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너무나 기다리던 <토이스토리 4>가 개봉을 했습니다. 저도 개봉한 주말에 달려가서 보고 왔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3편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가볍게 100만은 넘었고 예매율 2위의 성적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토이스토리 3>에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이제 나올 이야기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미 위대하신 그분들께서는 4편을 너무나 멋지게 만들어 개봉을 해버렸습니다. 그분들의 위대함이란 ....
암튼 <토이스토리 4>는 3와는 너무나 다른 매력 그리고 완벽하게 새로운 스토리로 저를 매료시켜버렸습니다. 당연히 왓챠 별점은 4.5를 줬습니다. 0.5점은 5편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주지 않았습니다 ㅜㅜ
영화 자체는 무거운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보면 장난감은 아이들의 중간 대상 역할이자 상대적 의존 단계로 넘어가게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즉,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자 어머니처럼 항상 옆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1, 2, 3를 보는 동안 몰랐지만 조금 배우면서 새롭게 본 <토이스토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사람의 성격에는 3가지 구성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원초아 (본능), 자아, 초자아로 구성이 된다고 했습니다. 원초아는 본능 그 자체 빙산으로 치면 아래에 해당이 되고 초자아는 도덕적인 면에 해당합니다. 자아는 이 둘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인간의 성격은 이렇게 형성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본능은 있고 도덕적인 면은 가지고 있지만 얼마나 통제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좌우된다고 보면 됩니다.
장난감 세계에서도 그렇습니다. 1편부터 4편까지 모두 같은 주제입니다. 인간에 속해있는 장난감이 소유물로써 역할을 다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4편 초반까지 우디는 장난감으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초자아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우디는 항상 앤디에 소유물임을 주위 장난감에게 각인시키고 앤디의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포키가 위험에 빠졌을 때도 장난감보다 보니 걱정을 하며 가장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버즈와 보핍은 자아와 본능입니다. 특히 보핍은 인간으로의 완벽한 독립을 꿈꾸며 비도덕적인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버즈는 이번 4편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속마음에 의존하며 우디를 찾아가고 보와 우디의 입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초자아와 본능 사이 조절하는 역할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원래 이 이론은 한 인간의 성격 속 3가지 모습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각기 다른 장난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장난감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자유에 대한 고민을 앞선 3편까지와는 다르게 심도 있게 그려냈습니다.
지금까지 악당으로 나왔던 프로스펙터와 랏소 베어의 공통점은 인간의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다른 장난감에게도 인간은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이들의 본성이 나쁜 게 아닙니다. 다만, 이들의 행동들은 내면의 상처를 다른 이에게 투사하며 자신의 상처를 낫게 하려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행동들이 영화 속에서는 악당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4편의 개비 개비는 조금 다른 캐릭터입니다. 인간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자아의 두 가지 양면을 보여줍니다. 우디의 소리상자를 강탈하려는 의도는 인간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자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복한 결과를 위해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즉, 개비 개비는 인간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를 비현실적이고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자아를 방어합니다.
이들을 악당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 봤던 장난감들의 행동들은 이제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보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던 장난감은 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자기만의 '애착 인형'을 생각하면 됩니다. 자신만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의 존재를 대신하는 존재로 장난감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실 이 개념은 3편까지는 애매했습니다. 왜냐하면 앤디의 나이는 장난감을 벗어나야 하는 나이였고 거의 왕따 수준으로 장난감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편의 보니에게는 딱 맞는 개념입니다. 유치원에 가야 하는 보니는 장난감을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슬퍼합니다. 그리고 우디는 몰래 따라가 보니의 수호천사 역할을 하죠. 보니는 그 과정에서 <토이스토리 4>의 메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 포키를 만듭니다. 포키를 만드는 행위를 통해 보니는 안정감을 찾았고 집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됩니다. 집에 온 포키는 자신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본능적으로 쓰레기통에 가고 우디는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포키를 회유합니다. 너는 장난감이라고 계속 주입시키죠. 그런 주입 덕분에 마지막에 포키는 자신이 장난감이고 보니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장난감은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포키는 중간 대상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우디는 단순히 장난감이 아닌 장난감이 아이에게 주는 안정감을 보여줍니다. 인간과 장난감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으며 서로 주고받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영화였기에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으며 정말 재밌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토이스토리 4>의 최고의 화제 대상은 보핍이었습니다. 그동안 시리즈에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4편에서 떡하니 여전사 콘셉트로 등장합니다. 반갑기도 했지만 우리가 알던 1편의 보핍과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나워진 보핍을 보는 시선들은 현재도 논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기술의 발전과 7년의 시간으로 짐작해보면 보핍의 얼굴이 변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보핍에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 즉, 우리가 보핍에게 씌어놓았던 프레임이 이제는 안 먹힌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양을 돌보며 착했던 보핍이 우디와 친구들을 지도하는 역할이 되면서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프레임을 깨버립니다. 그동안 PC들이 원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PC들은 이번에는 나름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보핍을 여성성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만들었고 우디 역시 장난감은 누군가의 소유물이라는 프레임을 깨버렸습니다.
다른 영화보다 프레임 깨기가 자연스러웠고 스토리의 흐름 상에서도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PC 영화들이 비난받은 이유가 억지성이 강했다면 <토이스토리 4>에서는 납득이 가는 이유들이었습니다.
뭐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서 캐릭터, 스토리, 재미, 감동까지 모두 잡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약간의 사족으로 보거나 리부트를 위한 초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 당연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기존 캐릭터 포테이토 헤드, 햄, 렉스 등의 등장 신 자체가 줄어들었고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는 무대가 되어서 팬의 입장에서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존재감이 너무 없었고 살릴 수 있는 요소들까지 죽인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토이스토리>는 유년 시절 애니메이션 영화의 상징이자 사랑스러운 영화이기 때문에 이제는 4편에서 이 기억을 묻어두고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끝나고 피규어를 사려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