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외로움

내 감정의 정체를 찾아서..

by 집필앤하이드

요즘 내가 가장 경계하는 감정은 ‘자기 연민’이다.

요즘 남편과 <이혼숙려캠프>라는 tv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각기 다른 문제로 이혼을 숙려 중인 부부들이 나와 심리상담, 심리역할극 등을 통해 관계 회복을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눈에 들어왔던 가장 위험한 감정은 다름 아닌 ‘자기 연민’이었다.

살아가면서 나는 감정의 본질이나 원형을 알기 위해 애쓴다.

어린 시절 까닭 없이 흘렀던 눈물의 원인을 엄마가 “응, oo이가 많이 서운했구나”라고 알려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경험 때문인지, MBTI유형 검사를 할 때면 절대 상수값으로 나오는 ‘F’ 성향 때문인지 몰라도 감정의 정체를 제대로 인지하고 그 감정을 입 밖으로, 그러니까 온전한 언어로 표현하려 한다. 글이나 말로써 말이다.

인지하는 것과 별개로 경계하는 여러 감정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자기 연민을 포함 우울, 흥분, 정의감, 냉소 등. 그런 내가 자기 연민에 빠지고 있다. 제동이 필요하다.


잡지사를 그만두고 이직한 지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놀랍게도 난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정확한 내 업무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회사에서 내 상황을 말하자면, 내가 입사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팀 전체가 신생 자회사로 전배 하는 이슈가 발생했다. 당시 나는 말년 대리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이직한 가장 첫 번 째 이유가 연봉이었기 때문에, 과장으로 승진하면 꽤 큰 금액의 연봉으로 뛴다는 얘기에 팀 전배 행을 택했다. 솔직히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물론 개 중에는 나름의 소신으로 꿋꿋하게 모회사에 버틴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고, 승진도 이미 2년가량 누락된 상태다. 이런 회사 문화는 이해할 수 없지만 뭐 어쩌겠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으니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배 행에 올랐고, 또 당연한 듯 승진했다. 그땐 나를 뽑아준 팀장이 있었고, 그는 도무지 이 회사에서 롤을 찾지 못하겠다 싶으면 다시 모회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노라며 큰소리쳤다. 순진하게도 나는 반 이상 그의 말을 믿었다.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그 말을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인지 확인할 길이 사라졌다. 임원답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가 퇴직을 하게 된 것. 팀 내 부장이 팀장이 되면서 내 진로는 더욱 어두워졌다. 전 팀장님과 함께 있을 때도 내 롤을 탐탁치 않아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에게 과일바구니의 아보카도를 건네며 나의 자격지심을 더욱 찔렀다)

그러다 최근 모회사에 남아있던 사람 중 한 부장이 방황하는 나를 안쓰럽게 보다, 내 직무에 꽤 잘 맞는 팀의 차장을 소개해줬다. 현 팀장과의 관계, 본인의 회사에서 위치 등을 고려해 아주 소극적이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선의를 베푼 셈이었다.

문화를 마케팅하는 팀의 L차장과 사내 카페에서 만났다. 10시쯤 만나 10시 50분쯤 헤어졌다.

“패션지에서 피처에디터 일을 했어요”

L은 이 한 마디로 내가 무슨 일을 했으며, 무슨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알아차렸다. 솔직히 ‘피처에디터’라는 말을 설명하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적잖게 놀랐다. 이 회사에서 나는 꽤 많은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다. 원래 무슨 일을 했고, 거기에서 왜 이 회사로 이직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본업을 하지 않고 있는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새삼 내가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이 회사에 왔는지, 그리고 그 마음과 달리 현재가 어떤지를 깨닫게 됐다. 솔직히 L차장과 만나 대화 후 후련함을 느뗬다. 많은 설명 필요 없이 업무 얘기를 하고, 회사 얘기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그 후련함 뒤에 쓴 맛이 따라왔다. 그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음 날이 되니 명료해졌다.

외로움.

나는 외로웠다. 지금 회사에서 나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일을 시킬 사람은?

단순히 회사생활에 대한 애환을 나누는 게 아니라, 진짜 원래 내가 하던 일을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얼마나 됐던가?

생각해 보면 잡지사에 다니면서 나는 매달 아니 매 순간 아이템 고민을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열광하는 것, 따라 하는 것, 생각하는 것, 고민하는 것 등을 살펴보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아이템 혹은 주제를 잡으려 애썼다.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 ‘잘 살고 있는 걸까?‘ , ’ 나는 왜 이런걸 못하지?!‘라는 자책과 자괴감만 느낄뿐. 못하는 엑셀, 피피티와 실랑이를 벌이다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메신저와 각종 문의, 업무 협조 요청에 응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된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다 그렇게 살 텐데 왜 나만 유난일까 싶고, 입만 열면 바쁘다고 호소하는 동료를 옆에 두고 ‘나는 왜 매번 이렇게 서브만 하나?’라는 탄식만 한다.

때로는 잘 만들어진 시스템 안에서 나 홀로 이가 빠져 헛도는 톱니바퀴가 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 요즘엔 꽤 자주 든다.

1~2년 전, 이 회사에서 마치 잡지사에서 그랬듯 현장에 나가 촬영 진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를 본 지방에서 근무하는 매니저님이 최근 회식자리에서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과장님, 멋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말 멋있다 생각했어요. 제가 시골에 있어서 그런지 그런 일 하는 사람을 얼마나 봤겠어요. 자신감 있게 일하는 모습이 제 눈엔 멋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난 꽤 화려하고 멋있는 일을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멋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끔은 일에 몰입하는 내가 괜찮다고 느낀 적도 있다. 대부분 그걸 의식하지 않은 채 일을 쳐내느라 바빴지만.

그런데 요즘에 나에겐 그런 멋짐은 없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40대 유부녀가 있을 뿐이다.

이런 시련을 준 이 회사의 시스템, 면담 때마다 호소하지만 공감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팀장, 더 나아가 나를 이 지옥 불구덩이에 빠뜨리고 퇴직해서 작지만 알짜배기 회사의 이사자리를 꿰찬 전 팀장까지 모두가 원망스럽다.

자기 연민에 빠져, 외로운 나에게 그 모든 것이 가해자가 된다. 자연히 나는 피해자다.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누구도 나에게 이 회사로 이직하라고 하지 않았고, 전배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제 재미있는 일 말고, 돈 많이 벌어야지, 내 워라밸 찾아야지 라는 마음으로 이직했고, 이왕이면 제때 승진하면 좋지 라는 마음으로 전배에 응했다. 그러니 탓할 것도 없다. 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후회했을 것이고, 또 비슷하게 자기 연민에 빠졌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믿어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다.

다만 지금 내 상태에서 확실하게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나를 많이 사랑하는 남편도 이 모든 상황과 고민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오롯이 나 혼자 겪어야 한다.

나는 이럴 때마다 늘 되뇐다. 지금은 터널을 지나는 중이라고.

이 외로움도, 이 고민도 조만간 끝이 날 것이라고.

무엇보다 어제 꾼 꿈이 좀 좋다. 호랑이가 내 코를 핥았다. 챗GPT에 물어보니 꽤 괜찮은 꿈이다.

이 터널의 끝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 끝엔 빛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