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완생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 10년 넘게 했던 일들이 무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동안 내가 사회생활을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10년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소위 말해 '9to6'의 삶을 사는 일반 직장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현재 보수적인 걸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금융업계로 이직을 했다.
보수를 고려하면 누구도 이직을 만류하지 않았다.
질문은 하나였다.
"거기서 뭐해?"
잡지사에서 일당백으로 일했으니, 어디서나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
내가 적응하고 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직장인에게 연봉이 전부라 생각했다.
이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어떤 부분은 자신감이고, 어떤 부분은 나 자신을 과신했다.
정말이지, 일은 어떻게든 적응하면 된다.
어차피 경력직이니, 새로운 회사에서 원하는 건
‘내가 했던 일을 지금의 일과 잘 접목시키는 것’이니까.
그런데 내가 했던 일 외적인 것들도 해야 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tool이 달랐다.
나와 가장 친한 ms office 프로그램은 '워드'였다.
그마저도 오로지 글을 쓰고, 인쇄를 하고, 글자를 강조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다음은 ‘파워포인트’, 이건 그 달에 내가 촬영하는 인터뷰이를
어떤 콘셉트로 촬영할지 보여주는 시안용으로, 마찬가지로 이미지 레이아웃에만 신경 쓰면 되는 수준이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회사에서는 워드를 뺀 나머지 ms office 프로그램이 모두 유용했다.
하지만 쓸 줄 모르는 나에겐 무용했다.
특히 엑셀은 너무나 낯설었다. 엑셀로 법인 카도 사용 내역의 총합만 내 봤지 그 외에는 사용한 바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방송국에 취직할 거라고, 대다수의 친구들이 경영학을 복/부전공하는데 나는 꼿꼿하게 인문학도의 길만을 고집했다. (왜 나는 인생의 플랜 B를 고려하지 않는가?)
모르는 게 많을수록 나는 납작 엎드리기로 했다.
경력직에게 필요한 건 적응력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뻔뻔함이다.
너네가 날 뽑았으면 알아서 써먹어!
나도 너네가 못하는 건 할 줄 알아!
나는 이 두 가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하지만 나는 전 직장, 아니 전 직업을 가졌을 때는 ‘1’도 신경 쓰지 않던 것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나는 전직 같은 이직을 함으로써 발견하게 된 직장인의 섬세한 삶을 말하고자 한다.
이미 일반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한 이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발견이겠지만,
나처럼 반 프리랜서와 같은 삶을 산, 그러니까 직장인이지만 꽤 자유로운 출퇴근과 개인의 자존감을 지키며 일했던 이들에게는 생경한 삶의 모습을 서술하고 싶다.
평범하지 않던 직장인의 삶을 살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유분방한 쪽에 가까운 회사에서 일하던 내가, 보수적인 것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금융업계 종사자가 됐으니..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인가?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첫째, 아침 8:30 정시 출근? 그거 지키는 직장인은 별로 없다.
8시 30분까지 출근이라고 해서, 진짜 그 시간에 맞춰 사원증을 태깅하는 직장인은 거의 없다.
내가 처음 출근해서 가장 놀랐던 건, 나름 긴장해 일찌감치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이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 심지어 상무님은 경기도에 살아 출근길이 막힐 것을 고려해 아침 7시쯤 도착해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근무를 시작한단다. 이런 루틴은 회식을 아무리 늦게까지 하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불변한다고. 그러니까 출근 시간 15~30분 전에 회사에 도착하는 건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지키는 ‘국 룰’이었다.
둘째, “그래야! 장그래! 이제 네 맘을 알겠다!”
드라마 <미생>을 꽤 재미있게 봤다. 당시 친구는 그 드라마가 자신의 현실을 너무나 디테일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 보기 싫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인가 싶었는데, 뒤늦게 미생이 되고 보니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특히 계약직으로 팀원, 팀장들에게 크게 존중받지 못했던 그래가 팀장에게 감동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면! 타 팀에서 의심을 받았던 그래를 두고 팀장이 무심결에 “우리 애”라고 내뱉던 순간 그날 밤 그런 잠 못 이룬다. ‘우. 리. 애’라고 했다고. 그게 뭐 대수인가 싶지만 사실 딱딱하게 x대리, x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보다 이름(여기에 성까지 빼면)을 부르는 건 그 안에 친밀감, 신뢰 등이 뒤엉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전 직장에서 편집장은 물론 나 역시 후배를 부를 땐 늘 이름을 불렀기에 소중함을 몰랐다. 흑흑.
셋째, 금쪽같은 내 점심시간
아침부터 메신저에 불이 난다. “점약 있어요?” “점심 뭐 먹죠?” 십중팔구 이 내용이다. 그만큼 직장인이 출근해서 점심에 누구와 밥을 먹는지는 너무나 중요한 그날의 과업이다. 마감만 아니면 점심시간을 프랑스인처럼 즐기는, 잡지 기자였던 시절의 나는 전혀 몰랐던 세상이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우리 회사 점심시간은 한 시간 반으로 꽤 긴 편인데, 넉넉히 2시간까지도 점심을 즐겼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그 시간을 꽤 알차게 보낸다. 회사 근처를 산책하거나 구내식당에서 후딱 밥 먹고 자리에 앉아 낮잠을 잔다. 두런두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짬을 내 각종 개인 일을 보기도 한다. 나 역시 점심시간에 이 모든 것들을 해봤는데 대체로는 회사 반경 도보 5분 내외 거리에 있는 곳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 떨다 오후 업무 시간을 맞이한다. 점심 먹으려고 택시 타고 신사역에서 삼성역까지도 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런 여유로운 점심시간은 더 이상 없다.
넷째, 보고서는 직장인의 얼굴이다?
다른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 모르지만, 동료들을 보면 보고서, 시행문, 공문 등과 같은 페이퍼 작업이 곧 직장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직장인으로서 내 얼굴은 생기다 만, 진화하기 오래 전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얼굴이다) 그만큼 중요한 업무인 것이다. 각종 오타, 띄어쓰기, 맞춤법 등은 내가 기자 시절 원고를 쓸 때보다 더 엄격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텍스트가 다글다글한 원고에 비해 보고서는 간단명료하다. 그러니 짧은 말에 많은 의사결정의 내용이 숨겨 있다. 정확한 표현과 적확한 단어가 생명인 것이다. 때론 너무 요식행위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제목을 쓰기 전에 첫째 칸을 띄우고, 스페이스 바 몇 번을 누른 후 본론을 쓰며, 글씨 크기는 10포인트, 글씨체는 명조체 아니면 굴림체…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요즘은 이런 포맷을 많이 없애는 추세라고 하지만, 아직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회사는 유지 중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 생각한 지금,
평범한 타인의 삶과 어울려 살고 보니,
많은 것들이 새롭고 재미있고, 낯설다.
30대 후반, 직장인 삶 1N 년 차로 미생으로 산다는 건 너무나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