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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니 최 Jun 22. 2022

뽀롱뽀롱 뽀로로

친구들아 모두 모여라, <뽀로로> 리뷰

뽀롱뽀롱 뽀로로

친구들아 모두 모여라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뽀로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 예능프로를 보는데 예능프로에서 ‘뽀로로’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XX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의 대통령인 뽀로로를 이길 수 없어요, 라고. 흥미로웠다. 그냥 ‘뽀로로’도 아닌,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라니. 하지만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방송에서는 그런 류의 오버가 흔한 것이니까. 그런데 뽀로로의 위력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 왔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조카가 많은 편인데, 하루는 사촌오빠가 집안에 일이 생겨 딸을 우리집에 맡겼다. 종일 놀아주어도 칭얼거리며 아빠를 찾았다. 새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뽀로로를 보여주면 뚝 그칠 것이라 했다. 반신반의하며 틀어줬다. 정말로 ‘뚝’ 그쳤다. 호기심에 조카에게 물어봤다. 민선아. 민선이도 뽀로로 좋아해? 겨우 돌이 지난, 아빠라는 발음도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그 어린애가 ‘뽀로로’라는 단어는 또박또박 발음했다. 울지도 않고 뽀로로만 몇 시간을 보았고, 나중에는 사촌오빠가집에 가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않고 뽀로로를 틀어달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예능프로에서 들었던 그 말이 ‘오버’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뽀로로는 정말로 아이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인 나까지 뽀로로가 지배할 수 있을까 라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며, 뽀로로 감상에 들어갔다. 내가 고른 것은 뽀로로 1기다. 뽀로로에 대한 사전지식이라고는 ‘뽀로로’라는 이름과, ‘아이들이 좋아한다’가 전부였기 때문에 1기를 골랐다. 1기에는 총, 다섯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고글을 쓰고 다니는 주인공 뽀로로, 뽀로로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기공룡 크롱, 덩치 크고 마음씨 좋은 (내 기준에서는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을 한) 포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막여우 에디 (에디슨이 연상되는 이름을 가졌다. 그 이름에 걸맞게 발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얼음마을에 사는 ‘사막여우’라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 유일한 여자캐릭터인 비버 루피가 그 주인공들이다. 

