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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ug 10. 2022

슈퍼 히어로를 말하다.

 저는 어릴 적 추석 하면 떠오르는 게 TV에서 항상 틀어주던 성룡 영화였습니다. 통쾌한 액션과 스릴 넘치는 장면, 코믹한 요소가 결합되어 명절 때마다 먹는 음식처럼 매우 친숙하고 맛있는 요리와 비슷했습니다. 요즘은 ‘어벤저스 시리즈’가 성룡 영화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1위가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라고 합니다.) ‘어벤저스 시리즈’는 화려한 액션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거기에 숨 막히고 반전 있는 스토리로 전 세계 영화 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역시 개봉할 때마다 매번 1000만 구름 관객을 불러 모으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영화관으로 달려가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마블, 어벤저스 슈퍼히어로들은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걸까요?   

   

우선, 주인공 캐릭터들은 초인적인 능력과 뛰어난 상황 판단력, 시련에 굴하지 않는 강력한 멘털, 엄청난 재력,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함이 있습니다. 본인의 생명 따윈 신경 쓰지 않고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구합니다.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우고, 불타는 건물에서 하필이면 꼭 갓난아기를 구합니다. 어떠한 보상과 기대를 바라지 않고 말이죠.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거리낌 없이 웃으며 해냅니다.      


 우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슈퍼히어로들은 착할까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일단 플라톤 철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이 어떠한 유혹과 본능에 굴하지 않고 선을 지킬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착하게 살아야 복이 온다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착하다는 건 부모님, 선생님, 어른들에게 반항하지 않고 말을 잘 듣는다는 의미인데, 만약 ‘어른’들의 말이 잘못되었다면 어떨까요? 이처럼 플라톤의 ‘선’은 기존 질서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러한 ‘선’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맞물려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적 근간이 됩니다. 착하게 살면 현실에선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죽어서 ‘천국’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죠. 이러한 ‘선’의 이데올로기는 짧은 역사와 신생국이었던 미국에 크나큰 영향을 줍니다. 신생국이면서 고도로 성장한 미국에겐 나라의 구심점이 될 만한 역사와 철학, 사람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는 ‘상상의 질서’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슈퍼맨’입니다. 더군다나 슈퍼맨의 쫄쫄이는 놀랍게도 미국의 국기와 닮았습니다. 힘이 세고 근육 빵빵 이지만, 착해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슈퍼맨은 어쩌면 미국의 결핍과 불만을 해소해 줄 열등감의 산출물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슈퍼히어로가 착한 이유는 그렇게 되고 싶고 바라는 공동체의 이상이 그들에게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슈퍼히어로들은 하나같이 쫄쫄이를 입고 빵빵한 가슴 근육을 뽐내며, 초능력을 사용해 보통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냅니다. 게다가 배트맨과 아이언맨처럼 빌딩과 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눈부신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니며 옆자리엔 더 눈부신 여자 친구를 태우고 다닙니다. 역시나 그렇듯이 거의 다 미국인들이죠.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이 많고, 잘생기고, 몸 좋고, 싸움 잘하고, 똑똑한 ‘백인’들입니다. 반면, 악당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못생기고, 가난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 불우한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백인이 아니며, 주로 사회나 특정 인물에 대한 복수가 삶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기존 사회에 불만을 갖고 사회를 향해 복수하거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웅과 악당은 모두 법을 지키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며 살인을 저지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 목적과 이유는 다르지만 둘 다 싸우는 과정에서 기물파손을 하고, 실수든 고의든 선량한 시민을 다치게 하며, 싸움이 끝난 후 폐허가 된 현장을 어떠한 보험처리나 보상 없이 유유히 빠져나갑니다. 조금씩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슈퍼 히어로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을 던져봅시다.     


첫째, 세상은 특별한 자가 구하는 것인가?


둘째, 초인은 법과 질서를 무시해도 되는가?


셋째,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을 부여받았는가?


넷째, 그렇다면 그들은 ‘신’인가?   

  

이상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면서,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는 불편한 질문에 답해 봅시다.      


Q1) 세상은 특별한 자가 구하는 것인가?      

