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할의 진실 -책 죽이고 싶은 아이

by 제이티

백지원

22.11.30

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라도 된 듯이 기세 등등해질지도 모르겠다. 인생 네 컷에 찍혀 있는 친구들이 전부 나를 믿는다고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전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기 위해 고데기로 머리카락을 한 움큼 씩 쥐고, 눌렀다 땠다를 반복하며 실컷 예쁜 척하는 사진일 뿐일 터이다.


한참 학교에서 속담이 써진 종이를 선생님이 나누어 주시며 밑에 뜻을 쓰고 제출하라는 말씀 때문에 우리는 하루 종일 앉아서 사인펜과 종이를 붙잡으며 눈과 손을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금방 열기는 게 눈 감추듯 식어버렸고, 선생님이 하루 이틀만 사고 치지 않는 애들을 데리고 교사실에 계시는 동안, 애들은 금방 벌떡 일어나 서로 뜻을 공유하거나 난장판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나라도 빨리 끝내야지.’ 하며 다시 속담에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시야 양 옆으로 흐릿하게 친구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를 놀래 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몸을 바닥에 찰싹 붙이고 바닥을 보며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당연히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애써 무시하며 다시 집중을 하려는데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선심이라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친구에게 인기척 없이 가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지만 발걸음은 부자연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뭐 찾아?” 친구도 놀란 표정을 짓듯이 원래 큰 눈을 더 크게 벌려 눈알이 빠지게끔 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가 준 브로치를 고정시켜주는 작은 동그라미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작은지 물어보니 엄지와 검지를 겹쳐 그 사이의 틈을 좁히며 “한 이 정도”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작심삼일로 끝날 숙제인데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찾는 도중에 30분쯤 지났던가, 그때쯤 내가 도움을 요청한 친구가 와서 찾고 있던 브로치를 고정시켜주는 작은 동그라미를 주워서 내게 보여줬다. “이거 아니야?” 이 말이 얼마나 듣기 힘든 말이었는지 체감하게 되었다. 그대로 나는 그 동그라미를 어디서 찾았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는 “네 자리 밑에 있던데?”라고 말했다. 설마, 설마 이 말을 듣고 내가 훔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했는데 친구들은 이게 왜 네 자리에 있어?라는 말을 추린 추임새를 내뱉었고, 나는 계속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억울함을 어디다가 풀어야 할지 난감했던 공간은 교실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친구는 떨어져서 구른다면 지원이 자리에 갈 가능성이 잇다며 나를 감싸줬다. 만약 그 친구가 나를 믿지 않았다면 나는 속으로 말할 것이다. 숙제도 버리고 도와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그 숙제는 어차피 포기한 숙제였지만 말이다.


죽이고 싶은 아이의 작가는 주인공을 마치 억울한 척하는 가해자처럼 써 내렸다. 주인공의 친구는 당연히 가장 안타깝게 죽은 아이처럼 써 내렸고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을 바꾼 건 아닐까 싶었다. 인터뷰를 했던 사람은 말했다. “가난은 선이고 부는 악입니까? 죽은 사람이 선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악입니까?” 이런 전개는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우려먹는 설정과 비슷하다. 부자인 사람들은 늘 거지들을 괴롭히고, 늘 사람들은 거지들을 도와주는 내용. 책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앞 뒤 내용도 모르면서도 끼어들어 부자들에게 되를 덮어 씌우기 마련이었다. 어떤 사람은 거지인 서은이가 주연이를 기다리기 위해 늘 추우나, 비가 오나 일편단심 해바라기처럼 기다린다며 주연이가 협박이나, 집착을 한다며 없는 죄를 만들어 부풀리는데, 그 모습은 기사를 보는 언론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에게 욕을 가장 많이 받은 심판은 인스타 댓글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도 모를 만큼 많은 분들이 열심히 손가락을 타자 위로 올려 누르기 바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공을 찰 기회를 주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는 점에서 모두들 화를 죽이지 못하고, 댓글 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심판이 경기를 끝내버린 장면과 같이 손흥민이 우는 장면만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밤까지 꾸역꾸역 참으며 집 앞 편의점에서 산 캐러멜 팝콘을 먹으며 버티던 나도 목소리가 갈라질 만큼 소리를 질러댄 건 마찬가지이다. 하나 인터넷에 뜬 심판의 언론이 너무 심한 건 아마 인정해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프리킥을 10번이 넘을 만큼 찼지만 그중에 넣은 골은 시도의 절반조차 채우지 못했다. 당연히 심판은 그것을 알아챘을 것이고, 우리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라는 마인드로 열심히 행운을 빌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이미 예측했던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비수가 심판에게 꽂힌 것은 아닐까 싶다. 언론에서 심판을 탓하는 이유도, 부자만 궁지에 모는 이유도 결국 우리는 그에 반대인 대한민국이고, 그에 반대인 평민과, 거지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더 하나가 되고 말이다.


사람들은 더욱더 기사에 살을 붙이고 붙여서 결국 마녀사냥이 되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상관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우리 반에 어떤 친구는 소문에 의하면 아이들을 뒷담 했다는 얘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반에 있는 5명의 남자애들을 욕했다고 하지만 뒷담 얘기를 들은 아이는 고작 1명뿐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맨날 소문이 열 글자에서 열다섯 글자, 열다섯 글자에서 스무 글자로 늘어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되게 존재감이 없고, 음침하면서 마치 갑자기 ‘워’ 하고 튀어나와 나를 놀래 키는 유령 같았다. 당연히 그런 애가 어떻게 뒷말을 할까 했는데, 아마 몇몇 친구들은 그 소문을 믿고 있는 것도 같았다. 또 당사자들의 표정은 때리고 싶은데 때리지 못해 열불이 나버린 표정 같았다. 걔네들은 나를 팔걸이로 쓰기 쉬운 키를 가지고 있어서 한 번 걸리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다른 애들은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걔 진짜 그랬데?”라고 물어본다. 낸들 아나 싶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가끔씩은 애들이 소문을 떠받들어 주니 나도 계속 궁금해졌다. 선생님도 이 소문이 들렸는지 갑자기 수업이 끝나기 전, 말하셨다. “친구가 말한 말에 반응조차 하지 마세요, 오히려 알리는 것이 더 독이 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벌써 4,5개월 지난 일이지만 모두 그 친구를 보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그 말을 모아 보면 소문을 내고 난 후의 뒷말보다 소문이 나지 않는 지금의 뒷말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이 꼭 진실이어야 벌을 받는다는 것은 배우지는 못했다. 아무리 8할이 진실이고 2할이 거짓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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