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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l 14. 2022

타노스는 왜 손가락을 튕겼나?

맬서스 -인구론-

 

#타노스는 악당인가? 구원자인가   

  

타노스가 나타났다. 드디어 어벤져스 시리즈의 종결자 최강 악당이 등장했다. 다짜고짜 등장해서 인피니티 스톤을 모은다고 하는데, 머 이 정도까지면 늘 봐왔던 악당들처럼 세계 정복? 우주정복을 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자신의 가장 아끼는 딸까지 버리면서 이루려 했던 그 대의(?)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인류의 절반을 없앤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손가락만 휙 튕겨서.. 언뜻 보면 다른 악당들처럼 사회 불만이 많은 그저 그런 자기도취에 취한 싸이코 패스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전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반을 죽인 다고 하는 것이다. 자원은 부족한데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간다는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학자가 이었다. 바로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에 식량은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인구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애 낳지 마!! 씻지 마!!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마! 길거리를 오염시켜라! 등등 다소 듣기에 거북하고 목사가 하기에 부적절한 주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체 맬서스는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주장을 했던 것인가?     


#맬서스의 세계     


인간은 3대 욕구(수면욕, 식욕, 성욕)가 있다. 욕구라 통제 불가능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잠이 오면 잠자면 그만이지만 식욕과 성욕은 복잡한 미래문제를 낳는다. 어제 아무리 과식을 했더라도 우리 인간은 오늘이면 입에 또 무언가를 넣어줘야 살 수 있다. 문제는 매일 3끼를 먹어야 하는 인류가 많아짐에 있다. 통제되지 않은 이 욕구 때문에 인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맬서스는 주장한다. 자꾸만 입이 늘어 가는데 그만큼 식량의 생산량은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삶의 질이 기술발전이나 문명화 정도가 아니라 인구조절에 있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식구가 많은 집에서 태어난 것보다 외동으로 태어나는 게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농업시대든 산업시대든 말이다. 타히티 섬의 원주민이 영국 선원들보다 적게 일하고 더 풍성하게 먹고 살 듯이, 또한 구석기인들이 오히려 신석기 인들보다 더 균형 잡힌 식사를 했으며 키도 컷 듯이 말이다. 


또한 전통 시대의 유럽이 아시아보다 잘 살았던 이유가 더러웠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아이러니하다. 화장실과 목욕문화가 발달했던 동양은 상대적으로 위생적이었기 때문에 전염병에 강하고 평균수명이 높았다. 이런 좋은 결과가 오히려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맬서스는 우리를 비웃듯이 꼬집는다. 흥부 놀부처럼 흥부가 가난한 것이 순전히 자녀계획을 하지 못한 무능력한데 너무 사랑한 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산업화 시대 정부차원에서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 한다 “ 표어가 유행할 정도로 인구조절(?)에 압박을 넣을 때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 또한 1가구 1자녀 정책을 시행했다. 모두들 맬서스의 인구론을 잘 이해하고 타노스를 이해한 정책이었다. 실제로 맬서스의 주장은 전통 농업사회에 잘 들어맞는다. 농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농업은 그 특성상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당연히 많은 노동력은 엄청난 생산력의 기반이 되고 이는 나라의 힘 군사력까지 연결된다. 따라서 전통시대 군주들은 인구에 대해 그토록 신경을 쓴다. 5가 작통제, 호패법, 등 인구는 곧 세금의 원천이자 혹시 반란세력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다만 농업의 문제점은 바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풍년에는 먹고살만해져서 아이를 많이 낳으니 전체 국가의 인구는 증가하고 국력은 증가하지만 1인당 GDP는 그대 로거나 늘지 않는다. 하지만 기근이 오면 먹거리가 부족하니 하층민부터 굶어 죽거나 도적이 되거나 혁명이나 반란이 씨앗이 된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까지 돌면 더 많은 인류가 사라진다. 바로 이것을 맬서스 트랩(덫)이라 한다. 롤러코스터 그래프 모양처럼 인구는 늘었다가 줄어드는데 오히려 인구가 줄었을 때 1인당 삶의 질이 더 좋았다는 점이다. 중세시대 흑사병이 돌자 전 인구가 30%가 사망했지만 오히려 1인당 칼로리양이 30%나 늘었으니 말이다.      


