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훈 11월 25일
니체라는 철학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나가는 사람을 위버맨쉬라는 말로 표현했다. 위버맨쉬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알아나갈 수 있다. 그리거 마음의 여유가 있고 어린아이처럼 바닷가에서 놀다가 장난감을 잃어버려도 바다가 돌려주는 조개껍질을 가지고 놀면서 웃을 줄 안다. 위버맨쉬는 우리말로 초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인이란 한 곳에 고정되자 않고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을 극복하며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일반인과 초인의 차이라면 일반인에겐 끝이 있고 초인에겐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삶을 다람쥐 쳇바퀴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아닌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듯한 삶을 말이다. 하지만 모험을 떠나는듯한 삶도 계속 반복되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린 또 새로운 삶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한계에 도달했을 땐 누구보다도 슬퍼한다. 하지만 노력을 하면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직업을 여러 개 가지는 것이다 물론 직업이 많으면 그만큼 더 일을 해야 해서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자유가 아닌 새로운 삶이다. 힘들면 힘들수록 얻는 게 많아지고 행복도 많아질 것이다. 초인은 이런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행복의 기준은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를 행복의 조건으로 꼽는다. 물질의 풍요는 육체의 쾌락과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도 상대작인 것이기에 큰 부자의 앞에선 스스로 빈곤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불행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도 집에서 게임 아이템을 사고 싶어서 부모님께 부탁을 했는데 부모님이 좋다고 하자 하나 더 사달라 해서 그 기회는 날아갔다.
이렇게 지나친 욕심은 불행을 가져온다. 초인은 이런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마음의 행복과 몸의 행복이 조화를 이룰 때 사람은 진정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내가 처음에 원한 건 게임 아이템 1개였다. 부모님이 그것을 허락해 주셨을 때 이미 난 기뻤다. 1개만 사도 난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지나친 욕심을 가진 것이다. 내가 초인이었다면 “감사합니다”하고 게임 아이템을 받았을 것이다. 난 아직도 그 일이 후회된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한번 하면 다신 할 수 없는 진짜 인생게임이다. 게임에서 한번 죽고 다시 할 수 있는 것도 못한다. 1번의 게임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 학교생활부터 죽는 순간까지 말이다. 만약 인생을 사는 게 힘들다면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은 삶을 사는 게 어떤가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 위버맨쉬의 마음으로 말이다.
새로운 삶을 사는것같은 삶은 또 다른 나를 사는 것이다. 비참한 내가 있다면 행복한 나도 있는 것 이다. 진정한 나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위버맨쉬의 마음으로 살수 있는 것이다. 한계에 도전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바로 위버맨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