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Dec 11. 2022

나의 행복을 지켜주는 사람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X) 그대 나의 행복을 지켜주는 사람(O)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 하나를 물으면

대부분 "행복"을 답한다.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은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내 삶의 적용시키기엔 너무나 어렵다.

행복을 추구하느라, 현재의 불행과 고통을 감수하기도 하고, 분명 있었던 그 찰나의 행복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넘겨 버리고는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1년을 채우지 못한 나의 연애가 끝났다.

연애만큼이나 이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을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38세에 만난 사람이니 모두가 '곧 결혼하겠구나'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다섯 번째 남자.


연애의 시작과 끝은 할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을 탐구하는 방법 중 연애만큼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것은 없을 것이다.

숨기려도 해도 숨길 수 없는 나의 이기심, 아집, 진지함, 기쁨, 슬픔, 분노, 행복, 희생, 헌신....


극단적인 내 감정이 오가는 동안 관계의 고비가 온다.

그 고비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냐, 아니냐가 관계의 지속성과 단절을 결정짓는다.  


나는 연애를 끝내고 나면 나만의 '애도기간'을 갖는다.

이 연애가 이렇게 끝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다.

대부분의 잘못은 상대보다 나에게서 찾는다.

설사 귀책사유가 상대에게 있더라도 '그런 사람을 진작에 알아보지 못한 죄'가 나에게 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도 충분히 행복했다.

행복하다, 기쁘다 라는 말 대신 '나쁘지 않아' 수준의 소극적인 표현을 주로 쓰는 내가
"내 삶에 만족해. 이 정도면 행복한 것 같아"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곧잘 했다. 행복은 늘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게 되는, 현재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 여겼던 내가, 그랬다.


그래서 이 연애의 애도기간 중  

난 벌을 받은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 더 큰 행복을 바란 죄. 너무 큰 욕심을 부린 죄.

연애라는 건 내게 ‘지금보다 더 행복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라 여겼다.

혼자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보고, 또 함께 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난 그런 그림을 꿈꿨다.

그래서 행복으로 충만한 시기의 내가 알아본 사람이라면,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했다.


결과적으로 난 제대로 된 사람, 그러니까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그와 함께 있는게 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 쪽에 가까웠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그만큼 실망도 컸다.


그런 내가 더 행복하겠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난 어쩌면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 아닐까?

가만히 내가 지껄이는 말을 듣고 있던 엄마는 갸우뚱하며 말했다.

"꼭 더 행복해져야 할까? 지금 네가 누리는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텐데.. 엄마는 그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 더 행복해지지 않더라도 말이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왜 더 행복해져야 하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연애를 하는 이유가 정말 더 행복하기 위해서일까?

몇날 며칠을 고민해 봤다. 아무래도 아니다.


연애는 절대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연애를 하면 골치 아픈 게 너무 많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열심히 만나야 하고,

썸도 타야 하고, 연락도 해야 하고, 데이트도 해야 한다.

사귀기로 하고 나서도 열심히 탐색해야 한다.

이 놈이 나와 잘 맞는 놈인지, 여기에 우리 집 고양이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인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정말이지.. 골치 아프다.

그런 내가 왜 연애를 하려 애쓰는 것일까? 결혼은 또 왜?

그러고보니 내가 연애를 하려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온함,

누군가의 마음과 머릿속에 1순위로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이토록 시린 겨울, 연말에 스케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사사로운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

나는 혼자여도 충분히 행복하니,

이 행복을 함께 누리고,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넘치는 이 행복을 받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