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참는다

결국 돈이지만, 그뿐일까?

by 집필앤하이드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험사 직원들의 연봉은 상당히 높다.

사실 나는 보험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연봉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주변에 보험사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사하고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월급을 꼬박꼬박 모으고 재테크에 일찍 눈뜬 사람이라면, 내 나이와 연차라면, 이미 1주택 이상은 보유했을 것이다. 입사하고 가장 놀랐던 지점이었다.

내가 입사할 무렵에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주식 시장은 물론 코인 열풍까지 가세하며 모두가 투자에 혈안이 돼 있을 때였다. 그러니 보험사 직원들이라면 오죽하겠나. 점심시간이고, 티타임이고 모이면 재테크 정보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차 말하(겠)지만, 보험사의 기본은 ‘영업’이다 공채로 입사하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영업직군으로 채용이 되고, 현재는 본사에서 비영업 일을 하고 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지점으로 인사발령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입사 초기엔 영업 일을 하며 경력을 쌓고, 이후 본사로 발령나는 것이 기본 루트다. 초기에 지점에서 총무 업무를 맡고 이후에 연차가 쌓이면 지점장이 된다. 지점장이 되면 가장 좋은 점은 본사 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영업은 매출, 숫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보험설계사들을 잘 설득해 영업을 잘 하도록 만들기만 한다면 지점장이 (선을 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영업 활동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일부의 보험설계사들은 초짜 지점장을 길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러 어린 지점장들이 성숙해 보이려 정장을 차려 입거나, 포마드로 머리를 정갈하게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최근 <나는솔로>에서 25기 영수로 출연한 보험설계사의 외모가 대표적이다. 그 나이 또래보다 좋은 차를 몰고, 명품 옷을 입지만 무언가 애늙인이 같은 외모! 그게 바로 전형적인 지점장의 외형이다. 실제로 나는 그가 자기소개 하기 전에 그의 직업을 맞힐 정도였다.

나는솔로 25기 영수 캡처본

아무튼, 대다수의 보험설계사는 그렇지 않겠지만 몇 몇의 설계사들은 어린 지점장들을 길들이기 위해 질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생생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단적으로 지점에서 지점장이 주관해서 설계사들과 함께 야유회 형식으로 교외를 가기도 하는데, 그때 관광버스 안은 거의 ‘나이트’수준으로 바뀐다고 한다. 버스를 타자마자 커튼을 닫고, 마이크를 든 지점장을 시작으로 설계사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판’이 벌여진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영화 <박하사탕>이 떠올랐다.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 영화에서 어른들의 야유회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런 상황이 2000년대에 일어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L과장은 내 반응이 재미나다는 듯, 그 안에서 더한 일들도 일어난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L과장이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진짜 웃기지? 물론 안 그러는 분들도 많지~ 근데 대다수가 그렇다는 거야. 지금? 지금은 그 정돈 아니겠지? 나도 영업 오래 안해서 모르겠네”

돌이켜보면, 그가 겪은 일이 내가 대학을 졸업한 2010년 무렵에 있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그 나이라면 ‘멀쩡한 대학 나와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자괴감이 들 법 했다.

“그게 진짜 웃긴 게. 당연히 너무 싫고 이상하지~ 힘들기도 하고. 그런데 그럴 때 회사에서 오버라이딩이라는 명목으로 보너스가 들어와. 한 달에 월급을 두 번 받는 수준으로. ‘금융치료’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니까? 그 돈 받으면 또 한달이 금방 지나가고, 힘들다 싶으면 또 제법 큰 돈이 들어와.”


결국 돈이었다.

L과장은 입사 이후 지점장하면서 대학 동기들과 만날 때면 삼겹살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참치회, 소고기 등만 먹었다고 한다. 동기 중에 돈을 가장 잘 버는 사람이었고, 소위 ‘easy come, easy go‘라는 말처럼 돈을 잘 버니 쓰는 돈도 우습게 느껴졌다고.

지점장에 한해서 그렇다. 본사에 오면 월급쟁이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일반 월급쟁이 치고는 꽤 높은 연봉을 받는다. 그건 확실하다.

보험사는 R&D연구 비용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 모든 게 사람으로 돌아간다. 보험 상품을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투자는 그저 사람에게 하면 된다. 그러니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수단으로 ‘돈’을 적재적소에 쓴다. 누군가는 이해 못 할 풍경이고, 누군가에겐 당연한 풍경이다. 다만 분명한 건, 이 곳에서만큼은 ‘돈 때문에 참는다’는 말이 그저 농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회사는 사람을 그렇게 다루지만, 회사 안에서 사람은 과연 그것만으로 움직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나 역시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5년간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력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는지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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