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_찰나의 불꽃

영화 <소울>을 보고.

by 집필앤하이드

근 1년 만에 영화관에 다녀왔다.

애니메이션 <소울>을 보기 위해.

한마디로 말한다면 정말 'Soulful'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은 '나의 불꽃'은 무엇일까 이다.

삶의 목적보다는 삶의 동력이 돼 주는 불꽃.

영화는 목적이 있고 꿈이 있는 삶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재즈 피아니스트를 좇던 주인공 '조'가 마침내 그 꿈을 이뤘을 때 느꼈던 허무함, 그것이 목적만을 추구하며 사는 삶의 끝에 느낄 감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삶의 방향, 중심 등 다양한 것들을 고민하게 한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친구 C는 말했다.

프리랜서로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는 요즘 자잘한 일들을 하며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여타 다른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들처럼 더 큰 꿈을 꾸지 않아 이렇게 소박한 일들만 하게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실 패션지에 있는 에디터, 포토그래퍼 등은 다들 화보처럼 뽀대(!) 나는 촬영을 하고 싶어 한다.

잡지의 메인이 되는 페이지이기도 하고, 그 어떤 것보다 그야말로 티 나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C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공감했다.

아마도, 명색이 피처 에디터라면 응당 책 한 권 내 본 저자여야 한다는, 업계 대부분의 사람이 암묵적으로 얘기하는 것들과 같은 맥락의 고민일 것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책 한 권 내보지 못했고, 그럴 용기 없어 쭈뼛대는 사람.

문득 내가 알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 오랜 꿈을 접게 만들었던 전 남자 친구 L. 그는 나의 20대 중 후반, 30대 초반을 함께 한 사람이었다.

같은 꿈을 꾸다, 그의 꿈이 너무 간절해 보였고, 나의 것은 어쩐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 여겨 지레 포기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난 저 사람만큼 열심히 할 의지가 없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를 사귀는 내내 든 생각은 L은 미래를 살고, 나는 현재를 산다는 것. 우린 함께 있지만 다른 시제 속에 살고 있다 생각했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미래에 대한 염려로 현재의 시간을 모두 보냈다. 그의 옆에 있어서 괴로웠던 건 그의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미래 때문에 전전긍긍한 그를 옆에서 보는 것이었다.

그 덕에 내 삶의 가치관은 조금 바뀌었다.

'현재를 충실히 살다 보면, 괜찮은 미래가 올 것이다'

막연했지만, 자꾸만 미래에만 가 있는 그보다는 덜 막연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는 꿈을 이뤘지만, 행복해하지 않았다. <소울> 속의 '조'처럼 허무해했고, 다시금 괴로워했다.

나와 함께 있는 그는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

그때,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소울>에서는 왜 '불꽃'이라 말했을까?

삶, 마음속에 있는 것, 그것이 왜 불이 아닌 불꽃일까?

내내 타는 불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팍 튀는 불꽃인 이유는 삶을 길게 봤을 때 우리가 매 순간 느끼는 행복감은 그토록 짧기 때문이 아닐까? 불꽃 여러 개가 모이면 삶이라는 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함께 본 C와 헤어지고 카톡이 왔다.

"00 씨의 불꽃은 뭐예요?"

"오늘의 불꽃은 실장님이에요"


불꽃이 별건가?

영화에서처럼 맛있게 먹은 피자 한 조각, 베이글 하나, 달달한 사탕, 흩날리듯 내 손등에 앉은 나비 한 마리..

속도로 치면 찰나, 무게로 치면 깃털 같은 것. 내 인생의 불꽃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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