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에서도, 똥밭에서도
월간 마감은 잡지사에만 있는 줄 알았다. 보험사에도 마감이 있었다. 그날, 그 주, 그 달의 마지막 날마다 지점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된다. 목표치에 맞추거나, 특정 상품 프로모션에 맞춰 계약 건을 채우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가능하면 지점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그렇게 크고 작은 마감이 잦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레 숫자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 남편은 지점장 출신이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캠퍼스 리크루팅’으로 보험사에 입사했다. 영업 문화에 비교적 쉽게 적응한 배경에는 아버지(시아버님) 역시 보험사에서 근무했던 영향도 있었다. 그는 입사 후 강원도, 서울, 경기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지점장을 맡았고, 마지막 지점에서의 힘든 시간을 지나 본사로 발령받았다.
남편을 처음 본 건 여러 팀이 함께한 회식 자리였다. 매우 한국적인 회사 문화 속에서는 결혼 여부, 자녀 유무 같은 질문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특히 결혼 10년 차인 차장님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대놓고 지적하며 계획을 캐묻는 임원의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날 역시 한 임원이 내게 다가와 “결혼 안 했냐”, “왜 아직 안 했냐”라고 물었다. 비혼주의가 아니었던 나는 가볍게 맞받아쳤다.
“저 결혼하고 싶어요. 괜찮은 사람만 있으면요. 임원님이 좀 소개해 주세요.”
그저 꼬치꼬치 캐묻는 게 싫어 던진 말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미혼임을 손 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내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마침내 팀에 그의 친구 C가 있었는데, 남편은 C를 통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또 흘렸다. C는 회사에서 ‘오지라퍼’로 통했는데, 남편은 그 성격을 역으로 활용해 내게 호감을 널리 알린 셈이다. 결과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C는 만날 때마다 남편의 장점을 강조했다. 성실한 성품, 다채로운 취미, 그리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력까지.
팀 간 교류가 거의 없었던 나는 C의 주선으로 소규모 점심 자리에 몇 번 동석했고, 그제야 남편을 조금씩 알게 됐다. 첫인상은 ‘과하게 친절한 영업맨’이었지만, 가만히 보니 듬직했다. 게다가 이런 보수적인 조직에서 연극을 취미로 삼는다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는 모습은 그를 전혀 다르게 보이게 했다.
그렇게 5개월간의 ‘오지라퍼 중계’를 거쳐, 크리스마스이브 일주일 전 남편은 첫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보험사에는 생각보다 사내 부부가 많다. 주로 지점장과 사무직 직원의 조합이다. 지점장은 주중 내내 지점에 묶이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 외부 만남이 어렵다. 반면 사무직 직원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혹은 2년제 대학을 마치고 바로 입사한 이들이 많아 대부분 젊고 활기차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감정이 싹튼다. 실제로 내 첫 팀장 역시 아내가 사무직 출신이었고, 그 때문인지 팀 내 사무직 직원들에게 각별히 친절했다.
또 다른 형태도 있다. 지점장과 보험설계사다. 흔히 ‘보험 아줌마’라 불리는 설계사들 중에는 미혼 여성도, 돌싱도 있다. 풍문에 따르면 능력 있는 유부녀 설계사가 지점장과 인연을 맺어 이혼 후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남녀가 함께하는 조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회사에 들어와 가장 먼저 크게 느낀 건, 대부분의 직원들이 20대 후반이면 이미 기혼자라는 점이었다. 잡지사 시절, 결혼하지 않은 선배가 절반을 넘었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37세였던 나는 이제 막 배우자감을 찾으려던 참이었으니, 얼마나 늦은 출발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한 나이, 고루한 조직문화, 그리고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다가온 한 사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은 연결돼 있었다. 결국 나의 시작은 ‘늦음’이 아니라, 내게 꼭 맞는 타이밍이었다.
꽃은 전쟁터에서도, 쓰레기 더미에서도, 똥밭에서도 핀다. 다만 각자에게 주어진 계절이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