 영화 속 스파이더맨은 솔선수범을 넘어 때론 무모하게 아이를 구하고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워 대형 참사를 막습니다. 우린 그에게 대단함을 느끼며 우리도 모르게 영웅의 매력 속에 빨려 들어갑니다. 반면, 영화에 등장하는 경찰과 구급대원들은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쏘지 못하고 벽도 타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배 나온 경찰 아저씨를 보면 자기 몸도 못 지키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슈퍼히어로는 한순간에 그들을 잉여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치 영화배우 ‘조인성’ 옆의 일반인처럼 오징어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한 영화 속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있고 엄마 찾는 우는 아이 마냥 히어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초능력’이라는 게 있어야만 영웅 짓도 할 수 있나 봅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온화한 성품에 동물을 사랑하고 그림 그리기가 취미이며 한 때 노벨 평화상 후보까지 올랐습니다. 바로 ‘히틀러’입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고 우리가 삼겹살을 먹듯이,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통치하는 건 신의 섭리이자 자연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흔히 들었던 [사회진화론+우월성+민족주의]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세웠고, 인류 역사상 끔찍한 사상자를 낸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이 논리는 우리 국민에게도 뼈아픈 상처로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일본에 의해 37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 자주 듣던 소리가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열등하다’였기 때문입니다. 강자는 ‘사자’가 되고 약자는 ‘양’이 되어 어느 순간 피 비린내 나는 전쟁과 침략, 수탈이 자연법칙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됩니다. 물론 히어로는 잘생기고 착해서 이런 마음을 안 먹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비슷한 맥락입니다.     


  Q2) 초인은 법과 질서를 무시해도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영화 [다크 나이트]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다크 나이트]는 기존 질서를 수호하는 영웅 배트맨과 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악당 조커의 한 판 승부를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오락물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게 관객에게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속 조커는 여느 악당들처럼 살인과 방화, 테러를 저지르고 고담시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이를 막기 위해 배트맨은 동분서주하죠. 악을 위해 폭력을 쓰는 자 vs 선을 위해 폭력을 쓰는 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배트맨과 조커 모두 건물을 부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합니다. 또, 배트맨은 자신은 조커와 다르다는 신념 아래 ‘살인은 절대 저지르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배트맨이라는 존재로 인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고, 범죄 이상의 악을 만들어 내는 상황까지 오고 맙니다. 왜냐하면 조커는 배트맨이 자수할 때까지 테러를 강행할 것이기 때문이죠.


 배트맨과 조커 둘 다 목적은 다르지만 똑같이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합니다. 질서를 위한 폭력과 혼돈을 위한 폭력은 무엇이 맞는 것 인지 햇 갈리게 합니다. 영웅과 악당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옳은 것일까요? 


예를 들어 제가 학생을 한 대씩 때려서 점수가 5점씩 오른다면 이 방법은 맞는 것일까요? 선생님 말 안 듣는 아이도 맞아도 괜찮을까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조커는 이런 대사를 외칩니다. “You complete me.” 바로 조커가 배트맨에게 던진 대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도둑이 있어 경찰이 있고, 바이러스가 있어 백신이 있는 것처럼 악당이 있기에 영웅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배트맨이 조커를 완성시킨다니? 악당 주제에 감히 영웅에게 맞으려고 저런 얘기를 하나 생각했습니다. 대체 무슨 뜻일까요? 어째서 인과 관계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백신이 나오면 바이러스가 모두 사라지나요? 바퀴벌레 약이 나왔는데 왜 바퀴벌레는 지구 상에서 2억 년이나 버티고 있는 걸까요? 바퀴벌레 약이 나와서 바퀴벌레가 사라졌다면? 영웅이 등장해서 악당들이 모두 없어졌다면? 백신-약-영웅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 조커의 대사처럼 ‘선’이 존재하려면 필연적으로 ‘악’이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죠. 둘의 관계는 ‘적대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생관계’처럼 보입니다. 어벤저스 시리즈에서도 속편이 나올 수 있다는 자체가 이를 증명합니다. 악당들은 사라 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웅들도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결국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당과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둘이 더 강력해야 더 큰 폭력을 사용해야 화려한 액션 신을 볼 수 있습니다.     

     

  Q3)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을 부여받았나?     


 우리는 투표로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많은 득표를 한 학생이 회장이 됩니다. 잘생겼다고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다수결’이라는 제도를 통해 선출되죠. 보통 사람들의 ‘투표’로써 그 정당성을 인정해주죠.


