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X) 그대 나의 행복을 지켜주는 사람(O)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 하나를 물으면
대부분 "행복"을 답한다.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은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내 삶의 적용시키기엔 너무나 어렵다.
행복을 추구하느라, 현재의 불행과 고통을 감수하기도 하고, 분명 있었던 그 찰나의 행복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넘겨 버리고는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1년을 채우지 못한 나의 연애가 끝났다.
연애만큼이나 이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을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38세에 만난 사람이니 모두가 '곧 결혼하겠구나'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다섯 번째 남자.
연애의 시작과 끝은 할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을 탐구하는 방법 중 연애만큼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것은 없을 것이다.
숨기려도 해도 숨길 수 없는 나의 이기심, 아집, 진지함, 기쁨, 슬픔, 분노, 행복, 희생, 헌신....
극단적인 내 감정이 오가는 동안 관계의 고비가 온다.
그 고비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냐, 아니냐가 관계의 지속성과 단절을 결정짓는다.
나는 연애를 끝내고 나면 나만의 '애도기간'을 갖는다.
이 연애가 이렇게 끝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다.
대부분의 잘못은 상대보다 나에게서 찾는다.
설사 귀책사유가 상대에게 있더라도 '그런 사람을 진작에 알아보지 못한 죄'가 나에게 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도 충분히 행복했다.
행복하다, 기쁘다 라는 말 대신 '나쁘지 않아' 수준의 소극적인 표현을 주로 쓰는 내가
"내 삶에 만족해. 이 정도면 행복한 것 같아"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곧잘 했다. 행복은 늘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게 되는, 현재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 여겼던 내가, 그랬다.
그래서 이 연애의 애도기간 중
난 벌을 받은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 더 큰 행복을 바란 죄. 너무 큰 욕심을 부린 죄.
연애라는 건 내게 ‘지금보다 더 행복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라 여겼다.
혼자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보고, 또 함께 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난 그런 그림을 꿈꿨다.
그래서 행복으로 충만한 시기의 내가 알아본 사람이라면,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했다.
결과적으로 난 제대로 된 사람, 그러니까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그와 함께 있는게 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 쪽에 가까웠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그만큼 실망도 컸다.
그런 내가 더 행복하겠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난 어쩌면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 아닐까?
가만히 내가 지껄이는 말을 듣고 있던 엄마는 갸우뚱하며 말했다.
"꼭 더 행복해져야 할까? 지금 네가 누리는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텐데.. 엄마는 그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 더 행복해지지 않더라도 말이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왜 더 행복해져야 하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연애를 하는 이유가 정말 더 행복하기 위해서일까?
몇날 며칠을 고민해 봤다. 아무래도 아니다.
연애는 절대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연애를 하면 골치 아픈 게 너무 많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열심히 만나야 하고,
썸도 타야 하고, 연락도 해야 하고, 데이트도 해야 한다.
사귀기로 하고 나서도 열심히 탐색해야 한다.
이 놈이 나와 잘 맞는 놈인지, 여기에 우리 집 고양이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인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정말이지.. 골치 아프다.
그런 내가 왜 연애를 하려 애쓰는 것일까? 결혼은 또 왜?
그러고보니 내가 연애를 하려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온함,
누군가의 마음과 머릿속에 1순위로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이토록 시린 겨울, 연말에 스케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사사로운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
나는 혼자여도 충분히 행복하니,
이 행복을 함께 누리고,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넘치는 이 행복을 받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