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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주쿠와 롯폰기의 밤

- 신주쿠의 골목과 롯폰기 힐스의 모리 미술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다

하루 동안 정신없이 일본의 번화가를 누비고 있다. 주마간산, 건성건성 밀도 있게 보지 못하고 지나쳐 간다.  





신주쿠 역 주면의 풍경, 마치 청당동 거리처럼 화려하며 세련된 거리이다


신주쿠 역도 목적지 없는 걷기의 연속이다. 동경의 최고 번화가에서 이리저리 걸으면서 눈요기를 할 생각이다. 또한 예상대로 라면 도쿄 도청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주쿠 역에 도착하자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낮다. 동경의 하늘은 전혀 맑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우람한 건물 벽을 따라 걷기도 하고 혹 뒤태가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면 그녀의 뒤를 따르며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자판기에서 생수를 뽑아다 마시고 아무 곳이나 엉덩이를 걸쳤다. 어디를 걷다가 어디를 다시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다지도 목적지 없는 여행이란 발바닥이 고생이다. 스스로 길을 잡아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몸의 여행이다. 몸이 기억하는 여행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신주쿠 거리와 골목 사이를 누비며 질서 정연하게 진열된 쇼윈도 속 상품들을 눈요기하며 도쿄도청이 나오기를 기대했으나 막상 걷고 걸어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오후의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나는 초조해졌다. 아직 롯폰기 여정은 남아 있다. 나는 돌고 돌아 다시 도쿄도청을 포기하고 신주쿠 역으로 되돌아왔다. 배가 여전히 고팠고 보슬비는 내리고 있다.   

신주쿠 골목 거리 사이로 보이는 동경 모드 학원 건물

곧바로 롯폰기로 넘어가야 되는가. 이대로 떠나기에는 아쉬웠다. 언제 다시 신주쿠를 방문한단 말인가.

나는 애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헤매고 다녔던 정반대 방향으로 순회한 후 롯폰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철로 밑을 지나는 지하보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넘어 가자 여전히 높고 낮은 빌딩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빌딩 사이로 우리네 피마골같은 좁다란 골목길이 나와서 호기심에 쭈욱 들어갔더니 완전 별세계가 펼쳐졌다.
완전히 봉건 시대의 동경 뒷골목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한순간 시간 여행은 온 듯 어리둥절할 찰나 여기저기 연기가 모락모락 보슬비에 섞여 흘러 다니고 아직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붉은색 등이 문 앞에 달려있고 낡고 흐름 한 간판이 출입문 위에 붙어 있다. 유리창마다 각종 안주와 가격이 붙어있다.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은 대부분 목조건물이었고 대략 10명 내외 정도 들어갈 만한 비좁은 내부를 갖고 있었다. 연기의 실제는 바로 꼬치구이였다. 이 골목 전체가 꼬치구이 집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신주쿠의 꼬치구이 전문 골목인 야키도리 요코쵸라는 곳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명소는 여행의 기쁨을 안겨준다. 보슬비 내리는 골목길을 어스렁 거리며 이 집 저 집을 염탐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근처 회사원들보다는 장년의 노인과 중국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골목마다 풍기는 꼬치구이의 자극적인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다.

신주쿠 꼬치구이 전문 골목 야키도리 요코쵸, 자리세만 한화 5천원


나는 이 지극히 일본적인 다찌형의 선술집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싶었다. 시원한 맥주와 그리고 먹음직한 안주.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혼자 먹을 만한 공간은 없다. 그러다 유독 텅 빈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어설프게 들어갔고 주인장 역시 어설프게 손님을 맞이했다. 엉거주춤 앉자마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꼬치구이 혹은 해산물을 먹고 싶었지만 토마토를 주문했다. 대략 가격은 우리 돈으로 만원 정도. 맥주는 그렇다 하더라도 토마토 하나에 5천 원이라니 조금 바가지요금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메뉴 하단 부위에 자릿세 5천 원 정도가 부과돼 있지 않은가?

세상에....자리세라니....아마도 좁은 식당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다소 당황스러웠고 역시 동경의 물가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주인장은 겨우 토마토냐라는 빈정거림의 입고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언짢은 마음으로 맥주 한 잔 쭈욱 들이키고 급히 빠져나왔다. 여전히 보슬비는 내리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여정인 롯폰기로 향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신주쿠의 불빛이 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롯폰기행의 목적은 모리 미술관 방문과 롯폰기 힐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경의 야경이었다.


