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도화지에는 깨끗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난 기본적으로 진지한 글쓰기를 즐기지 않는다. 몇가지 이유 중에서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크크크.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뭐... 내 맘이지롱!
글 쓰느라 손꾸락도 얼얼하고 허리도 아픈데, 재미까지 없으면 어우...
그래도 가끔은 진지하게 써야 할 때도 있더라. 이번 글이 바로 그런 글이다.
이유는 읽어보시면 이해되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이해가 되셨으면 한다. 꼭 꼼꼼하게 씹어 삼켜주시길 바란다.
한국의 창업 시장을 되돌아 볼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 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에 대한 제대로 된 실무 이론 체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 책의 내용이, 그 빈틈을 메우고 창업가들의 막막함을 덜어주는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우선 우리가 흔히 쓰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의 제자리부터 찾아보자. 용어의 정의가 흔들리면 관련 지식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라면, 부디 창업 전에 아래 두 문장만큼은 마음 한구석에 단단히 심어두길 권한다. 말 안 통하는 외국에 혼자 떨어져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미리 외국어 연습 좀 해둘 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창업 후에 하는 후회는 여행 중 말이 안통해서 하는 후회와는 차원이 다른 후회라는 걸 꼭 기억하기 바란다.
이 두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창업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깊은 함정을 피하게 해 줄 귀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스토리텔링에 덧씌워진 오해가 참 많다. 그 안타까운 오해의 시작점은, 결국 이 두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창업자가 결코 놓쳐선 안 될 본질이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스토리텔링 그 자체가 목적이자 종착지인 분야도 분명 존재한다. 소설, 시,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 같은 예술 분야다. 나는 이런 것들을 '선불제 스토리'라 부른다. 독자와 관객은 그 이야기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먼저 연다.
하지만 창업가의 길은 다르다. 우리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빌려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고, 나중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후불제 스토리'의 영역에 있다.
문제는 이 '선불제'와 '후불제'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스토리텔링'이라 통칭한다는 것이다. 사소해보이고 말트집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은 혼동이 낳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는 화술 책들이 넘쳐난다.
유튜브를 켜면 "이 공식만 알면 당장 매출이 터진다"고 유혹하는 썸네일들이 창업자를 반긴다.
안타깝게도, 비즈니스 현장의 치열함을 겪어보지 못했거나 깊이 있는 통찰 없이 유행을 쫓는 일부 사람들이,
문학적 글쓰기 작법을 마치 비즈니스의 비기인 양 전파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땀 흘리는 노력 없이 이 약 한 알이면 몸짱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달콤해 보이지만, 현실의 창업은 그런 요행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지저분한 도화지에는 깨끗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실무에서 통하는 '실용 스토리텔링'을 익히고 구사하고 싶다면?
! 반드시 지워야 할 두 개의 진한 낙서 그림이 있다.
이 두 가지 그림만 확실하게 지워도, 제대로 된 '창업 스토리텔링 예습'의 시작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잘못 그려진 그림
스토리텔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기술이라는 낙서
첫 번째는 스토리텔링을 '유창한 입담'이나 '재치 있는 글솜씨'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못 해"라고 포기하거나,
반대로 "말 좀 지어내는 건 자신 있지"라며 덤벼드는 것 모두 같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창업자들이 알아야 할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은 쉽지 않다.
만약 이것이 몇 마디 말 기술로 해결되는 문제라면, 왜 수많은 '말 잘하는' 사장님들이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가지고도 매출에 어려움을 겪겠는가?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입으로 잠시 부리는 '기교'가 아니다.
머리로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다.
말재주가 벽돌을 예쁘게 쌓는 소꿉놀이라면, 스토리 전략은 그 벽돌로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적 설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소비자의 '결핍'을 진단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무작정 쏟아내는 게 아니다. 의사가 환자의 아픈 곳을 먼저 살피듯, 지금 내 고객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목말라하는지 찾아내야 정확하게 그 지점을 타격할 수 있다.
둘째, 브랜드가 가진 자산 중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소재'를 선별하는 안목이다.
스토리텔링을 '자서전' 쓰는 일로 착각하는 창업자들이 많다.
그런데 비즈니스라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다.
소비자가 주인공이다.
이 사실을 잊으면, 그 소비자를 당신의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나의 경험이나 전문성을 '자랑'하기 위해 꺼내는 것이 아니라,
타겟이 겪고 있는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해결의 실마리'로서 스토리를 제공해야 한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 우리 제품이 가진 우수성, 창업의 계기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주인공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를 성공적인 결말로 이끌어주기 위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할 소중한 소품이자 배경이 되어야 한다.
셋째, 소비자의 마음이 흐를 수 있는 길을 내어 깔아 주는 것이다.
재료가 준비되었다면, 고객이 의심 없이 구매까지 걸어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야 한다.
감정에 호소하다가 갑자기 논리로 뛰지 않고 청자의 심리 변화에 맞춰 순서대로 이야기를 배열하는 구조화 능력이 필요하다.
넷째, 마침내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모든 설계의 목적은 단 하나다. 소비자에게서 "재미있네요"라는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이건 나에게 필요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은 감수성 풍부한 문학 청년의 글짓기가 아니다.
상대의 결핍을 읽고,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그 지점을 타격하여,
결국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냉철한 승부사의 작전계획서에 가깝다.
시중의 강의들이 말하는 '3분 꿀팁'이나 '마법의 문장' 같은 건 없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
벽돌을 쌓는 기본 규칙을 배웠다고 해서 누구나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설계도 없는 시공은 붕괴를 부를 뿐이다.
'생각하는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된 사람만이 이 무기를 가질 자격이 있다.
(제가 무슨 자격증을 드리는 건 아니지만, 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두 번째 잘못 그려진 그림
스토리텔링의 목적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접근
두 번째 낙서는 더 구체적이고 살짝 더 치명적이다.
많은 창업자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 자체에만 집중하고,
목표에 적합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신경쓰지 않는다.
창업자는 열심히 홍보용 상세페이지를 기획하고, 그럴 듯한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그리고 뿌듯해하며 안도한다.
"좋아! 이제 우리 브랜드 스토리를 다 보여줬어. 다들 감동하겠지? 크크크"
하지만 매출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물론 최소한의 상품성을 갖추고 있을 경우에 한해서다.)
스토리텔링을 했을 뿐,
지속적인 스토리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 장면을 상상해보자.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경험담을 말해주는 독백 연기는 스토리텔링이다.
상대의 눈을 보고 반응을 살피며 마음을 얻어내는 대화는 스토리 커뮤니케이션이다.
창업자가 만나는 청중은 돈을 이미 지불한,
너.그.러.운.관.객.
...이 아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템에(그것이 전문성, 기술, 서비스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그저 이름 모를 소비자일 뿐이다.
그들은 당신의 독백을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어쩔 땐 냉소적이기까지 한 바로 그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여,
기어이 지갑을 여는 고객으로 신분을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목표 타겟을 향해 전개하는
스토리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오해들이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만이라도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너무나도 당연한데,
많은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쉽게 가는 길은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가는 '진짜 공부'의 길이 열린다.
예습은 예비창업자의 특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