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테니스처럼
테니스를 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공을 치다 보면 민망한 순간들이 있다. 초보일수록 더 잦다.
열심히 폼 잡고 회심의 스윙을 날렸는데 공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가거나
혹은 '이거 완전 찬스 볼이군! 너 죽었다!'라며 친 공이 아주 얄궂게 빗나가 몸이 휘청거리거나,
2번이나(?) 주어지는 서브 기회를 연거푸 놓쳐 중요한 순간에 더블 포트를 만들어 실점하거나 등등.
셀 수도 없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함께 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적어도 지금 나와 테니스를 치는 멤버들은 그 말을 정말 많이 쓴다.
"까비!"
어떤 강도의 실수든 아랑곳하지 않고 외친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실력자들이 모여서 그런지, 다들 실수에 관대하다.
누구 하나 정색하며 소리치는 사람은 없다.
실수를 한 당사자가 스스로에게 민망해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코트에서 가장 야박한 건 자기 자신이다.
실수를 해서 민망한 마음도 있지만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잘 알겠지만 '까비'는 '아깝다'는 말의 단축어? 준말?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아깝다 -> 아까워! -> 아까비! -> 까비!
이렇게 멤버들과 친분이 두터워질수록 '아깝다'는 말은 '까비'라는 말로 축약됐다.
말버릇처럼 저 말을 내뱉는 경우도 있는데,
솔직히 하나도 아깝지 않은,
그냥 저건 무조건 아웃이다 싶은 공이나
플레이어가 정말 오버했구나 싶은 순간에도 "까비"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 아깝다는 말을 너무 난발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반복되는 상황이 웃겨 이렇게 내뱉은 적도 있지만 나도 별 수 없이 까비의 늪(?)에 자주 빠지고는 한다.
시간이 흐르니 그 말이 꽤나 괜찮은 격려이자 위로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대체할 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말을 듣는 이를 향한 잠재력 혹은 노력에 대한 인정이 깔려 있는 것 같아서다.
비록 그 플레이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쩐지 다음에는 꼭 성공하라,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까비"에는
"이번엔 실패했지만, 좋은 시도였어"
"너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플레이어야"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등과 같은 속뜻이 있는 것만 같다.
짧지만 강력한 격려의 힘을 담고 있는 말.
요즘엔 아쉽게 실점을 하면
"어쩔 수 없었어. 저쪽이 너무 잘했어"
라고 말한다.
테니스를 치는 동안에는 "정말 못하네!" "넌 안 되겠다" 등과 같은 좌절의 말은 금지인 것처럼,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격려하느라 바쁘다.
왜 테니스 밖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인생을 테니스 치듯,
잘해도, 못해도 그러면 좋으련만.
테니스 치며 가장 박한 건 상대편도 아니고, 파트너도 아니고, 나 자신인 것처럼 그런 것 같다.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박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이제는 나에게도 말해야겠다.
"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