 # 균형과 생태계     


 다시 정리하면 인구가 늘면 나라 전체와 문명 발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오히려 1인당 삶의 질은 떨어진다는 게 맬서스의 주 된 시사점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산업혁명 전까지 인류 역사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역대 우리 왕 중에 훌륭한 왕은 누구일까? 위대한 업적과 농업 생산량을 증대해서 인구를 대폭 늘린 왕은 과연 좋은 왕이었을까? 혹은 구빈법을 적극 실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친 왕은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또한 현대 사회에 첨예한 문제인 ‘난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만 할까?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일은 그저 좁은 양계장 안에 더 많은 닭을 집 어 넣는 것 에 불과할까? 맬서스는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고 당연한 문제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못 사는 사람은 혹은 어려운 사람은 그냥 자연도태되게 버려두라는 것인데, 이것은 도저히 학교에서 배운 도덕과 우리 사회의 통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 모순적인 것은 우리는 동물의 왕국에서 달리기가 느린 사슴이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걸 보고 불쌍해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건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는 소 돼지에게 감사하지만 미안 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인류도 생태계의 일부이고 먹이사슬 피라미드가 있어 자연이 균형 상태가 유지되듯이, 마찬가지로 인구조절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구를 조절해야 가장 합리적이고 정의로울까? 예를 들어 키가 187CM, 건장한 체격, 우수한 명문대, 유머 감각 , 파란 눈을 가지고 재산이 10억 정도인 사람을 남겨 두는 게 낳을까? 아니면 이와 반대되는 사람을 남겨 두는 게 낳을까?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전자를 소개팅해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역시 세상은 위너만 살아남는 것인가? 한쪽에서는 차별 없는 사회와 평등을 외치지만 tv속 연예인을 동경하고 꿈꾸고, 화려한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의 일상을 부러워하듯이 말이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신분과 지위 관계없이 인류의 절반을 랜덤으로 없애겠다는 타노스의 주장이 더 공정(?) 해 보인다.     



#맬서스에 대한 반론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인구를 조절하자는 맬서스의 주장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그 주장의 힘이 약해진다. 왜냐하면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 책에서 보듯이 지구 상의 인류가 굶주리는 이유는 먹을 것이 부족하진 않기 때문이다. 기아와 전염병보단 설탕중독과 비만 합병증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이거 맛없으니까 안 먹을래요 “ 하는 아이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그렇다면 맬서스의 주장은 이제 힘이 떨어진 것인가? 산업혁명은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지언정 또 다른 식량이라 할 수 있는  ‘자원’ 문제에 봉착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에어컨을 켜고 난방을 한다. 또한 아침에 머리도 감고 칫솔로 양치질도 하고 머리에 왁스도 예쁘게 바르고 밖을 나선다. 이 모든 게 전부 석유라는 자원을 통해서 가능한 일인데, 이러한 삶의 방식을 과연 맬서스는 예측했을까? 이러한 물질적 풍요가 가능했던 이유는 수백만 년 동안 만들어진 석유라는 에너지를 불과 수백 년 만에 퍼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언젠간 떨어질 것이 분명하고 다시 중동국가들은 람보르기니가 아닌 낙타를 타고 비단길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지구의 인구는 과연 100억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우리의 지구는 이 100억이 먹고 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100억이 싼 똥과 쓰레기는 과연 처리할 수 있을까? 태평양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이 한반도보다 크다 던데, 우리 지구는 과연 SF영화처럼 새로운 행성을 향해 떠나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적으로 그전에 인구 조절을 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지구 행성의 위기를 설명할 유력한 이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는 맬서스의 생각에 조금은 의문점이 남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충분히 증명했다. 그렇다면 왜 부자들은 부자가 되었을까? 진화론처럼 그들은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나? 마이클 조던이나 스티브 잡스처럼 충줄한 능력으로 부를 얻었는가? 이 물음에 어떻게 맬서스는 대답할 것인가? 맬서스의 인구가 많아서 문제란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인구가 많아서 줄여한다면 과연 어떤 기준으로 줄여야 할까? 하층민을 줄여햐 한다는 점은 너무 계급적이고 소위 쉬운 주장 같다. 문제 분석과 원인 파악은 잘했으나 무언가 하나인 정답만을 빠르게 내는 오판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차라리 타노스처럼 랜덤으로 없앤다고 주장했으면 오히려 설득력이 생길 수 도 있겠다. 그들의 부가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해서 철저하게 세무조사를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욕구를 통제 못해서 애를 계속 낳는다고 주장했지만, 지금 저출산 시대에 과련 사람들이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지 의문이 든다. 너무 통제해서 학교에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 맬서스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이자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을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맬서스에 반대하는 점은 삶의 질이 과연 1인당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인가? 이점이다.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고, 좋은 교육과 좋은 환경에 자라는 점이 물론 개인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인스타에 올려 누군가에 자랑하듯이 말이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지켜봐 주고 함께 울고 웃을 사람이 있을 때 살아 있는 이유를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시절 동창들과 둘러앉아 만원씩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둘러앉아 자취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10명씩 모여 앉아 먹으니 항상 배불리 먹기는커녕 서로 말도 안 하고 하나라도 더 집어 먹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금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10명이 아니라 혼자서 먹어도 말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데 그때처럼 재미있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다. 일본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독한 미식가‘는 그냥 고독한 사람이다. 혼자서 먹으면 아무리 맛있어도 맛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게 맛있어도 맛있다고 서로 말해주는 사람이 앞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의 명대사가 있다.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알아? “ 

“바로 사람들에게서 잊힐 때 그때 사람은 죽는 거야”     

맬서스는 지독하게 외로웠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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