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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Jan 14. 2023

김혜자선생이나 박완서선생처럼


내가 어두운 터널 속에 아주 깊이 빠져 있던 시절. 밤에 잠 못 이룰 때, 너무 빨리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문득 우울함에 침잠될 때, 자꾸만 눈물이 흐를 때, 세상에 나 혼자란 기분이 들 때, 그 사람이 너무 미울 때... 난 ‘강해지자’는 말만 되풀이했어. 그 말이 제대로 먹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모든 순간들은 흘러가더라. 흘러간 시간이 딱딱하게 굳어 정말 강해진 건지 그냥 잘 넘어간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나에게 말할 때 불끈불끈 그런 맘이 들더라. 너를 지켜줘야지, 행복하게 해 줘야지, 다시는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말아야지. 많은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참았어. 조심스럽게 네 얼굴을 만져주며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우리 사귄 지 고작 며칠 안 됐는데 그런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울까 봐. (사귀고 얼마간에 시간이 흘러야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더 무게감 있고 진정성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했다는 너와 난 참 닮았다)


보이지 않는 규범, 윤리, 선과 같은 것들에 얽매여 있는 우리. 그렇기에 난 네가 힘들게 꺼낸 과거가 더 아프게 느껴졌어. 그렇게 이치에 맞게 살기 위해, 선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네가 그 힘든 과정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그 후에 따라오는 고통을 어떻게 감내했을지..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이 돼서. 너를 다 안다고 말하는 게, 우리가 함께한 시간 치고는 너무 과하다는 걸 알아. 근데 나이가 주는 무기, 쾌속한 판단이라는 게 있잖아. 세세한 건 몰라도 굵직한 것들을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 적어도 넌 행복해야만 하는, 그러니까 나처럼 괜찮은 여자를 만나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거를 난 알아. 우린 지금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우리 김혜자선생이나 박완서선생 부부처럼 살자. 난 그러고 싶어. 나이 들어서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도 애틋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로, 자식보다 나의 사랑을 먼저 떠올리며 눈물짓고,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상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말할수 있고, 그 사람은 분명 천국에 있을 거라고 장담하며. 우리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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