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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Teacher Jul 12. 2023

욕심 많은 엄마 선생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삶에서 나를 지우다.

 교육공무원으로 첫 발령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9시부터 빠른 퇴근을 하는 날이면 5시, 아니면 6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삶이 대부분이었다. '교사가 행복해야 유아가 행복하다.'는 모토 아래 '불필요한 서류 작업을 하는 시간에 아이들 한번 더 보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교사관으로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실제 매일 해야 하는 서류는 일일계획안 밖에 없었고, 중요한 업무는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의 놀이를 기록하여 학급신문으로 발행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분기별, 학기별, 학년별로 담당하는 업무를 정리하는 일 정도가 끝이었다. 정말 아이들을,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의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국공립 유치원은 달랐다. 8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아이들과의 일과는 1시가 되면 끝이 났다. 대신 퇴근시간까지 '공무원'으로서의 서류 작업이 어마어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점점 나는 아이들과 교육 시간에도 일과가 끝나면 해야 하는 서류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교육시간의 중요성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다시 붙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엄마이자 공립교사의 유아교육 이야기' 블로그도 개설하여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을 공개하며 조금이라도 더 잘하려 노력도 해보고, 다양한 연구대회에도 참가하며 나의 교육을 좀 더 레벨업 하기 위해 힘썼다.

 

 업무로서 인정도 받고 싶었다. 신입이지만 신입 같지 않은 나이와 경력을 가진 신입은 정말 갓 졸업하고 임용을 합격한 선생님들보다 많은 업무를 요하였다. '업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어요.'라기 말하기 자존심 상했다. 그렇기에 밤 잠을 또다시 줄여가며 이 전 선생님이 어떻게 했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업무를 했는지 분석하였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관련된 장학자료는 샅샅이 뒤져 읽어보고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정리하였다. 나 스스로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야 일이 풀렸다. 그렇게 화장실 가는 것도, 물을 뜨러 가는 시간도 아깝다 여기며 일을 하였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달콤했고, 점점 더 큰 보상으로 나를 유혹했다. 그렇게 나는 교육공무원이 된 지 1년, 본격적으로 일을 한 지 6개월 만에 부장이 되었고, 초등을 위한 교육회복 활동 개발 연구에 참여하며 유아가 아닌 초등을 위한 교육에도 힘썼다.


 공립유치원교사 5년 차. 5시~6시 사이 일어나 장학자료를 보고 오늘 업무를 파악하며 글을 쓰고 출근하여 9시 잠이 들 때까지 나는 부지런히 나의 업무 바구니를 가볍게 만들었지만, 매일 내가 가볍게 만든 무게보다 더 많은 양의 업무가 다시 업무 바구니에 쌓여갔다. 나는 점점 그 업무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올해 1월 만다르트를 이용한 나의 계획이자 해야 할 일은 다음 같았다.


이 중 가장 교사로서의 나를 성장하기 위해 시도하였던 것은

1. 수업연구대회 참가

2. 인성교육실천사례연구발표대회 참가

3. 유아 메타버스 강의

4. 초등 교육 회봉 활동 개발 위원 참여

5. 정보소양인증제 시험(2개 강의 듣기)였다.

이미 이것을 하기 위해 2~3월 단거리 달리기가 시작되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찼음에도 아직 학기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숨을 돌릴 시간은 없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올해 안에 해내야 하는 나만의 과제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교육공무원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고 가정에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착각은 하루 만에 와장창 깨졌다. 이 시스템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눈에 보이는 목표와 보상이 있었고, 그 보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자존감 상승에 너무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교사로서 공무원으로서 모두 만족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에게 소홀할 수는 없었다. 가족을 위해 치른 시험이니 가족을 위한 엄마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하루하루 일과표에는 5분 단위로 해야 할 일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침에 적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내가 스스로 그게 좋아서 시작한 것이 나를 없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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