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가 존경받는 이유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 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다. 태어나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간과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한탄스러워하는 동시에 어린 사람들에게 대우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누군가가 말했다. 모두가 노인이 될 수는 있지만, 어른이 될 수는 없다고.
그냥 시간의 순리대로 나이만 먹은 사람은 노인,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이라는 얘기일 거다.
내가 잡지 에디터 일을 그만두기 얼마 전에 했던 인터뷰의 주인공은 무려 박진영이었다.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이자 3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그보다 먼저 나에겐 독보적인 딴따라, 가수, 춤꾼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그와의 인터뷰를 기대했다.
그가 TV에 나왔을 때 나는 그의 현란한 화술과 논리적인 생각에 자주 설득됐다.
그리고 그의 대중적인 음악과 무대를 좋아했다. 게다가 그는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사람이니, 날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쓴다는 그의 평소 말처럼 실제로 촬영 현장은 타임테이블에 맞게 움직여져야 헸고, 그게 조금이라도 어긋날 시에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곤했다)
내가 궁금한 것들을 모두 물어보려면, 인터뷰 시간은 넉넉히 40분 이상 필요했다. 과연 모든 촬영을 마치고 그 시간을 사수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촬영 종료 시간보다 훌쩍 넘은 시간까지 그와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결과적으로 나는 준비한 질문을 모두 할 수 있었다.
한달살이인(한달살이 기억력)월간지 에디터가 인터뷰가 끝난 지 몇 달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억에 깊게 새기고 있는 그의 답변이 있다.
그는 소속 가수들에게 "피디님" "사장님" "대표님" 등의 호칭으로 불리기보단 "형" "오빠"로 불리고 있었다. 그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단순히 어린 후배들 앞에서 젊어 보이겠다는 욕심보다는 격 없이 지낸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소속 가수들에게 윤리적인 선을 내세우지만 그 외에 것들에는 크게 격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50대인 자신이 소속 가수(그는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다)들에게 꼰대로 느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비결을 위와 같이 설명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사가 우습게 느껴지고, 또 그저 그런 꼰대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첫째, 정작 자기는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
연차가 쌓이면 관리자 모드가 돼 실무에서 손을 떼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내내 관리자 모드로 후배를 다그치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니까, 상사가 한창 실무를 할 때 얼마나 열심히, 잘했는지 후배들은 모른다. 그러니 상사들은 보여줘야 한다. 당신의 능력을. 박진영은 여전히 현역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앨범을 낸다. 때론 '소속 가수들보다 더 나댄다'라며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무대롤 내내 보고 싶은 팬의 입장에서는 좋다. 함께 활동하는 소속 가수들은 어떨까? 현직에서 느끼는 좌절감, 서러움 등의 감정을 기꺼이 박진영 '형' '오빠'와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적을 위한 지적을 한다.
후배들의 원고를 첨삭하면서 느꼈던 것이다. 그들이 원고를 뽑아 오면 나는 맞춤법, 띄어쓰기 하나라도 손대고 싶다. 그게 내 역할이라 여기니까. 때론 손댈 필요 없이 완벽하고, 충분한 원고도 있다. 그런데 어쩐지 그대로 원고를 주면 피드백을 제대로 안 한 것 같고, 내 일을 안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면 트집을 잡게 되고, 무엇을 위한 첨삭인지 방향을 잃게 된다. 박진영은 일본에서 자신이 사랑받는 이유는 연습생 아이들에게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적'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오늘 그의 조언을 듣고 집에 가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개선법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상사들도 모른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부모가 그렇듯, 선생님이 그렇듯, 선배(상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개선안을 마련하는 상사는 그만큼 후배에게 관심이 있다는 의미이고, 그 입장에 충분히 이입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그만큼 후배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상사가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그러지 못했다.
2년 전, 처음 디렉터가 되고 팀원들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며 일해야 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혼내고 다그치고, 어르고 달래 봐도 좀처럼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 자괴감과 서글픔이 공존하던 그 시절 읽었던 책이 있었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그중에 내 눈길이 오래 머물던 문구가 있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난 후배들에게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나만의 룰과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 개개인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재단했고, 미워했다.
비루한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섬세하지 못했고, 쉽게 포기했다.
다시 그런 기회 혹은 시간이 온다면 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 좋은 것 중 하나가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라는데.
존경까지는 욕심일지 몰라도 그저 그런 꼰대만큼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