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미
친구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분명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 적당한 놈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2학년 때까지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강제 우정으로 어느 정도의 친구들이 있었고, 1년 후까지 유지 가능했다. 하지만 4학년이 되자 나의 모든 생각이 뒤집혔다. 하나둘씩 아이들은 내 곁을 떠나갔다.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났을 때는 더욱 친한 친구들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조차 나를 떠났다.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누구나 들어본 바로 그 방법 ‘세계 최강 마이쮸’를 실현시켰다. 괜찮은 것 같은 친구들에게 달라붙어 인사를 나누고 마이쮸까지 나누어주고 나니 이제 더 이상의 걱정은 불필요한 존재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 듯 마이쮸를 잡아먹던 친구들은 또다시 먹기 위해 나에게 달라붙었고, 나는 내가 같이 다니고 싶은 아이들만을 골라 친구가 되었다. 그때만큼은 내가 절대 권력자가 된 것 같았다.
나는 힘들게 친구를 사귄 만큼 그들의 존재가 소중했다. 못난 점이 보여도 참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만 나는 이미 내가 선택한 아이들에게 호구라는 말을 들어야만 하는 처지였다. 친구가 되는 시작을 마이쮸로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내 친구들은 여기저기를 모두 돌아다니며 이거 사줘, 저거 사줘라는 말을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때는 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불안했다. 엄마 앞에만 가도 오늘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죄다 털어놓는 나조차 내 걱정거리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 내가 말하는 이야기들을 귀 담아 들어주고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모두 내 곁을 떠나버렸다. 그렇지만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내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상담사이다. 티브이를 틀게 되면 우리는 오은영 작사와 같은 상담사들이 유명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까지 해주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그 상담사들이 하는 말들과 전하는 마음들이 사실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은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덕분에 방향성을 잡게 되었어요.”등의 말들을 툭툭 내뱉곤 한다. 항상 기쁜 표정으로 녹화를 마무리하지만 그들의 고민은 해결되었을까?
처음에는 나도 당연히 그들의 고민이 해결되었을 줄로만 알았다. “와, 오은영 박사는 마법사인가? 사람 고민을 그렇게 쉽게 해결해주고!” 나는 핸드폰을 가지러 곧장 달려가 내 베프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 고민 하나만 들어주라!’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진지하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이 한마디였다. ‘너의 새로운 모습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나는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티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홀가분하다는 느낌보다도 ‘내 고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나?’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다. 그런 이유로 나는 상담사를 싫어했다. 상담사는 마법사가 아닌 나를 괴롭혔던 고민을 당연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 거부감이 드는 사람을 내 고민을 지워주는 괴물로 바꿀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너의 이야기를 먹어줄게>의 화괴는 고민 상담부를 설립해 아이들의 각기 다른 고민들을 먹어준다. 서로 다른 고민을 갖고 상담부를 찾아왔지만 모두 자신들의 고민에 대한 뿌리를 뽑고 싶어 했다. 그들은 트라우마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상담부를 찾아왔겠지만, 역시나 그렇듯 상담실은 산을 오르는 데 도움을 주는 경사로일 뿐이었지, 나를 정상으로 업고 가줄 사람이 아니었기에 홀가분한 마음을 갖게 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남에게 털어놓기를 바란다. 상담사는 남의 고민을 비밀로 지켜줄 의무가 있다. 진심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오늘도 상담실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똑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