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떻게 사는 건가요?
지난주에 선배 A를 만났다.
업계 소식을 전하며, 이런저런 방법으로 회사의 이름을 팔아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난 신랄하게 비난했다. 흥분한 나를 보며 선배는 "너어.."라며 주저했다. 참을성 없는 난 그의 뒷말을 재촉했다. 선배 역시 못 참겠다는듯 뒷말을 쏟아냈다.
"너 언제까지 선비처럼 살래?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양아치처럼 사는데, 그렇게 살아서 돈 많이 벌 수 있겠어? 누구처럼 양심을 팔면서 살라는 거 아냐. 근데 약게 살아야지. 그렇게 점잖빼면서 사는 건 이제 그만해야지"
순간 '띵'해졌다.
순진하지 않다고 박박 우겨댔는데, 나는 또 내가 순진하다는 걸 인정해버려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았다.
양아치처럼 살라니.
그건 또 어떻게 살라는 건지.
며칠 전부터 아껴가며 읽던 소설 <스토너>를 보고 생각했다.
스토너와 다르게 살면 될까?
.. 핀치가 무겁게 말했다. "가끔은 내가 이 일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스토너는 방긋 웃었다. "옛날에 데이브 매스터스가 말하기를, 자네는 개자식이 덜 돼서 진짜로 출세하기 힘들 거라고 했지"
스토너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과대학에 진학하고자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다 우연히 들은 영문학 수업에 빠져 학업의 길로 진로를 바꾼다. 위 대화는 대학에서 교수가 된 친구 핀치와 스토너가 나눈 대화다. (데이브 매스터 역시 그들의 친구 중 한 명. 참전했다가 일찍이 사망했다) 순수하게 학문에만 빠져 살던 스토너가 뜻하지 않게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학과장이 된 친구 핀처와 영문과 교수 스토너.
여기에서 말하는 개자식=양아치인 듯한데
스토너는 온갖 압력에 못 이겨 불륜 상대와 헤어지게 된다. 스토너는 애매한 개자식이었다. 완벽한 개자식이었다면 스토너는 일찍이 출세를 위해 학교를 나왔어야 했고, 이혼했어야 한다. 근데 그러지 못했다. 교수로서 명성을 날리지도 못했고, 가장으로서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소설 결말에 그의 죽음을 보고 있으니 허무함이 찾아왔다. 완벽한 개자식으로 살았다면 그가 뭐라도 하나는 제대로 잡지 않았을까? 내가 양아치처럼 살려면 스토너와 반대되는 삶을 살면 되는 걸까?
두 번째 사춘기가 온 것처럼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욱 골몰하게 된다. 조금 약게, 계산적으로, 적당히 사람을 속이며, 실체와 조금 부풀려 살면 될까?
아래는 스토너의 일생을 총평하는 말이다.
누군가가, 아니 내가 삶의 끝에서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인정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