 반면 이와 반대 개념으로 비범한 사람들이 통치하는 것을 ‘독재’라 합니다. 그들의 정당성은 주몽신화나 아더왕 이야기처럼 활을 잘 쏘거나 남들은 뽑지 못하는 칼을 뽑거나 보통사람들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냅니다. 또한 출생 또한 알에서 태어나느니 하늘에서 왔다더니 하면서 보통사람과는 확연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이와 비슷한 마블의 주인공으로는 천둥의 신 ‘토르’가 있습니다. 그는 천둥의 신이자 아스가르드라는 나라의 왕입니다. ‘욜니르’라는 망치를 번쩍 들어 올려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 자유자재로 천둥을 다루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죠. 당연히 근육 빵빵에 넘치는 남성호르몬을 과시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21c 현대시대에 왕조국가도 아닌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비범하고 기계체조 선수처럼 운동신경이 좋고 격투기 선수처럼 싸움을 잘하는 자는 UFC나 올림픽에 출전해야지, 싸움을 잘한다고 활을 잘 쏜다고, 더더욱 망치를 들 수 있다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대통령을 뽑는다면, 운동선수 출신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네요. 이렇듯이 그들의 자격의 대한 정당성은 매우 봉건적으로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입니다.  에이~ 영화니까 하면서 넘어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어찌 됐던 반복적으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특별하고 초능력자는 왠지 그래도 될 거 같은 생각이 남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벌받지 않으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처벌할 더 힘 센 자(?)는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Q4) 그렇다면 그들은 신인가?     


영화 속 주인공은 전지전능하고, 결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언제나 완벽하게 일을 해냅니다. 마치 신과 같이 말이죠. 인간은 어리석고 불안해하며 실수 투성에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지만 완벽한 그들은 우리 평범한 인간들과 다른 클래스를 보여줍니다. 통치 정당성을 뛰어넘어 영원불멸하다면 유발 하라리 책 사피 엔스의 언급처럼 어쩌면 인간을 뛰어넘는 신이 될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신이 우리를 창조한 게 아니라 인간이 초능력과 같은 넘사벽 힘이 있다면 피조물을 넘어 ‘창조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영화 속 히어로들은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슈트가 없을 때의 불안과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악몽을 시달립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신념이 흔들리면서 고민에 빠지죠. 근육 빵빵 헐크는 자기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 때문에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없다면 외롭게 우주로 떠납니다. 스파이더맨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거미줄을 타고 피자배달 알바를 하고 있네요. 모두 가면을 쓰고 슈트를 입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이중생활을 하고 있죠.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언제나 숨어서 살아야 하죠. 앞으로 상대해야 할 악당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산재는커녕 사람들이 기억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죠. 영웅으로 산다는 건 매우 피곤한 삶인 거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완벽하지도 않고 신도 아니고 모순덩어리인 히어로는 왜 탄생했으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요? 홍길동처럼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웅들 너무도 고맙지만 우리가 이처럼 그들은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한마디로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로또는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또 외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월급 모아서 집을 산다는 건 마치 우리 집 강아지가 말을 한다는 것과 비슷하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영웅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미국의 힘든 상황은 언제였을까요? 바로 1929년 대공황이었습니다. 수 천만 명이 경제적 고통과 내일의 불안 속에 희망의 메시아가 된 슈퍼맨, 경제공황의 무법천지 속에 정의를 수호하는 배트맨, 그들같이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는 법이죠. 우리 역사 속 임진왜란의 이순신, 고구려 안시성 싸움의 양만춘처럼 모두 영웅은 평화의 시절이 아닌 혼돈의 시기에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 사회 양극화가 극심하고, 공권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폭발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구세주처럼 영웅을 찾습니다. 어찌 보면 영웅이 필요한 시대는 영웅이 필요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시기라는 것이죠. 옛 중국의 요순시절에는 백성들의 왕의 이름조차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만큼 평화롭고 살기 좋았다는 뜻이겠죠. 결국 히어로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시대가 히어로를 만들고 우리가 히어로를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시대에도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경제 대공황도 아니고 전국시대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닌데 말이죠. 그만큼 힘들다는 뜻일까요? 사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저마다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아직도 21세기에 전쟁하는 나라가 있고, 여전히 물난리는 해마다 찾아오고, 한국 학생들은 치열한 입시경쟁에 스트레스를 받고, 누군가의 삼촌은 취업 걱정, 취업이 되고 나서도 고용불안에 언제 잘릴까 걱정, 자영업자는 매달 오르는 인건비와 임대료 걱정, 신혼부부는 치솟는 집값과 대출이자 걱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북극곰이 사는 곳을 걱정하는 거보다, 지금 당장 이번 달 카드 값이 더 큰일이죠.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지쳐있습니다.. 어쩌면 히어로 무비에 열광하는 게 잠시나마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영화 같은 일들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영화 관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히어로들은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보다 더 힘들고 지쳐있는 우리를 구하러 매년 어벤저스는 해마다 명절마다 돌아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슈트를 입고, 고층빌딩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악당과 싸웁니다. 중간에 다치거나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해피엔딩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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