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by 제이티

기자의 문장은 사건·사고에서 멈춘다. 어디에서 불이 나 몇 명이 죽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 수감됐다. 반면 당사자의 삶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이 방금 무슨 일을 겪었든, 살아 있는 한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손톱을 자르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야 하며,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다가 언젠가는 '그 일'에 대해 설명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어떤 끔찍한 사건이나 천재지변 뒤에도 '산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삶은 그렇다 계속된다. 누군가에겐 한낮 점으로 기억될 테지만 당사자에게는 선이다. 그렇기에 한낮 점을 기억하면서 인생을 산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그게 슬펐던 좋았던 간에 잊지 못할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삶은 흘러가야 하는데, 여전히 그 점에 멈추어 서있으니 말이다. 이루지 못한 꿈과 불안한 내일보다 다시 못 올 그때의 순간을 가슴에 새기며 심지어 잊히려고 하면 더 또렷한 기억을 안고 사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인간의 감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행복한 순간에도 이내 불안하고 불안한 순간에도 행복을 꿈꾼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라 생각하지만 좋으면서도 싫은 순간이 찾아온다. 아까까지는 아파서 기운 하나 없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약발이 드니 뭐 좀 먹고 싶고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도 간사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마음의 무의식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과연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꿈을 이루면 과연 행복할까? 여행지를 도착할 때보다 짐 싸기 전 비행기 타기 전 설렘이 더 큰 것처럼 막상 꿈을 이루면 다음 꿈은 빨리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은 게 다음 스텝이 아닐까? 덧없다는 말과 의미 없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다가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지 쓰잘데 없지만 한 번은 해야 할 고민에 빠져든다. 이른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사는 게 의미 없고 낙이 없으니 헛된 희망과 야망을 버리라는 말일까? 아니면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살아있을 때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일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루지 못한 꿈에 아쉬움과 정작 이뤘다고 생각한 꿈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고 공허함이 밀려온다. 심지어 최선을 다한 날, 인정과 칭찬이 가득한 날 더 밀려온다면, 분명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당이 떨어진 게 아니라 방향을 잘못 잡고 노를 저어 가는 기분이 듣다.


좋았던 순간 끔찍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밤이면 그렇게 괴롭다. 좋았던 순간을 그 달콤함을 기억하는 게 더 괴로운 듯하다. 다시 올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눈 감은 날 내 눈앞에 떠오르는 잔상들 가운데 행복했던 기억이 많으면 오히려 더 씁쓸할 거 같다. 차라리 눈도 귀도 마음도 없는 돌멩이가 부럽다. 아니면 컴퓨터 처럼 재부팅이나 리셋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새로운 오늘을 사는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기술같은게 나왔으면 한다.


태어난 김에 산다고 하는데.. 심지어 태어남 탄생도 나는 선택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할까? 이렇듯이 살다보면 선택은 그저 오늘 저녁메뉴정도에 갇혀 버렸다. 그닥 할 수 있는게 없거니와 선택하면 안 되는 이유가 수백가지다. 아니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과 열망도 두려움과 익숨함앞에서 자고 일어나면 혹은 술에 취해 깨면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그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답을 찾으러 누군가는 히말라야를 가고 사하라를 간다고 하는데.. 정말 거기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삶에 대해 질문이라도 던질 수 있을까? 또 막연한 미디어가 만든 마케팅일뿐일까?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자체만으로 답도 안 나오거니와 남들이 읽으면 미친놈이라 생각하기 쉬운 글이 나온다. 횡설수설..


내 마음처럼 내 글처럼 내 인생처럼


모든게 뒤죽박죽 횡설수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힌다.


잠 못 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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