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꼰대다

드라마<로맨스가 필요해2>

by 집필앤하이드

10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하다보니 나름의 원칙(혹은 고집)이 생긴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후배들이 많아진다.

그만큼 컨펌 받을 사람이 줄어들어 일의 절차가 단순해지고 편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컨펌을 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말하면 좀 억울할 때가 더 많다.

서글프고, 서러울 때도 많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알아주는 이 없다, 나만 괴로울 뿐이다, 고 생각하며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내가 요즘 애들이었던 때와 지금의 요즘 애들은 또 왜 이렇게 다른 건지,

나를 요즘 애들이라고 생각했던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해보지만 묘수같은 건 없다.


잡지를 만드는 일은 조금 특수하다.

개인이 얼마나 많은 일을, 또 열심히 했는지는 그 달의 잡지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잡지는, 잡지의 이름을 걸고, 또 개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다.

박봉인 걸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순도 100% 명예직인 셈이다.

그래서 개인의 역량이 다 드러나기도 하지만, 개인의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이다.


난 그 친구들이 기획안을 내고, 취재를 진행하고, 원고를 쓰는데 일일이 컨펌을 하는 사람이다.

후배들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내놓는 결과물이 곧 나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을 채우고 보니 후배들에게 난 그저 깐깐한 선배, 빈틈없어 어려운 선배(이 정도만 되도 다행이겠다. 정확히는 몰라도 뒤에서 엄청 욕해댔겠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으니까 패스)일 뿐인 듯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한 선배가 말했다.

"야, 네가 아무리 그래도 제일 똥줄 타고 힘든건 당사자 아니겠니? 원고가 제때 안나와서 가장 괴로운 것도 걔고, 생각만큼 글을 못 써서 힘든 것도 걔일텐데 네가 왜 그렇게 신경을 써?"


아, 내가 왜 그걸 까먹고 있었지?

정말 앞서 한 얘기와 너무 맞지 않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시즌2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장면이 있다.

"내가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살고 싶은데 죽은 너만큼 슬프겠냐. 그래서 오빠는 슬퍼할 수가 없어"

주인공인 윤석현(이진욱)이 병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난 여동생 윤기현(김새론)을 그리워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후로, 나를 포함해 누군가가 타인을 걱정할 때면 그 장면을 떠올렸다.

당사자만큼 그 누구도 괴로워할 수도, 슬퍼할 수도, 힘들어할 수도 없을 거라고.


내가 왜 그 말을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금 다짐한다.


"내가 아무리 괴롭다고 해도, 마감을 고작 3~4년 한 너네만큼 괴롭겠냐. 그래서 나는 괴로워하지 않을란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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