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분해 : 구조 분해 훈련법
훈련된 스토리텔러들에게는 하나의 '스위치'가 있다.
이야기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들은 언제든 자신의 경험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능숙하게 '서사의 기본 구성 요소'로 분해하는 스위치를 누른다.
'그때 느꼈던 이 감정과 생각(막막함, 환희, 슬픔, 황당, 즐거움, 깨달음 등)을 청자에게 전달하려면, 당시의 그 상황(배경)과 바로 그 장애물(갈등)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보여줘야 해!'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요소들로 짜여진 구조로 변환하기 위한 첫 번째 스위치다.
프로와 아마추어 스토리텔러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 중 하나다.
물론 이 스위치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수백 수천 편의 스토리를 쓰고 고치고 내고 평가받고 또 시도하면서, 감정과 생각을 객관화하는 훈련을 반복한 끝에 갖게 되는 전문적 역량이다.
현실 세계의 창업자들이 겪는 문제는 그 역량이 체화될 때까지 투자할 만한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당장 내 브랜드를 알리고 소비자를 설득해서 지갑을 열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경험이 쌓이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막연한 경험의 양이 아닌, 확실한 '도구'를 밀도있게 활용해야 한다.
복잡한 내 경험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면 서사의 기본 요소가 튀어나오고 서사의 뼈대를 잡을 준비 상태로 만들어주는 틀.
바로 스토리텔러의 사고법 2단계, '구조 분해' 훈련이다.
창업스토리텔링 예습 6화에서 정리한 경험 소재 중 '태그'를 달아 선별해 둔 녀석 중 하나를 골라 보자.
그리고 작업대 위에 올려 놓고 제작자의 자세로 하나씩 분해를 시작해 보자.
이 훈련의 목표는 '감정'을 잠시 다른 곳에 보관하고, 그 경험을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 요소를 솎아내는 것이다.
실용 스토리텔링 훈련 과정으로 개발한 S.U.I.T의 두번째 워크시트 T2(경험 분해)는 이 분해 작업을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도구다. 일반인들의 실용 스토리텔링 역량을 강화하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예비창업자들의 기본기 훈련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거창한 위기가 아니어도 좋다.
예를 들어 보자.
수작업으로 직접 만든 상품 판매를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며 겪는 사장님이 밤잠을 설친 경험.
이 경험도 쪼개보면 크게 3가지 핵심 요소로 분해할 수 있다.
[S.U.I.T 워크시트 T2 - 경험 분해]
첫 번째 질문은 [주인공 객관화]다.
여기서 핵심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그 상황 속에서, 그 장애물을 넘어서까지 내가 '무엇을 원했는가, '욕망'를 정의하는 것이다.
(X) 감정적 서술:
"열심히 만들었는데 상세페이지 조회수가 안 나와서 우울했다."
(O) 요소 분해:
- 상태: 대량 생산 저가 상품들이 장악한 시장에 뛰어든, 가진 건 손기술뿐인 1인 제작자.
- 욕망(목표): 가격 경쟁력은 밀리지만, 공산품에는 없는 '손맛'과 '디테일'의 가치를 알아주는 첫 번째 '찐팬'을 만나는 것.
'우울하다', 이것은 감정이다.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이것은 목표이자 소망이다.
이 목표와 소망이 있어야 이야기에서 의미를 가진 주인공이 된다.
두 번째 질문은 [방해 요소와 갈등 정의]다.
배경 속에서 주인공이 무언가를 하려 했는데, 발을 걸어 방해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적은 무엇인가?
(X) 감정적 서술:
"비슷한 디자인의 중국산 카피 제품이 내 가격의 3분의 1에 팔리고 있어서 확 짜증이 났다."
(O) 요소 분해:
- 방해 요소: 품질보다는 '최저가 정렬'을 유도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저가 공세.
- 결정적 사건: 밤새 바느질로 올린 내 상품 바로 옆에, 모양만 베낀 저가 상품이 '추천 상품'으로 뜬 순간.
'짜증 난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지만 이 순간에 당신은 사업가다.
사업자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이런 일상의 경험을
'거대 알고리즘과 저가 공세'라는 장애물로 규정하는 순간,
당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하는 주인공이 된다.
세 번째 질문은 [시공간 배경 의미 정의]다.
단순히 "어제 새벽, 내 방"이라고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분해 훈련 단계에선 그 시간과 장소가 주인공에게 '왜 중요한지'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좋다.
(X) 감정적 서술:
"새벽 3시까지 방에서 툴툴거리면서 택배를 쌌다."
(O) 요소 분해:
- 시간의 의미: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내 제품의 마감과 판매준비가 완벽한지 검수할 수 있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
- 공간의 의미: 침대 옆 조그마한 책상 위. 좁고 초라하지만, 내 브랜드가 시작되는 가장 치열한 전초기지.
- 배경에 의미를 부여하면 드라마가 시작되고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 청자는 좁은 방구석을 보며 '처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스토리텔러의 의도에 따라 브랜드 탄생의 '비장함'이나 창업자의 마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분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주인공이 경험한 새벽의 고민은 더 이상 초보 사업자의 징징거림이 아니다.
명확한 문장들로 정리된 '브랜드 스토리'가 되고, 소비자와 소통하며 매출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훌륭한 무기 재료가 된다.
"저가 공세(방해 요소) 속에서도 디테일을 포기하지 않는 제작자(나)가, 1평짜리 작업실(배경)에서 밤을 새우며 '고급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제야 비로소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 '재료'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재료들로 서사의 뼈대가 완성되면?
거기부터가 출발점이 된다.
"왜 이렇게 비싸요?"라고 묻는 대신
"사장님, 멋지네요. 응원합니다. 구매했어요"라는 댓글을 볼 수 있는
바로 그 출발점 말이다.
감정을 덜어내고 서사의 기본 요소를 추려내는 이 단순한 훈련이, 당신의 시간을 수 개월, 수 년 이상 아껴줄 것이다.
마음 갈 때 펜을 들고 지금 생각나는 그날의 그 경험을 분해해보자.
(다음 화 예고)
서사의 뼈대를 세우기 위한 재료들로 분해를 완료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상황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볼 차례다.
주인공인 '나'를 타인처럼 바라보는 기술, 스토리텔러의 사고법 4화 '3단계: 관점 전환' 훈련법이 이어진다.
이번 화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필드에서 비즈니스 콘텐츠만 만들어 왔는데 다양한 브런치 작가님들에게 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게 아직까지 조심스럽고 쑥스럽습니다. 좋은 생각과 관점을 갖고 계실텐데 마음 가실 때 쓰고 계신 글을 소개해 주세요. 댓글 남겨주시면 저도 꼭 넘어가서 읽어보겠습니다.
다양한 작가님들의 여러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보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