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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Nov 13. 2022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

매사가 그렇지만, 사과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재적소에 하는 사과가 중요하지만 늦은 사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때로는 그 사과가 늦더라도 용서를 너머 사과를 만류를 하게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너무 늦은 사과로 인해 용서는커녕 꼴도 보기 싫게 만들기도 한다.


몇 달 전, 내 인생이 가장 중요한 스승님 중 한 분의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교장선생님으로 퇴임을 하셨다. 선생님은 퇴임식마저 으레 진행하는 형식적인 것들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지금까지 당신이 가르친 제자들을 초대해 직접 퇴임식을 준비하셨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제자들이 선생님의 마지막 학교 에 있는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동안의 교편생활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 마저도 선생님이 직접 구성하고 편집하신 듯하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하고 싶었던 선생님은 ‘열린 교육’ 열풍이 한창이던 그 시절 가장 앞에 계셨다. 그러니 반대하는 세력도 많았다. 그때 선생님은 결심하셨다고 한다.

빨리 승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교육활동을 해야지.

그렇게 시내에서도 먼, 외딴섬에 가서 교직활동을 하며 승진 조건을 채워 나갔다고 한다.

영상이 모두 끝나고

선생님은 제자들 앞에서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했고, 더불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의아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더라도, 여러분에게 체벌을 행한 점은 내가 교단에 있는 동안 내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혹시라도 상처가 됐다면 너무 미안합니다. "


그리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기까지 하셨다.


그전에 장난스럽게 선생님이 발바닥을 때렸다는 에피소드를 꺼냈던 제자들의 추억담이

선생님의 마음을 얼마나 쓰라리게 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받은 선생님의 사과.

사실 선생님이 아무 말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선생님의 체벌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체벌마저도 건강에 도움 될 거라는 말을 조금은 미안하고 면구스러운 변명인 듯했던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은 내가 어린 시절 만난 좋은 어른의 표본이었는데, 그 사실을 과거형으로만 떠돌게 하지 않고 나의 현재와 미래까지 연장해준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사과를 하는 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다.

상대는 이미 잊고 잘 살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가 들출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도 괜찮은데 내가 나의 흠을 까발릴 필요가 있을까.

사과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이 들게 하니깐.

하지만

그걸 모두 감수하고 하는 사과이기 때문에 때늦은 사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그 미안한 마음을 안고 보낸 시간과 고통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10월 마지막 주말, 서울 한복판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늘도, 바다도 아닌 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걷다가 벌어진 참사.


그날 종로에서 결혼식이 있었고, 저녁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기사님이 집회가 있어 노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 3호선 전철을 탔다. 평소처럼 집에 와서 씻고, 고양이랑 놀아주고, 침대에 누워 책을 펼치려는 찰나 재난문자가 왔다.


코로나 확진자 관련 재난문자가 잦았던 터라 가볍게 치부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각에 울리는 문자라 한번 더 문구를 확인했다.

이태원동, 압사, 위험, 실신.. 뭐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었던 것 같다.

이후 뉴스를 검색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현장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1시간 이상 사이렌 소리가 내내 울렸다.

새벽까지 뉴스 특보를 지켜보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자신들의 이해를 따져 본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거짓된 눈물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그 사과는 내가 들었던 사과 중 가장 진정성이 없는 말이었다.

그런 이들이 버젓이 얼굴을 들이밀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서러웠다.


하필 왜 그날은 지난여름 그때처럼 비가 쏟아지지 않고 청명한 날씨였을까?

그래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설렘을 안고 한 자리에 모이게 됐을까?


무수한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참사라고 하기엔, 피하고, 예방하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그러기에 사과해야 한다.

다만, 지금은 사과의 말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책임지는 방법으로 사과해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로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으니,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든 이들이 책임져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그 모든 것이 정리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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