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티 Jun 29. 2022

비싼 게 잘 팔리는 이유

-무엇이 가격을 결정하는가?-

가격이 오르면 소비는 줄고 내리면 소비는 증가한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 법칙이다. 하지만 명품만큼은 이 자연법칙을 거스른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쌀까? 

식당에서 음식 가격을 올릴 때 항상 하는 말


"죄송하니다만 원자재값 및 인건비 인상으로 부득이하게 다음 달부터 가격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소 불편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간다. 요새 같이 환율도 높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도 하고, 기름값도 오르는데  당연 김치찌개와 돼지고기가 오르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니겠는가? 흔히 원료값이 올라서 가격이 올랐다고 하면 혀를 쯧쯧 차며 볼멘소리를 던지지만 이내 수긍을 하게 된다. 연일 뉴스에서는 곡물값 인상, 유류비 인상, 인건비 인상 등으로 경제가 안 좋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 백화점 명품 매장의 줄은 여전히 놀이동산 줄 마냥 길게 늘어서 있다. 분명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안 좋다고 하는데 왜 명품은 더 잘 팔리는 것일까? 


명품은 원래 사치품이다. 원래 사치를 위해 탄생했다. 그렇다고 누가 사치스러운 것을 사용했을까? 보통 그 시조로 루이 14세를 꼽지만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루이 13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많은 이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왕실의 사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주장했다.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왕실의 화려함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루이 14세는 역사상 최초의 지드레곤 뺨치는 셀럽이 된다. 그의 패션과 사치품은 유럽의 귀족과 왕실의 유행이 되었다. 오늘날 프랑스를 패션과 명품의 나라로 만들었기도 했지만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아이러니다.


왕실의 기품을 위해서 만들어진 명품은 이제 대중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왕이나 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돈만 있으면 명품을 살 수 있는 행복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귀족의 입맛에 맞추어진 필요도 없는 사치품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그렇게나 인기가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샤넬백이든 에코백이든 그 쓰임새는 별반 다르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가방을 사는 목적이 물건을 담는 게 아니라면 그 안에 무엇을 담으려고 할까? 채울 수 없는 욕망과 이루지 못했던 꿈을 담는다. 공식적으로 신분제는 폐지되고 누구나 평등한 시대는 왔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그 시대를 동경하는 것 같다. 피라미드와 카스트 때문에 누군가는 분명히 불행했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고 과시하고 싶고 자기만족을 위해 명품을 구매한다고 이는 예술작품과 같다. 예술작품은 더 이상 원가와 이윤의 세속적인 가치를 뛰어넘는다. 그보다 더 어려운 장인과 열정과 독창성과 예술혼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를 돈으로 매길 수 없듯이 말이다. 


이렇듯이 대중의 욕망과 심리적 효과가 더해지면서 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명품은 그 가격이 정당화된다. 

"문짝이 잘 맞으면 마세라티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단순히 완성도와 품질로 마세라티를 사지 않는다. 일본차 독일차에 비해 거기서 볼 수 없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가성비를 뛰어넘는 게 감성 비라 하지 않는가? 

예술이 된 명품은 이제 숫자 따위는 의미가 없어진다. 


이러한 분위기에 명품회사들은 공격적이고 매우 차별적인 마케팅을 실시한다. "우리는 아무한테나 팔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당신은 살 수가 없다." 스위스의 파텍필립 시계는 이제 손님이 물건이 고르는 게 아니라 회사가 손님을 고른다. 시계를 사려면 자신이 소유했던 시계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까지 봐야 한다. 이 명품에 어울릴만한 손님인가? 과연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심사를 한다. 토르의 망치가 생각나는 시계다. 


"그랜저 사러 왔다가 벤츠샀네" 말이 있듯이 교묘한 심리적인 마케팅이 숨어있다. 이른바 앵커링 효과.

배는 일단 닻을 내리면 아무리 움직여 봤자 닻 주변을 맴돌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가격의 닻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 그 주변을 맴돌지 않을까? 필자가 자전거를 사러 갔을 때 일이다. 무슨 자전거가 500~600이나 하는지 처음에는 의아하고 놀랬지만 심지어 가게 매장에는 1500만 원짜리 자전거 하나만 전시되어 있다. 그것도 가장 높은 자리에 조명도 반짝이면서, BMC라는 자전거 내 마음을 가져간 그 자전거는 꿈에도 아른거린다. 분명 내가 프로 선수도 아니고, 저 문명의 이기를 감당하기엔 체력도 재력도 감당치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왜인지 저걸 사면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앞서 써놓았던 사치재이나 과시욕이네 베블런 효과네 쭉 설명을 해놓았지만 이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1500만 원짜리 보다가 1000만 원짜리 자전거 보니까 또 나름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인다. 마치 대단히 저렴한 것처럼 말이다.


결정적으로 나를 움직였던 사장님의 한마디 


"곧 사장님의 몸도 BMC 자전거에 맞게 올라갈 것입니다." 


끝내 나는 적금을 폭파시켰고, 무언가에 홀리듯 집어 들고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이미 나는 마음 속으로 뚜르 드 프랑스 자전거 대회를 접수했고, 선수들의 땀과 열정과 거친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 자전거를 안타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타는 사람은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보다 그냥 내가 스스로 이 카본 기기와 일체가 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 장비빨인가?


비싼 걸 사는 이유는 간단했다. 행복하다. 


 인간이 지닌 욕망의 결정체 과시, 차별, 인정, 소유, 만족 등등 욕망의 덩어리가 바로 명품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역사가 곧 욕망의 발현이고 무역도 결국 사치품의 교류가 아니었던가? 예전에 뭐 사달라고 떼쓰면 엄마가 하는 말은 "그거 안사면 죽냐?" "그거 없으면 못 사냐?" 뭐 없다고 못살고 죽고 사는 것은 없다. 기름값 오르면 차 안 타고 아니고, 밀가루 값 오르면 치킨을 끊고, 빵 안 먹고, 고기 값 오르면 밥만 먹으면 된다. 곧 우리가 영위하는 모든 게 결국 사치품이 아닌가? 


명품을 두고 부자들의 전리 품리다든지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든지 등 여러 비난이 있다.  

 

하지만 비싼걸 사서 기분을 바꿀 수만 있다면? 괜찮다. 그런데 명품을 사도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때는 멈추어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플라스틱 빔보 -서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