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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건물과 건물 사이

- 옛 건물의 풍경에 대한 감상기


설렘과 불안감으로 일찍 깨어버린 잠자리. 상하이를 만나기 위해 황해를 건너 저녁 늦게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빨간 택시를 타고 화이하이로에 있는 진장 타워 호텔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낯선 편의점에서 중국 맥주를 산 후 어둔 창 밖을 보며  21층에서 마셨다. 상하이의 밤은 조용했고 창 밖으로 내다본 풍경은 어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붉은 지붕과 낡은 뒷골목의 전선들이 기지개를 캐고 있었고 키 작은 빌딩의 옥상은 어수선한 뒷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푸른 나무들이 행렬을 이뤄 푸른 반점처럼 보였으며  하늘은 흐린 구름 사이로 옅은 푸른 빛깔을 보여주었고 이따금 햇빛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1호선 산시난루역으로 전철을 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가로수가 우거진 도로로 자전거의 행렬이 이어지고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었다. 인도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상하이 시민들의 아침 산책을 나서고 있었으며 때론 짧은 핫팬티를 입은 아가씨가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1호선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붉은 벽돌로 지은 jin jiang travel 건물과 아치형 창문과 베란다가 예쁜 lyceum 극장이 보였고,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이 낮은 담장 너머로 오늘 하루를 위한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사우스 산시길로 나서자 거대한 IPAM 쇼핑몰이 타운과 구찌 프라다 등 명품 숍들이 즐비했다.

밤이면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Jin Jiang Travel 건물

산시난루역에서 출발한 전철은 2개의 역을 지나 난징동루역에 도착했다. 신세계 백화점과 Forever21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빨간 상하이 시티 투어 버스는 연신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이미 인도를 점령한 관광객들은 도로까지 침범하여 자동차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었다. 모두들 와이탄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멀리 동방명주의 날카로운 바늘 침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모양이 보였다. 미치 길게 늘어진 UFO가 푸동에 착륙한 듯 기세 등등한 자세로 앉아 있고 그 좌우편과 뒤쪽으로 중국 굴기의 상징과 같은 마천루들이 쟁쟁한 높이를 자랑하며 군웅할거하고 있다.

나는 인파가 몰린 와이탄의 중앙로를 포기하고 좌측 방향인 하남중로 쪽으로 이동하여 골목길로 들어섰다.

난지동루 역 근처의  와이탄 거리


그러자 갑자기 시공간이 돌변하여 1930년대의 상하이 옛 도시로 들어선 듯했다. 

녹슨 대리석 받침과 붉은 벽돌, 모퉁이에 출입문을 단 특이한 건축물들이 영화 세트 마냥 줄지어 서있고 건물 외벽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하얀 빨랫감들이 창 밖의 거치대에 걸려 있었다.

허름한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길가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굳게 닫힌 철문 뒤로 낡은 이불이 큰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낡은 전신주는 검은 배암처럼 건물 외벽을 기어 다니고 느티나무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햇빛을 받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낡았지만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대개 옛 건물들은 건축 문화재로 지정하여 엄격한 출입 통제를 통해 전시 관람용으로 운영되기 일수인데 이곳은 상하이 시민들의 일상적인 주거와 문화생활 공간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보강공사를 하는 낡은 건물들도 보였다.

옛것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호흡할 때 시간의 흐름에 허물어지지 않고 현재의 시간에 빛날 수 있으며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RAM 건물과 여전히 생활공간으로 활용중인 옛 건물들


어쩌면 낡아서 멈춰버린 회전문에서 그 옛날 중절모와 맞춤 양복을 깔끔하게 차리 입은 신사와 파마머리와 슬림 앤 롱 스타일의 멋진 부인들이 팔짱을 끼고 상하이 거리로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자 나 자신도 멋진 상하이 신사가 된 듯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저절로 입 속에서 흥이 났다. 

그리고 세 개의 아치형 출입문과 견고한 대리석과 벽돌로 쌓아 올린 상해 외탄 미술관(RAM:Rockbund Art Museum)이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출입문 앞에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창이 넓은 모자와 긴치마를 입은 그녀들은 시간을 건너온 여행자들 같았다.


1932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직선미가 강조된 아르데코풍의 건물이다. 다소 세월의 각질이 일어난 대리석에는 거미줄 모양의 미세한 금들이 사방으로 퍼져있었지만 향후 100년은 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이내 난쑤저우루 방향으로 빠져나오자 뒤편으로 상해 우정박물관이 보였고 와이탄 북쪽과 쑤저우 허를 가로지르는 길이 117미터의 철교인 외백 대교 너머로 1934년 영국인 프레이저가 지은 상하이 대하 건물이 보였다. 중세 시대 성곽을 닮은 이곳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묵었다고 알려져 있다. 

상하이 대하와 러시아 총영사관 그리고 아스터 호텔


상하이 대하는 중세 성곽의 모양으로 지어 군사 요새처럼 매우 튼튼해 보였다. 어디메쯤 총포와 대포로 무장된 영국군이 보일 듯했다. 그 우측에는 러시아 연방 주상해 총영사관 건물이 보였고 그 바로 뒤 아인슈타인과 찰리 채플린이 묵었다는 아스터 호텔이 보였다.

