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게 외로울 텐데, 그럴 때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약 10년 전 잡지 기자 실무면접 전형 중에, 한 인터뷰이를 가운데 두고 그에게 질문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기사를 작성하는 게 있었다.
책 몇 권을 집필하고, 고양이와 살고 있는 인터뷰이에게 나는 외로움 해소 방법을 물었다.
어쩐 일인지 인터뷰이는 발끈하며 말했다.
“난 외롭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을 해소할 필요도 없죠”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위와 같은 답이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썩 유쾌하지 않은 기색이 역력이 드러냈다..
그때 난 망했다 싶었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잘 된 건지, 다행히 최종 합격까지 했고 입사를 해 잡지 기자 인생을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인터뷰이가 그 질문에 불쾌해한 영문을 몰랐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난 점점 깨달았다.
상대의 감정을 내가 지레짐작으로 단정 짓고, 질문해버렸던 것.
인터뷰이에 대한 선입견 없는, 답변을 폭넓게 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와서 깨달은 또 하나.
혼자 산다고 해서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며칠 전, 오래된 나의 망하고도 성공적인(?) 첫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 기억의 복기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비롯됐다.
독립하기 전, 그러니까 30대 초반 나는 혼자 살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지만 은근히 두려운 점이 있었다.
택배를 시키더라도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집에 남자 사이즈 신발을 둬야 하는 거 아닐까?
남자 목소리가 새어 나가게 라디오 소리를 방 안에 켜놓을까?
....
오만가지 걱정으로, 독립했던 양재동 집에서 나는 흔한 단골집도 만들지 않았다.
집 앞 편의점도 어쩌다 한 번씩 들를 뿐, 그 동네에 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딱히 단골로 삼고 싶은 곳도, 동네에 큰 정도 없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누구에게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동네로 이사 와서 그런 생각 자체를 별로 안 했다.
신축빌라로 기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고,
동네 분위기가 주는 안정감이나 정서 등이 그런 경계심을 풀어 주기도 했지만,
혼자 산지 어언 6년 차가 되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독립생활 처음으로 집주인과 마찰이 생겼다.
,
궂은 날씨가 계속되더니 지은 지 이제 4년 된 내가 사는 신축 빌라 건물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외출 전 양치하다 욕실 타일에 금이 쩍.. 갈라져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계약이 만기 되는 내년에 집주인이 이를 뒤늦게 발견하고 문제 삼을까 싶어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냈다.
나는 재계약까지 했던 집주인이라 나름 안면도 있었고, 몇 번의 통화로 그리 악덕한 집주인은 아니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집주인의 반응에 내가 내심 당황을 많이 한 거 보면 말이다.
결론적으로 집주인은
이미 내가 산 지 3년이 넘은 집이라 건물 보수기간이 끝나 타일을 새로 해줄 수 없고 했고, 누구의 과실로 타일이 그렇게 됐는지 판단이 애매하기에 공사비용을 같이 부담하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버버 하며 난 "더 알아보겠다"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친한 선배, 친구, 부모님, 친오빠, 남자 친구..
내 인맥을 총동원해 이 상황을 문의했고
모두 입을 모아 "세입자인 네가 왜 부담해?"라고 말했다.
부가적인 설명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집주인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
개 중엔 집주인으로서 이상한 세입자를 들이면서 얼마나 성가시고, 부당한 일이 많은데,
너 같은 착한 세입자를 얻는 것도 집주인의 큰 행운이라는 말도 덧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 흔한 못질 하나 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는 나에게 집주인의 대응은 조금 아쉬웠다.
아이폰이라 녹취가 안되니 소통은 문자로 하는 걸 추천한다는 조언에 따라 나는 문자를 남겼다.
'제가 타일에 금 간 걸 알린 건, 말 그대로 알고 계시라는 의미였다. 내가 손상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일 보수에 대한 부담은 내지 않겠다. 다음 세입자와 계약할 때 정리하셔라'
그리고 일주일 후,
집주인은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이 다르고, 자신이 알아본 업체에서는 아무래도 사람이 손상을 가해서 생긴 금인 것 같다며,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다르니 '임대차분쟁협회'에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답이 왔다.
'임대차분쟁협회'...?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감정싸움하다 내 보증금 안 준다고 하면 어쩌지?
라는 마음과
타일 문제로 통화 한 번, 문자 한 번 정도 하고 일을 이렇게 키운다고?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리고 다시금 지인들에게 문의하고, 지인들은 또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했다.
인테리어 전문가, 건축가, 욕실 타일 전문가, 다수 전세 세입 경험자....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임대차분쟁협회? 오히려 좋아"
누가 봐도 금 간 흔적이 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닌게 분명하니, 차라리 제삼자에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몇 시간 통화를 하고 나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선배의 말을 듣고 나의 두려움은 전투력으로 전환됐다.
"솔직히 혼자 사는 여자라고 이러는 거야. 누굴 바보로 아나?"
아무리 생각해도 집주인의 대응이 너무나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선배 역시 최근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집주인의 무례한 태도를 보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나는 꽤 단호한 마음을 담아 ‘합쇼체’로 최대한 말의 온도를 낮춰 문자를 남겼다.
생전 처음 듣는 전문용어를 섞어가면서, 전문가에게 의뢰해보니 단박에 이 금은 외력이나 인력을 생길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가만히 두면 아마 이 금은 퍼질 것이다, 말씀하셔서 더 찾아보니 샤워기 뒤편에도 금이 가 있다, 화장실 타일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다, 다음에 상담할 때 참고 하셔라 라며 상황을 담은 사진도 추가로 보냈다.
“저도 더 알아보겠습니다”
집주인은 그렇게 답장을 보내왔고 3주 만에 직접 타일 상태를 보고 임시방편으로 실리콘만 채워 놓고 갔다.
솔직히 그 과정에서도 짜증 나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락된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혼자 사는 사람에게 나는 ‘외로움’ 혹은 ‘고아’와 같은 프레임을 덧씌우는가를 생각했다.
내가 만약 남자 친구와 함께 사는 집이라는 걸 집주인이 알았다면 그렇게 반응했을까? 내가 유부녀라면?
그 어떤 가정도 의미 없다는 것을 알지만, 공간적으로 혼자 산다고 해서 세상에 진짜 혼자 사는 이들은 없다는 걸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도 친구, 부모, 가족, 연인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의지가 된다. 그러니 혼자서 산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을 사야겠다고 다짐하는 마음과 동시에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상한 편견을 가졌던 과거의 나에 대한 반성,
혼자 사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전투력이 무엇인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