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 / 유년 회상> 2.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도두리>, 거기가 내 출생지이다.
택리지의 팽성 편에 "소금기가 많아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언급한, 허허 갯벌을 간척하고 만들어진 마을이다. 서해 갯벌 간척이 오래 진행되면서 내 유소년기에도 마을 사람들의 겨울 뚝 쌓기는 계속되고 있었고 마을은 제법 큰, 5~60여호를 이루는 안동네(도두 1리), 마을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 언덕배기의 <말랭이>라 부르던 도두 2리, 안동네 뒤쪽 들판에 자리잡은 도두 3리(<신흥> 부락)로 이루어져 있었다. 합해서 약 100여 호.
인근엔, 둔포 장이나 평택 읍내로 나가는 길의 <함정리>가 있고, 그 마을을 지나가는 길의 <선말산>(서원이 있는 마을의 산), 거길 지나 내려가면 평택 행 버스 정류장이 있는 <아리랑 고개>, 버스 종점이 있는 <본정리>, 그 옆의 <신대리>, <본정리>에서 소위 "신작로"라는 길을 따라 더 들어가면 인근에 유일했던 성황당을 지나 <계양 바다>에 이르게 된다.
바다.
나의 바다는 푸른 바다가 아니다. 푸른 바다는 내게 쇼크였다.
나의 바다는 거무튀튀한 갯벌과 그 갯뻘 흙을 풀어놓은 탁한 물 가.. 썰물에 십 리 멀리 빠졌다가 밀물로 그 텅 비었던 갯벌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는..
'푸른 바다 흰 파도'는 그 유(소)년에는 택도 없는 비현실.
그 <계양>(실 지명은 <노양리>이고 옛날에는 "계양포"라고 불리기도 했다지만 우린 그냥 "계양 바다"라고 불렀다) 바다에는 작은 마을과 오래된 등대가 있었고, 충남 <둔포>로 들어가는 좁은 물길이 있었고, 어느 만조에 그 갯벌 바다를 가득 메운 황포 돛배들이 있었다.
그 배들은 철 따라 숭어와 새우, 뱅어 같은 것들을 계양 포구에 부렸던 모양인데, 우리 소년들은 본정리 산 너머의 <계성국민학교>를 파한 후에 더러 <계양 바다>에 들러 그 갯가 장뚝을 멀리 돌아오며 둑 아래에서 망둥이 낚시를 하기도 했는데 계양 바다 파시의 북적거리는 풍경은 본 적이 없다.
봄 가을 숭어철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계양으로 숭어를 먹으러 갔고, 꼬맹이도 그 틈에 끼어 따라갔을 것이다. 집에서 맛보기 드물었던 초창 맛을 거기서 처음으로 찐하게 느꼈을 것이고, 카바이트 냄새나는 옥수수 막걸리도 한 두 모금 했을 것이다.
1960년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유년, 소년기의 기억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붓글로, 좀 더 긴 텍스트의 진술로.
그저, 기억이다. 그러나 내게 남겨진 기억들을 완전한 사실로서 보증할 수는 없다. 기억은 뒤죽박죽 편집되기도 하고 하물며 조작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내 유소년기의 회상이 얼마나 좋은 글이 될지 모르고, 그걸 또 내가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자본과 기술의 고도 산업문명 이전의 또 다른 문명기 풍경을 그려내 보고 싶은 것이다.
'한 때, 다른 세계가 있었어..'
그런데
왜 그래야 하지?
. . . . .
(올려진 글들이 수정 보완될 수 있는 점을 양해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