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하고 있을지 몰라, 텃세

by 집필앤하이드

이직하며 가장 걱정됐던 것은 업무 강도나 사규가 아니라 텃세였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 가장 쫄리는 이유는 바로 그 낯선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텃세 때문이다.

보험사, 특히 국내 보험사는 놀랍도록 ‘K기업’스럽다. 말하자면 정이 넘치지만 동시에 인연으로 얽힌 관계망이 촘촘하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고리들은 신입에게는 보이지 않는 권력지도가 된다. 여기에 추가되는 ‘연’이 또 있는데, 그건 어느 지역단에서 지점생활을 했느냐이다. 전국 곳곳에 지점이 분포 돼 있어 지역마다 응집력을 갖는다. 그러니 내가 경기도 수원에서 지점장을 했다면 경기도권의 지역단에서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동질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회사에 누굴 안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안전망’이 된다.

솔직히 입사 초반에는 이런 것들이 티 나게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큰 회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관계라는 게 그토록 촘촘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여겼다. 그러나 내가 노골적으로 그 ‘텃세’를 느낀 건 팀 내에서가 아니라 협업을 해야 하는 유관부서에서였다.

업무의 협조를 부탁하고, 데드라인을 조정하는 중이었다. 행여 트집 잡힐까 봐 최대한 공손하게 통화를 하는데 결국 타협되지 않았다. 가만히 내 통화를 듣던 내 옆자리 (당시) 과장이 어느 팀 누구와 얘기 중이냐고 물었다. 난 순순히 답했다.

“ㅎ.. 아 그 형 참.. 기다려봐요~”

친한 듯 이름에 직급이 아닌 ‘형’이란 호칭을 쓰며 넉살 좋게 과장은 상대에게 진짜 안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웃음소리와 가벼운 농담 사이로 듣고 싶던 대답을 들은 듯 과장은 씩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짐짓 우쭐해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해준대요~ 아 증말, 왜 안 해주고 그래~”


그때 난 숨기지 않고 황당해했다.

일하려고 모인 회사에서, 나와 친한 사람이 말하면 되는 일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말하면 안 되는 곳.

그게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니 이 회사에서는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막강한 권력이 된다.

“이 회사에 아는 사람 있어요?”

입사 초반에 내가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이 질문은 앞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결정짓는 잣대였다.

보험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건 타인에 대한 관심의 밀도와 속도다. 잡지사에서도 타인의 옷차림이나 말투를 눈여겨보는 문화는 있었지만, 보험사에서의 그것은 조금 다르다. 영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관찰’은 곧 ‘업무습관’이다. 고객의 옷, 말투, 차, 배경을 읽어내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그 습관이 사내에서도 똑같이 발휘된다. 새로 입사한 직원은 하루아침에 하나의 ‘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출근 일주일째, 블랙 롱부츠를 신은 나를 보고 누군가는 놀랐다. “회사에서 그런 롱부츠는 처음 본다”는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잡지사에서는 무난하기 그지없는 아이템이었지만, 보험사라는 공간에서는 시선의 초점이 달랐다. 영업직원들은 늘 흠잡히지 않은 복장을 유지해야 한다. 정장은 기본, 여름에도 남자는 카라셔츠, 여자는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 언제든 고객을 만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기본 값이기 때문이다. 그 질서 속에서 나의 블랙롱부츠는 ‘튀는 선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후 나는 점점 달라졌다. 청바지는 옷장 속에서 무용지물이 됐고, 사소한 액세서리도 너무 튀지 않게 하려 애쓴다. 대신 주말에는 기를 쓰고 청바지를 꺼내 입는다. 더 놀라운 건, 시간이 흐르면서 나 역시 다른 경력직들의 옷차림을 눈여겨보게 됐다는 사실이다.


텃세가 두려워 시선을 피해 다니던 내가, 어느새 그 시선을 장착하고 있다. 보험사라는 조직은 이렇게 사람을 바꿔놨다. 결국 텃세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낸 집단적 습관일지도 모른다.

망할.. 어떤 환경에서도 카멜레온이 아닌 독화살 개구리처럼 내 색깔을 꿋꿋하게 지키고 싶었는데, 시나브로 나 역시 어느덧 무채색의 보호색을 입고 텃세를 부리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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