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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서점, 우연히 만나다

-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빛나는 상하이 책방


우연히 만나게 된 상하이 책방. 푸저우루와 오각장 근처의 서점




와이탄의 강변을 따라 푸동의 마천루와 난징둥루의 근대건축물들을 번갈아 구경하며 

이리저리 인파에 휩쓸려 갈 때

눈 앞에 나타난 서점. 

이곳은 푸저우루, 상하이 서점거리에 있는 '두저어(독자)서점'

가을 무더위의 끈질긴 미행을 뿌리치고 그늘진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흰 벽에는 녹아서 흘러내린 듯한 한자들이 세로로 매달려 있고 천장에는 고풍스러운 서양식 근대 조명이 낯선 여행자의 머리를 비추고 있다.

기와지붕 모양의 노란 조명등. 형형색색의 책 표지들은 밝게 빛나고 낮은 클래식 음악은 도시의 소음과 다양한 사람의 말소리에 시달린 여행자를 위로해 준다.


그리고 실내에서 묵묵히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 

바깥의 도시 풍경에 몰두한 사람과는 다르게 이곳의 사람들은 오직 활자 자체에 담긴 문장을 해독하고 있다.

넓은 창가에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고 예쁜 머그잔들이 책과 책 사이에서 유혹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마침 지역 장애인 단체와 협업을 하여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이젤에 걸려 있었고 서점 벽면에는 그림을 그린  지적 장애 아동들의 환한 얼굴과 가족과 친구들의 힘찬 응원이 담긴 메모지가 걸려 있다.

상하이 푸저우루에 있는 두저우 서점


2층 수문장 노릇을 하는 오크 재질의 책장.

빛 속에 책이 있고 책 속에 빛이 있다. 

복층 회랑에서 바라본 서점은 아름다운 예술품 그 자체.

다양한 매대 위에서 각각의 표지를 내세운 책들의 적절한 배치와 배열.

천장과 바닥, 책꽂이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책을 하나의 조각품처럼 보이게 한다.

거기에 아기자기한 소모품들은 조연급 이상의 역할이며 마지막 화룡점정은 책을 읽는 사람들의 표정.


이곳은 하나의 설치 미술품처럼 사람과 함께 공존하는 예술의 공간이다.


복층 회랑에는 유리 바닥에 누운 책들이 질서 정연하게 장식돼 있고 녹색 램프가 있는 테이블에는 마법에 걸린 상하이 여인들이 숨소리만 내쉬며 책을 읽고 있다.

 


오각장을 찾은 것은 순전히 영화 'her' 때문이다.

오각장에서 주인공 '태오도르'가 절망스러운 삶에 폐허가 된 마음으로 힘없이 걸어 갈 때 '사만다'를 처음 만났던 그 길을 찾고 싶었다.

지하철 10호선 전철역으로 나오자 접시 모양의 둥글고 거대한 테두리를 한 우주선.

그가 걸었던 길을 좀처럼 찾기 어려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우연히 찾아 들어간 빌딩.

생각지도 않았던 서점 공간이 펼쳐졌다.

영화 'her'의 '태오도르를' 만나기 위해  오각장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서점


역시 천장은 노출된 콘크리이트. 

군데군데 조명등과 파이프 라인이 달려 있고 3차원적 공간을 연출해 주는 천장의 유리거울은 사방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공중에 매달린 크고 다른 형형색색의 풍선들. 

마치 아름다운 정물화 풍경 속으로 들어온 듯 나와 공간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조금씩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나는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여기저기를 훔쳐보며 그 어떤 책이든 읽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책장과 수평으로 펼쳐진 매대에 놓인 많은 책들.

책 표지들은 세련미가 넘쳤고 책들은 그 수와 양을 짐작할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블랙톤을 유지하며 구석구석 필요한 조명을 설치하여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사람들은 길게 늘어진 테이블과 편안한 소파에 앉아 어디서든지 책을 읽도록 하였다.

이런 세심한 배려 덕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서 열연 중인 배우들처럼 보인다.

무슨 책을 저토록 몰두해서 읽고 있을까? 

모두 아무런 말도 없다. 


고요한 침묵의 공간이다. 바스락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해석과 사색의 숨소리만 들린다.


큼직한 아치형의 구조물들은 넓은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누어 줄 뿐 아니라 아주 견고한 느낌까지 준다.

차를 마시는 공간, 음식을 먹는 공간, 책을 읽는 공간 등이 구분이 된 세계.

마치 성과 속이 구분된 공간.

푸저우루의 '두저우' 서점보다 다소 넓은 공간이지만 책을 중심으로 카페와 각종 악세사리점이 융합된 복합 서점의 형태.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하게 실내 인테리어로 많이 탈바꿈되었지만 상하이 서점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밝음과 어둠이라고 할까?

한국의 서점은 밝고 환하며 중국은 적당한 어둠의 분위기이다.

밝은 실내 분위기는 서점 구석구석을 비추고 책을 고르고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숨김없이 그대로 노출시켜 약간의 긴장과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다소 어두운 분위기는 오롯이 책과 사람을 주인공 삼아 읽는 즐거움과 읽기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부분 조명은 책 표지로 향하고 실내 분위기는 아늑한 느낌을 주어 독서자의 실체를 숨기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어두운 곳은 자신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인 셈이다.


이는 책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중서거 서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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