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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바 Jun 11. 2020

돼지가 꿈꾸던 판타지

영화 붉은 돼지



최근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감상했습니다. 어렸을 때 극장에서 감상했던 그 때의 감정과 어른이 되어서 보는 감정이 동일선 상에 놓여지면서도 어렸을 때는 몰랐던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치히로 아빠 차는 아우디이고 일본에서 모시는 신의 다양성과 사당에 관한 디테일한 부분들을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면서 봤습니다. 과거 작품을 어른이 되어서 감상한다는 의미는 모르고 지나쳤던 그리고 보였지만 몰랐던 부분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들의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궁금했던 영화 붉은 돼지부터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적어놓은 원제 porco rosso는 이탈리아 어이고 영어로는 crimson pig입니다. 영어보다는 porco rosso라는 말이 더 상징성을 띄는 것 같아 이탈리어 원제를 적었습니다. 영화를 본 직후 생각하던 영화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저 다른 지브리 영화처럼 마녀가 사람을 돼지로 만들고 이를 풀어가는 스토리와 가슴 벅차오르는 ost로 낭만이 가득한 돼지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직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붉은 돼지의 상징성에 대해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에 관련한 이야기인 것은 알았으나 붉은색 비행기를 탄 돼지와 그 주위 사람들이 끌어가는 극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파시즘과 1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내용임을 인지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에 그쳤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작품이었고 풀어나가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을 짧은 시간에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


영화 해석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이 되어 영화를 보면서 어떠한 생각이 들었는지 간단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른 인물보다 포르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돼지로 변한 이유는 해석하면 안 된다.

영화 붉은 돼지를 제일 먼저 접하면 가장 큰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는 왜 돼지로 변했는가? 저도 궁금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마녀에 의해 그랬을 것이라고 단정을 내렸었고 영화를 보면서는 돼지가 된 이유에만 집중을 하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영화 해석학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포르코는 조국에 대한 반발심과 전쟁 중 발생한 인간 혐오로 인해 변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돼지의 변곡점이 전쟁이라는 계기가 되어서 경계가 사라지며 우리는 누구나 돼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질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면서 돼지가 된 이유에 집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그저 돼지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상징성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디테일들을 놓치기 때문이죠. 작 중 하나의 설정으로 이해하고 본다면 작품을 보기가 더 수월해집니다.



해석이 주는 뭉개짐의 강도

붉은 돼지 해석은 문제점을 수반합니다. 제가 해석하며 감상하다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해석을 하는 순간 영화 전체가 뭉개져버립니다. 뭉개지는 강도가 굉장합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풍경 그리고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OST 역시 해석을 하려고 집중하는 순간 영화의 본질에는 다가가겠지만 영화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흐려져버립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대사나 감정들에는 집중하기 힘들어집니다. 돼지가 된 이유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면 다른 인물들이 하는 행동이나 대사를 유추하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적인 면에서 중요하지 않은 장면과 대사들은 자체적으로 거르면서 듣게 됩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PIG'S FANTASY

지브리 영화들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대부분입니다. 알고 계시는 대부분 영화들이 그렇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그렇죠. 영화 붉은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돼지가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집니다. 영화를 접한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자신만의 판타지를 적용시켜 영화를 이해합니다. 이런 매력들이 계속해서 지브리 영화들을 보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런 판타지를 인물들에게 주입시킵니다.


포르코는 자신만의 판타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무슨 판타지를 꿈꾸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조국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단순히 포르코가 영화에서 읊어내는 대사만으로 그의 판타지를 유추할 뿐입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돼지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는 다각적인 인물이고 예측하기 힘든 인물입니다. 피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지나를 항상 마음 졸이게 하는 꼰대이면서 츤데레적인 측면을 가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참 재밌는 인물입니다. 어떤 이는 중년 남자가 꿈꾸는 모습이라고도 하고 이런 모습들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도 있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인기가 없는 남자였지만 과거의 관점에서는 이런 남성들이 많았고 또 인기가 많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불편한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포르코가 꿈꾸던 판타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돼지가 된 이유보다 중요합니다. 돼지가 된 이유가 전쟁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라면 그가 꿈꾸던 판타지는 전쟁이 아닌 포르코 개인이 생각하던 미래이자 불가능한 무언가이기 때문이죠.


저는 포르코의 판타지를 피오와의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피오와 포르코의 관계는 특이합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피오의 매력은 중후반부에 빛이 납니다. 그리고 피오만이 포르코의 과거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우리가 궁금해하는 포르코가 변한 이유를 알려주죠.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피오가 포르코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함과 동시에 포르코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의 꿈꾸는 판타지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입니다. 포르코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미래로 나아가기보다 과거에 대해 젖어있고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전쟁에 대한 무언의 압박 그리고 전쟁이 바꿔버린 무언가를 은연중에 생각나게 합니다. 결국 과거에 대한 향수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판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여러분이 영화를 해석하기보다 포르코가 꿈꾸었던 판타지가 무엇이었는지 찾아보는 여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과거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가 꿈꾸던 무언가에 대한 것들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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