는 비행기의 소음만 들려오고 세계의 밤은 침묵 그 자체.


나는 또 이 어둠을 넘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상하이의 심야 도로를 달리며 땅의 어둠 속으로 파고들고 있어.

아무도 모르게, 정말 아무도 모르게. 밤은 나의 섬이자 동굴이지.

내 생애 처음의 땅.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도로. 오직 택시 운전수의 핸들에 맡겨진 나의 운명.

요금 계기판과 바깥 풍경을 번갈아 보며 조바심을 내지. 그리고 도착한 호텔. 안도의 한숨.

밤 12시를 넘긴 changle Road.

텅 빈 검은 도로. 느티나무는 어둠에 묻혀 있고 간간히 외등만이 여행자의 발등을 밝히고 새벽까지 불을 밝힌 주점은 피곤해 보여. 밤에서 밤으로 이동한 새롭고 낯선 지역.

이제 지금부터 여행의 시작이지. 밤의 시작이지.

텅 빈 어둠의 도로, 자정  늦게 불을 밝힌 나의 술집





높이를 향한 인간의 욕망.

밤하늘에 반짝이는 마천루를 기어코 보고 싶어 하지.

낮에 머물렀던 인간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지 밤에도 여전히 빽빽한 인간들의 틈.

형형색색의 깃발을 내세운 일당의 무리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황푸강을 향한 순례객처럼 천박한 자본의 헝겊을 걸친 형광의 불을 알현하기 위해 밀려가고 밀려가는 와이탄의 사람들.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G1 향해 굴기하는 중국의 눈부신 성장을 확인하고 양 어깨에 무한한 자부심을 얹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불나비마냥 과도한 욕망의 끝을 좇고 싶은 내면의 발로일 뿐.
맞은편 와이탄은 서구 제국 열강의 고딕 건축물들이 경제적 침략과 약탈을 은폐한 채 누런 은행나무 이파리처럼 물들고 있다.


황푸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의 쌓아 올린 인도 용병들의 고역은 물결 속에 잠들고 인간들의 잡다한 소음들만 들리는 푸동. 루자쭈이 역 1번 출구에서 이어져 온 구경 인파는 상하이 공중회랑에서 큰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어.

와이탄에서 바라본 푸동의 야경



거대한 인간들의 물살.

468미터에 이르는 동방명주는 붉은 껍질을 드러내며 밤하늘에 우뚝 발기된 생식기 같은 것.

흥분한 군중들은 연신 셔터를 누르고 주변의 휘황찬란한 마천루들은 불빛이 뜨거운지 몸을 비비 꼬며 반짝거려.

놀라움이나 경탄, 특별한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

영화 Her의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의 우수에 젖은 눈길을 찾을 수 없는 혼돈의 공간.

이미 높고 높은 건물들을 너무 많이 보아버린 도시의 경험 때문인지 마음은 예상외로 무덤덤한 상태.

공중회랑을 한 바퀴 회전한 후 도로로 내려와 빈장 다다오 방향으로 걸어 가자 왼쪽에 기립한 금무대하와 상하이 타워는 환영의 폭죽을 터뜨리는 듯 형형색색의 빛을 드러내지.

 

빈장 다다오에서 바라보는 와이탄은 별천지 세상.

색띠를 두른 유람선은 물길을 따라 흐르고 아르데코풍 건축물들이 낮보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을 드러내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지.


침략과 노략, 제국주의자들의 탐욕의 상징. 1845년 상하이의 수치가 오늘날의 상하이의 볼거리로 탈바꿈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하지.


오색찬란한 고층빌딩들의 네온사인을 등지고 황푸강을 따라 걸으면 여행자의 발에 맞춰 다가오는 와이탄의 풍경. 그중 가장 아름다운 와이탄 12호. 10월의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노란 왕관을 쓴 석상.

와이탄 3호 pop Bar에서 바라본 와이탄과 푸동, 빈장 다다오에서 바라본 와이탄



황푸강변을 따라 홀로 걷는 발걸음.

검은 인간들은 삼삼오오 수다스러운 이야기 꽃을 피우며 벤치에 앉아 있어.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들.

철저히 혼자 버려진 낯선 여행지에서 나를 아는 것은 나 자신뿐. 나를 의지하고 묵묵히  풍경을 바라보지.

