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잎_자존감은 스스로 길러지지 않는다

곁에 따뜻한 사람이 필요한 이유

by 집필앤하이드
"사실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스스로 키우기보단 조력자가 있어야 키워지는 것 같아요"


최근에 만난 한 인터뷰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존감, 자신감. 둘 다 모두 한자 스스로 '자()'가 들어 있는 단어라 당연하게 그것들은 스스로 일깨우고, 키우는 거라 생각했다.


겉모습과 달리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 보였던 인터뷰이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은 조부모와 부모의 덕이 컸다고 설명했다. 자존감 조력자. 생각해보면, 나 역시 나의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는데 부모님, 오빠, 친구들,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그들로 인해 상처 받은 30대들이 주변에 있다. 그 상처는 곪아서 트라우마, 콤플렉스, 자격지심 등 못난 형태로 발전한다. 그렇게 발전한 상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물론 엄청난 의지로 극복한 사람들도 있다. 다이어트, 성형, 유학... 뭐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런 상처가 애초에 없다면, 그 방법 따위는 고안하지 않아도 됐겠지.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 나는 누군가의 자존감/자존심을 해치는 가해자는 아닐까?


30대가 되면서 말을 가려한다.

어렸을 땐 상대에게 '쪽'을 주고 무안을 주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웃기다고 하니, 그걸로 만족했다.

그 웃음에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잘 알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행하는 것이 올바를 리가 없다.

나의 그런 어리석은 언행으로 멀어진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몸소 가르쳤다.


다행히 그때보다 성숙해진 나는 최대한 좋은 말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니까 듣기 좋은 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조언과 충고를 하더라도 상대가 상처 받지 않는 방법으로.

그러다 보니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은 이렇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만약 내가 그 사람이라면(혹은 너라면)"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까?"

.....

그런 화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20대 이후로 내 말 때문에 상처 받아 떠난 사람이 없는 걸로 봐선, 썩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존감/자존심 조력자가 필요하다.

곁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엔 선택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 성인이 되면 다행히 선택권이 생긴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좋은 사람을 옆에 두고, 또 그들 곁에서 기꺼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당신의 자존감 조력자는 누구인가?

당신은 자존감 조력자인가, 가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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