  뽀로로를 직접 감상하면서 의외의 사실, 두 가지를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뽀로로의 방영시간이 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뽀로로는 아니지만 나도 분명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자랐다. 핑구나 텔레토비 같은 것들이 내가 보았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방영시간이 분명 5분은 넘었었다. 한 에피소드에 20분 정도의 시간은 소요되었던 것 같고, 그 정도 시간은 써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텐데, 고작 5분으로 무엇을 한다는 거지?  5분짜리 이야기가 가능은 한가, 5분짜리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것치고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지 않은가 등등,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재생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고작’ 5분짜리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스토리가 탄탄하지 않거나, 등장인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날 수 없는 새인 펭귄인 뽀로로가 하늘을 날고 싶어하자, 헤엄치는 법을 알려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는 재미를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5분 안에 담기에는 많은 내용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보면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용에도 더 깊게 빠져들 수 있고, 몰입하여 보다보니 5분보다 길게 느껴졌다. 제작자가 굉장히 영리하게, 잘 계산해서 만든 ‘경제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자가 택한 ‘경제적인 방법’이 바로 ‘캐릭터의 적절한 활용’이었다. 우선, 각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는데, 매회 다른 캐릭터들이 중심인물이 된다. 주인공이 ‘뽀로로’라고 해서 ‘뽀로로’의 이야기만 다루지는 않는다. 1기의 첫 화는 크롱의 등장이 주된 소재이자, 이야기라 중심인물은 ‘크롱’이었고, 다음팡팡에 올라와있는 마지막회 15화의 주인공은 에디였다. 이처럼 각 에피소드마다 이야기, 주제, 그리고 그와 상응하는 인물들을 중점적으로 등장시키다보니 늘어지거나 버려질 부분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끼워넣는 부분 같은 것들)이 거의 없다. 5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5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다. 어린아이들의 집중력과 성인의 집중력의 시간은 월등히 차이가 난다. (영화관에서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본다.) 초등학교의 수업시간과 고등학교, 대학교의 수업시간의 차이가 있는 것도 각 나이대별로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의 시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 타겟층이 어린아이들인 애니메이션인만큼 뽀로로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애를 썼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집중력을 이끌어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뽀로로의 폭발적인 인기요인 중 하나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뽀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겠다. ‘5분’의 시간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캐릭터’ 그 자체였다. 뽀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를 아주 잘 활용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심인물을 정하여 이야기를 짧게 만들어낸 점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주인공’인 뽀로로가 선한 역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주인공이라고 하면, (특히 어린이들을 타겟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들은) 지나치게 선하거나, 히어로적이고, 도덕적인 인물로 그리기 마련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뽀로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친구들의 물건을 가지고 놀다 망가트리기도 하고,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 속상해하는 친구를 보며 놀리고, 심지어는 비웃는 모습까지도 등장하다. 마냥 착하기만 한 주인공 캐릭터를 상상했던 나는 좀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뽀로로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취학 아동인 아이들 대부분은 내 장난감을 양보하는 것이 착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와 아빠와 선생님이 그게 착한 일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왜 그게 착한 일인지,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까지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지고 싶으니 욕심내고, 떼를 쓰고, 가끔은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게 그 나이대 아이들의 흔한 모습이니. 뽀로로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분명 가지고 있다. 친구들과 착하게 잘 놀다가, 놀리기도 하고, 이상한 호기심에 사고를 치기도 하고. 뽀로로의 그런 모습이 아이들의 공감을 샀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공감을 사는 캐릭터 중에는 ‘크롱’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크롱은 뽀로로가 주운 알에서 태어난 아기 공룡으로, 1기에서는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해, 말을 하지 못한다. 핑구나, 패트와 매트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런 애니메이션들은 ‘모든 등장인물’이 말을 못하기 마련이지, 특정 캐릭터만 말을 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뽀로로에서는 오직 크롱만 말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소통을 하지 못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크롱은 몸짓과 표정으로 뽀로로 속 캐릭터들과 분명 소통하고 있었다. 크롱은 그럼 누구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 유아보다 어린, 영아를 뜻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아이들은 뽀로로와 친구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크롱을 답답해하거나 따돌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주위에 있는 동생을 떠올리고, 나보다 어린 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캐릭터들의 외모도 중요한 점 중 하나이다. 장신인 포비를 제외하고 다른 캐릭터들은 전부 이등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친근감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과 대목에 동의하는 바이다. 아이들도 4등신, 2등신이기 때문에 2등신 캐릭터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2등신 캐릭터들은 얼굴의 비율을 키우기 때문에, 표정을 더욱 잘 볼 수 있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캐릭터들에게 친근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캐릭터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사막여우인 ‘에디’는 사막여우라는 특성 때문에 뾰족한 귀와 눈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에디를 자세히 보면 귀의 끝도 둥글고, 얼굴도 둥글둥글하여 ‘뾰족하다’는 느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선보다는 곡선에서 ‘친근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삼각형이 아닌 동그란 공을 가지고 노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의 외모가 ‘친근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한다.

  각 캐릭터마다 가지고 있는 ‘성격’이 다 다른 것도, 개성적이라 좋다고 느꼈다. 실제로 ‘뽀로로’의 인기가 월등히 많은 편이지만, 크롱이나 루피의 인기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아이들마다 공감을 가지며 좋아하는 캐릭터가 다르고, 그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 나이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텔레토비’도 각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성격이 각자 달라서, 서로 좋아하는 캐릭터가 각각 달랐으니 말이다.

  뽀로로는 이런 ‘잘 만들진 캐릭터들’의 힘을 빌어, 인형, 칫솔, 치약, 식판, 가방, 교육용 애니메이션, 책 등으로 제작되어 절찬리에 판매중이다. ‘아이들’이 주 소비층인 품목, 그것도 ‘나쁜 상품’이 아닌, ‘좋은 상품’에만 뽀로로가 그려져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뽀로로는 탄산음료나 인스턴트 같은 ‘나쁜 상품’에는 캐릭터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부모들의 신뢰를 얻게 하고, 결국 아이들이 볼 애니메이션을 고르는 엄마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는 아이에게 곶감 하나주면 뚝 그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는 곶감 대신, 사탕 대신, ‘뽀로로’를 틀어주는 시대가 되었다. 뽀로로가 얼마나 더 오래 아이들을 ‘지배’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성장하는 애니메이션인 뽀로로에겐 한계가 있다고 점치지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뽀로로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이라 느낀다.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는, 그런 ‘친구’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뽀로로는 앞으로도 오래, 아이들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앞으로도 오래 아이들 곁에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





2015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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