1921년 상하이를 방문한 아인슈타인은 304호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전보를 받았고 찰리 채플린은 404호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1930년대를 훌쩍 뛰어넘은 21세기 최첨단 건물이 상하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주를 향해 날아오를 듯한 로켓 모양으로 서 있는 동방명주와 각양각색의 고층 빌딩이 푸른 하늘의 절반을 채우고 있었다. 원 와이탄에서 바라본 풍경은 19세기와 21세기의 오묘한 조화였다.
원 와이탄에서 바라본 외백철교와 상하이 대하,  아스터 호텔, 동방명주, 세계 금융센터, 상하이 타워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황푸강은 격동의 역사를 품에 안고 바다로 흐르고 근처 교회를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예비부부들의 웃음소리가 공중에서 꽃을 피웠다. 

그 옆에는 빨간 전동 스쿠터를 세워두고 연신 진지한 얼굴로 교회와 캔버스를 번갈아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맞은편은 1866년에 세운 유니온 처치가 보인다. 황푸강 뱃길을 따라 머나먼 바다로 나아가던 뱃사람이 교회 십자가를 보며 무사안녕의 성호를 그었다는 곳이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공장으로 사용되고 불타 없어진 자리에 교회로 재건하여 지금은 예비 신랑 신부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문득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와 조지 왕조 시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템즈 타운에서 본 교회가 생각이 났다. 영국 고딕식 양식으로 지어진 그 교회는 매우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이었다. 이곳은 거기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유니온 처치는 소담스러운 한송이 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템즈 타운에 있는 교회의 내부는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가 공중에 떠있고 아치와 볼트 형태의 천장은 높고 아득했다.

원 와이탄의 유니온 처치와 템즈 타운의 교회당과 그 내부


외백 대교에는 아까와 달리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고 교통경찰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아스터 호텔을 보기 위해  연신 외백 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인민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중국의 황금연휴를 맞아 엄청난 인파들의 몰려온 것이다.


와이탄은 유럽 건축물의 박람회장 같았다. 르네상스와 고딕 건축양식, 네오 바르크와 로마네스크 양식, 일본 근대 건축 양식과 중국풍의 건축양식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똑같은 모양이 없는 개성적인 자코바티식의 석조 건물들이 일제히 푸동을 향해 일렬종대식으로 길게 줄을 서 있었고 나는 건물의 그림자를 힘들게 밟아 가며 따가운 햇빛을 피했다. 

서구 열강들의 침략적 상징물이었던 간물들이 현재 중국 상하이의 금융과 관광을 도맡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역사적 건축물들이다.

지난밤 와이탄과 푸동의 야경을 동시에 구경하고자 팝 바 오픈 테라스를 찾아갔던 1916년에 건축된 와이탄 3호가 보였고 신고전주의 건축의 걸작이라고 하는 와이탄 12호는 마치 녹슨 푸른 왕관을 뒤집어쓴 듯한 둥근 돔을 푸른 하늘을 향해 내밀고 있었고 좌우측으로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들을 신하처럼 거느리며 황제 행세를 하는 듯했다.

와이탄과 난진동루 주변의 근대 건축물들


그리고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숙박했다는 와이탄 20호, 중국인이 설계했다는 높이 77미터의 23호, 와이탄에서 가장 오래된 33호,  1916년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와이탄 1호 , 동양의 런던이라는 2호 등. 

각각의 역사와 특별한 사연을 품고 100년 이상을 살아온 건축물들이 한낮의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낮에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 온 인고의 속살을 보여주고 밤이면 화려한 조명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나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와이탄을 조금 벗어나 지하철 10호선을 타고 교통대학 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높고 푸른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있고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10월 초 가을 햇빛은 유난히 따가웠다.


그리고 멀리 먹다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남겨 놓은 듯한 7층 높이의 노르망디 아파트가 보였다. 혹자는 출항을 앞둔 범선의 모양이라고 형언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1924년 헝가리 건축가 Laszlo Hudec가 설계한 건축물인데 지금 현재까지 상하이런들의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전용과 중국 유명 예술인들의 공간에서 일반 시민 대중들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아직도 많은 여행자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치형의 출입문과 대리석으로 밑동을 받치고 붉은 벽돌로 겹겹이 쌓아 올린 이 아파트는 아직도 튼튼해 보였다.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와 화분이 나란히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마침 건물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오랜 세월을 지나 온 병든 건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현대식 서민 아파트가 100년을 바라보는 늙은 건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이탄과 난진동루 중심지의 근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공공기관과 금융, 호텔, 명품 매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거나 아무렇지 않게 방치된 건물들도 있지만 예원 주변의 골목길과 타이캉루 텐쯔팡 근처의 평범한 공동 주택들은 서민들의 삶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건축이 가진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귀족적인 노르망디 아파트와 서민 대중 아파트


상하이는 근대와 현대의 시간적 병합과 공존이 어우러진 도시이다.

도시의 건축물들이 시간에서 흘러나와 시간으로 흘러간다. 때론 빠르게 혹은 느리게 황푸강으로 흘러가고 여행자들은 도시를 산책한다.

근대 건축물은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의 공간이며 현대 최첨단 마천루는 중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사실적인 연극 무대이다. 

계획과 무계획 속에 우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건물들은 많은 발품들이 필요하지만 그 건물을 직접 만나고 그 건물 앞에 서 보는 순간 우리는 시간 개념을 잊고 우리 생이 과거와 현재가 중복되는 접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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