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주고, 선뜻 받는 게 관계의 기본인 걸!
한때는 안 주고 안 받는 게 속 편하다 생각하기도 했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신세도 지지 않는 관계. 이 얼마나 무미건조하며 쿨한가?
과연 아무것도 주지도, 받지도 않은 관계에서 '관계'라는 게 형성될까?
거의 40년 가까이 살아온 나의 대답은 절대 불가능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 생각 들겠지만 요즘엔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고, 목소리가 아닌 간단한 메시지로도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관계를 만드는데 소통은 필수적이다.
또한 정확한 소통을 위해서는 관계 역시 필수적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관계없이 소통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건 사실 거저먹겠다는 심보다.
얼굴을 맞대고 말로 대화를 해야만 소통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형성된다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물리적인 것들을 주고받을 기회는 거으 없다.
같이 밥을 먹고, 기념일에 생일선물을 주고 받고(카카오톡 선물 기능이 있지만 관계없이 주고 받을리가 만무하다!)등..
내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는가를 생각해 보면,
잘 주고, 또 잘 받는 사람이다.
고마워! 잘쓸게(잘 먹을게) 라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누군가는 이를 '기브 앤 테이크' '이해관계'라는 간단한 말로 퉁칠 테지만,
여기에는 '잘'이라는 부사어가 붙는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잘' 받고, 그것에 대해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잘'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받았으니, 준다는 개념의 것이 아닌 것이다.
H는 10년 넘게 잘 지낸 친구가 베푸는 어떤 호의가 부담스럽게 느껴져 거절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오해가 생겨 힘들다고 나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와 비슷한 시간을 보낸 친구 C와 잘 지내고 있는 나의 비결도 궁금해하며.
C와 나는 대학1학년 때부터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한 친구로 막역한 사이다.
C는 나에게는 첫 '서울친구'였다. 한 때 대학친구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에 비해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썰, 서울 애들은 깍쟁이라는 풍문 등을 가볍게 타파시켜 준 친구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같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셈이 빠른 이 친구에 대해 약간에 거리감을 느낀 적이 있다. 사실 그 지점에서 나는 C에 대한 서운함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C는 스스로를 희생하며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지 않는다!
그러니까, 달리 생각하면 C는 베풀 수 있는 만큼 나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받는 입장에선 부담이 없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만큼, 본인이 가능한 선에서 주는 친구니까. 그렇다면 나 역시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을 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H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상대 친구 역시 H, 당신에게 해줄 수 있어서 베푸는 건데 왜 그걸 거절하냐, 그게 친구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다.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의 호의를 한사코 거절하는 건, 상대를 꽤 무안하게 하는 일이며 서운하게 하는 일이다.
이직 1개월 차에 접어든 친구 K는 얼떨결에 한 모금 먹지 않은 딸기라테 한잔을 어색한 관계의 팀원에게 건네었다고 한다.
"입도 대지 않은 음료이긴 한데, 제가 너무 배불러서요. 혹시 드실래요?"
그 말에 그 팀원은 반색을 하며
"어머! 저 너무 배고팠거든요~ 진짜 마셔도 되나요?"
라는 반응을 해 K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고 한다.
팀원은 진심으로 A4용지를 씹어 먹고 싶을 만큼 허기가 졌을 수도 있다. 그 맛있는 딸기라테를 거절하기엔 (아마도) 본인의 위상태가 너무 빈곤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상대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팀원 덕에 베푼 K는 기분이 좋다고 했다.
단언컨대 K는 그 팀원에게 가까워질 용기+1를 획득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을 때 빚진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 관계는 애초에 시작이 어려워진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을 때 선뜻 받고, 또 줄 수 있을 때 기꺼이 줘보자.
어느 순간 내 주변에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 북적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