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하는 직장생활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지 2주가 지났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낯선 일.
모든 것이 낯설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이직을 한 것도 있다.
내 이직의 이유는 여럿이다.
잡지를 11년간 만들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정말 재미있고, 치열하게 일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특정할 수 없는 지점에 좋은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낙관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잡지계는 내가 입사한 이후로 줄곧 사양산업으로, 업계가 어려웠다.
두툼한 백과사전 같았던 잡지가 조금씩 시사 주간지의 두께로 얇아졌다.
잡지의 페이지는 500페이지에서 2~300페이지로 겨우겨우 분량을 채우고 있었다.
대신 디지털로 많은 것들이 옮겨갔다. 광고주는 지면이 아닌 디지털로 풀 수 있는 것들을 원했다.
덕분에 디지털에서 반응이 좋은 셀러브리티들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올랐고,
매체는 셀럽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피처 에디터들은 그런 반응이 좋은 셀럽들을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여 잡느냐가 중요해졌다. 인터뷰를 좋아하는 나는, 그 시기에 가장 핫한 사람들을 만나 궁금한 것들을 수다 떨듯이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 게 좋았다.
산업이 어떻게 흘러가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가늘고 길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막연한 낙관이 점차 허무맹랑한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차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나 빼고 모든 사람을 배 부르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셀럽 촬영에 관련된 포토그래퍼,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들은 화보 촬영 외에 광고 촬영 건으로 하루에 기자들 월급 이상의 돈을 받는다. 그들의 높은 몸값에 불만을 갖는 게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너무 하대 받는 듯한 기자들의 연봉에 화가 날 뿐.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일하던 많은 업계 선배들은 힘들어했고, 더 빨리 업계를 떠나지 못(안)했음을 한탄했다.
"네가 잡지계에 남아서 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남는 게 맞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떠나. 난 너무 나이도 많고, 연차가 무거워졌어. 다른 데서는 나를 부담스러워해"
39세,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른 업계의 문을 두드렸던 선배는 내 엉덩이를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이직 혹은 전직을 고려하라고 했다.
업계 굴러가는 상황에 답답해하던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그렇게 흘러갔다.
매달 기자들이 마감을 하니 책은 정직하게, 그 날짜에 맞춰 서점에 깔리고 있는데 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도 그중 하나였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예쁜 것, 아름다운 곳, 핫한 사람 등, 그 어느 직업군보다 먼저 접하게 되는 기자들의 취향은 좋다. 그러나 기자들의 현재 자산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나쁜 의미로 당황할 것이다.
내가 취재원으로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재무설계사는 이직을 하지 않는 한 나의 재무 상태는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돈을 벌고 싶다면, 이직 말고는 답이 없다고 했다.
"별로 두렵지 않았어. 나름 내가 그동안 만든 잡지도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생각했고, 난 내가 잘할 거라 자신했거든"
몇 년 전 온라인 패션 편집샵으로 전직한 남자 선배 K의 말 역시 내 엉덩이를 힘껏 밀었다. 같은 매체에서 1~2년 정도 직속 선후배로 일한 사이. 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잡지의 남자 기자로, 편집장의 편애를 많이 받았던 선배였다. 그런 선배가 온라인 패션 편집샵으로, 엄청난 연봉을 받고 이직했다는 말에 난 배가 조금 아팠다. 도대체 그 선배보다 내가 뭘 못해서 여기에서 이 돈 받고 일하고 있나? 그 선배의 강점은 뭐였나?
선배와 비슷한 업종으로 이직할 기회가 한차례 있었지만, 난 덜컥 겁이 났다. '잘할 수 있을까?'
10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한 사람이 새로운 업계에 발을 들인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근데 K는 그 결정을 내렸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내가 그 선배보다 못한 건 용기와 자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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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그렇게 재미있는 일만 하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재미없는 일만 해서 어떡해요?"다.
재미있는 일을 10년 간 했다. 그 정도면 족하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차마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진 않았지만 내 속마음은 그렇다.
내 이 말에 현재 발리에서 제 N의 인생을 살고 있는 선배 L은 말했다.
"우리 00 이가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돈에 한이 맺혔구나"
진짜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본업 외에 다양한 부업을 하며 혼자 살아남지 않으면 좀처럼 연봉 따위는 오르지 않는 잡지계를 떠난 내 마음은 진짜 돈에 대한 한으로 가득한지도.
이유가 뭐가 됐든 나는 새 회사, 그것도 서울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잘 들여다 보인다는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8시 반까지 출근하라는데 8시 10분이면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업무 시간 10분 전엔 건물 전체에 방송이 울린다. 이제 자리에 앉아 일할 시간이라고. 보안이 너무 철저해 회사에서는 노트북 2개를 주고, 개인 사물함도 배정해준다. 사람들은 틈틈이 누군가가 새로 샀다는 차 얘기, 주식 얘기 등을 한다. 회사에는 좋은 복지가 많아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고 퇴근할 수도 있다. 오후 4시쯤이면 배가 너무 고파 간식을 챙겨 먹고, 퇴근 30분 전이면 회사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질 거라는 알림 창이 뜬다. 사람들은 5시 50분쯤 가방을 챙기고, 6시가 되면 잽싸게 자리를 정리한다. "내일 봐요"라며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 나에게는 그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없다. 아직은 직장인의 고루함보다 경외심을 크게 느끼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출근하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정보는 어디에서 듣는 거지?
난 요즘 밤 10~11시면 잠이 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저녁 6시면 퇴근해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잠 자기 전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좋을지 생각한다. 월요일엔 금요일을 기다린다. 친구들과 약속잡을 때 될 수 있으면 매달 10일~15일은 피했는데, 이젠 그 날짜에 초연해지려 한다. (더이상 내게 월간지 마감 사이클은 필요 없으니)그동안 내가 잊고 혹은 잃고 지낸 저녁이 있는 삶은 찾았는데, 밤 시간을 잃게 돼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평범했던 일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적응 중이다. 1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나 버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잘 해내고 싶다.
자유로운 직장인의 삶의 상징이었단 잡지 기자가 평범한 직장인으로 얼마나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