여전히 맞은편 와이탄은 울퉁불퉁한 샛노란 곡선을 드러내고 있지. 황푸강은 침묵 그 자체.

물빛은 지상의 색채를 받아 일렁거리고  있지. 마치 과거로 가는 비단길처럼 보여.

그 길을 걸어가면 19세기 근대의 풍경들이 펼쳐지지.

황푸강은 2018년의 푸동에서 1865년의 상하이로 건너가는 시간의 강물. 그 강물을 허리에 차고 걸어가는 고독한 여행자.


강바람은 시원하고 강변 산책길은 부산한 사람들의 움직임. 여기저기 음식점과 카페에서 다정한 사람끼리 같은 풍경을 공유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목소리.

여전히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와이탄 3호 팝바에서 느꼈던 수치에 가까운 고독감.

왜 나는 그 7층의 높이까지 올라갔을까. 단지 빛나는 와이탄과 푸동을 동시에 보고 싶다는 열망뿐.

혼자 앉아 있어야 했던 4인석 테이블. 급히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일어서야 했던 모멸스러운 당혹감.

아름다운 여인들과 멋진 남자들의 행복한 모습. 나는 여기서도 혼자구나라는 생각. 그 불편한 생각.

시간이 흐르면 그것마저 추억일 될까?




다시 류자쭈이 역에서 4호선을 타고 난징동루에서 10호선을 갈아타고 산시난루 역에서 호텔로 향하는 길.

두 발은 거북이 걸음마냥 뒤뚱거리고 허기진 배는 배고픔 그 자체.

그러나 화이하이중루의 화려한 iapm 쇼핑몰이 반짝거리지. 구찌, 프라다 등 명풍 샵이 입점한 번화가.

대낮이면 슈퍼카가 굉음을 터뜨리며 질주하는 명품거리.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인지 자본주의 국가인지

아리송해지는 화이하이중루.

상하이는 밤이 더욱 아름다운 도시. 낡은 것은 불빛을 받아 새로운 심장을 얻고 다시 살아나는 도시.

1930년에 건설된 캐서이 극장. 주윤발이 주연을 맡은 '무쌍'의 포스터가 붙어 있어 낯설지 않은 cathay극장.

1930년에 지은 캐서이 극장.


밤은 하루의 소멸이 아닌 또 다른 하루의 시작.

어둠의 속살로  파고드는 다채로운 빛의 물결. 다시 살아나는 옛 건물들 사이로 느티나무가 뻗어 있지.

아마 저 나무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얼마나 삭막할까? 자본의 탐욕과 껍데기만 걸친 건물들만 횡행할 뿐.

상하이라는 도시의 매력은 사라지겠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소리.

넓고 넓은 공원. 중장년의 남녀들이 난분분 춤을 추는 모습.  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 삶의 축제가 여기 있네.

휘돌아가는 치마와 경쾌한 스텝. 쌍쌍파티가 따로 없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열린 무대에서 날 보란 듯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모습.

우리네들은 왜 네온사인 현란한 밀폐된 공간에서 은밀한 춤을 추야 되는지. 특정한 유니폼 없이  편안한 복장으로 춤추는 밤나비들. 참 아름답고 아름다운 장면. 지나가는 사람들 신기한 듯 바라보네.

빙그륵 춤추는 상하이 시민들


춤추는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춤은 빈부의 차별 없는 만인들의 놀이지만 이들은 일상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 춤의 평등은 사라지고 이 시간 누군가는 고단한 삶을 이어가겠지.


잠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누군가가 담장 아래에서 잔뜩 머리를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지. 오직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느티나무와 가로등뿐.

배고픔과 외로움은 어둠 속에 묻혀 있고 갈 길을 잃고 주저앉은 그는  오늘 밤이 두려울 것이다.

너는 어디서 길을 잃었느냐? 너를 위해 한 잔, 나를 위해 한 잔


화려한 호텔,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진 음식점. 멋들어진 양복점이 즐비한 화이와이 로드.

오늘 밤 돌아갈 곳이 없는 그에게 밤은 깊고 길다.

내일 아침은 그에게도 희망이 있길.

아담한 술집에 앉아 한 잔의 맥주. 밤은 깊어가고 나는 또 떠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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