나는 왜 이다지도 높이만 오르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여행 첫날 도쿄타워에서 바라본 롯폰기 힐즈. 이제 롯폰기 힐즈에서 도쿄타워를 바라본다. 오늘 낮에는 스카이트리를 올랐다. 이 동경에서 수직상승에 대한 본능과 욕망이 꿈틀거린다.


전철역에 도착하고 대충 나는 직감대로 걸음을 걸었다. 이렇게 저렇게 가면 대충 롯폰기 힐즈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밤하늘로 파란 불빛을 내뿜으며 우뚝 발기한 남성의 성기처럼 쭉 뻗어 있는 힐즈 타워. 나는 곧장 모리 미술관이 있는 53층으로 올라갔다. 특이하게도 빌딩의 맨 위층에 자리 잡은 미술관이다. 사실 미술관 관람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아무것도 모르고 모리타워 3층으로 올라갔는데 마침 그곳이 티켓 카운터였고 다시 뒤돌아 가기에는 다소 겸염쩍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티켓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 (2003년 4월 25일 개장)



그래 어디 빌딩 맨꼭대기에 미술관을 지은 속셈이 뭔지나 알자라는 심정도 있었고 그곳에 가야만 롯폰기 일대의 야경을 구경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스카이 테크나 스카이 갤러리에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회 제목은 '고 비트윈즈전:아이들을 통해서 보는 세계'였다.

역시 미술 전시회는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작품 하나하나를 보는데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한 사진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조총련계 조선학교 학생들과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찍은 사진이었고 사진의 부분적 요소들을 몽타주 형태로 변형 생성시킨 작품이 있었다.  한 분의 작가는 누군지 알 수는 없었고 한국 작가는 한성원이라는 분이었다.


모리 아트 센터 입구와 한국 작가의 전시회


동경 한 복판, 최고층에서 만나는 우리의 예술품을 만나니 또 다른 반가움을 주었다. 모리 미술관은 현대 예술을 중심으로 패션, 건축, 디자인,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전람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날도 비디오 영상과 사진 등 다양한 매체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한 층으로 내려와 스카이 갤러리에서 360도 한 바퀴를 돌며 시오도메, 오다이바, 치바 방면에서 이케부쿠로, 아카시카, 우에노 방면의 야경을 감상했다.

어제 롯폰기 힐즈 빌딩을 바라보았던 도쿄타워의 형형색색의 불빛들도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 오는 동경의 날씨는 끝까지 나에게 눈부신 도심의 미적 환희를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비 오는 창을 보며 한 잔의 독한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다.

초록 빛깔의 마도 라운지는 고독한 여행자를 위한 최상의 레스토랑이었지만 미래의 그녀를 위해 공란으로 남겨두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비는 다소 거세게 내렸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두 발로 뚜벅뚜벅 걸으며  두 눈으로 실감하고 혀 끝으로 동경의 음식을 음미하며 그들의 음성을 들으며 낯선 곳에서 이틀을 보냈다. 내일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전철역으로 걷다가 빵집 앞에서 심한 허기를 느꼈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 가장 맛있어 보이는 빵을 주섬주섬 사고 빵을 씹으며 걸었다. 동경의 비 내리는 밤에 빵을 우거적 우거적 먹으며 걸어가는 여행자의 허기진 모습. 다시 키요수미 시라카와 역으로 돌아왔다.




나는 숙소로 들어가기 아쉬워 호텔 주변의 주점을 어슬렁거렸다. 마침 초밥집과 횟집, 라멘집이 있었다.

초밥집과 횟집은 이미 많은 관광객들과 인근 주민들이 북적거렸다. 나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삿포로에서도 맛본 미소라면. 나는 한 그릇을 시키고 사케도 한 잔, 두 잔을 시켰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한 잔을 마시고 창 밖의 비를 바라보며 다시 이 낯선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스스로 은폐했던 삶을 이곳까지 연장해 가며 홀로 떠돌아다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케의 따뜻한 술기운이 배꼽 부근에서 올라왔다. 눈빛은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유리창을 스치는 비바람이 나를 훔쳐보는 듯했다. 다시 살아가야 하는 날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일상사를 버텨냈던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타국을 떠도는 것이 혹시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그녀를 이곳에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우연과 인연에 대한 기대감인지. 나는 계속 떠돌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이 비가 그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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