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by 제이티


5학년 1반 김도은


열차 탈선 사고로 127명 중 68명이 사망했다. 그 열차엔 누군가의 자식이 타고 있고, 누군가의 애인이 타고 있었다. 네모토와 히구치는 어릴 때부터 친구로 애틋한 우정을 가지고 어른이 되었다. 둘은 어느 날 우연히 어느 한 식당에서 마주치게 되고 서로를 마주 보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밥은 잘 먹고 있니?라는 말로 대화를 오고 가게 된다. 어른이 된 후부터 각자의 삶을 자신이 책임져야 했기에 서로를 신경 쓰긴 무게가 버거웠고 결국엔 헤어지게 된다. 그러다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으니, 할 말이 없을만하다. 네모토는 히구치가 소꿉놀이 친구로 보이지 않고 여자로 보였다. 히구치도 네모토가 남자로 보였던 건 마찬가지이다. 둘은 만난 지 하루 만에 연애를 결심한다.


그날, 네모토와 히구치는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네모토가 오전 10시 44분에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러던 중 기차가 탈선했다. 그 기차 안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수 몇 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었다. 안타깝게도 네모토는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히구치는 네모토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애원했지만 이미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충격받은 히구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삶에 기준이 되는 사람이, 내 삶에 중심이 되는 사람이 작별인사 하나 없이 가버리다니. 그건 내가 죽은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었다. 게다가 네모토와 히구치는 서로 결혼할 사이였다. 결혼을 앞두고 네모토는 떠났다. 히구치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 같다. 나는 작은 생명은 하나 보냈지만 히구치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생명을 보냈다. 비교도 할 필요 없이 한눈에 보이는 양차이다. 나는 아직 큰 생명을 보내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슬픔. 이 밖의 여러 가지 감정들로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가장 먼저 밀려오는 건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그 밖의 감정까지 끌고 온다. 외로움, 분노, 안타까움. 모두 슬픔과 연관되어 있다. 이 감정이 다른 감정보다 더욱 영악하고 얄미운 잔인한 감정이 아닐까.


그렇게 히구치가 슬픔이라는 혼란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유령 기차’라는 소문이 퍼진다. 사람들의 말로는 기차 탈선사고가 난 뒤로 그 기차역에서 새벽 1시가 되면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서 타고 있는 유령 기차가 온다고 한다. 히구치는 당장이라도 네모토가 너무나 보고 싶어 그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거기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발견하고 히구치에게 교복 입은 여학생은 유령 기차의 규칙을 알려준다.


첫째,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기차를 탈 수 있다. 둘째,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소식을 알리면 안 된다. 셋째, 열차가 니시 유이가 하마 역을 통과하기 전에 어딘가 다른 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넷째,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만일 열차가 탈선하기 전에 하차시키려고 한다면 원래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이 네 가지 규칙을 지켜야지만 열차를 탈 수 있다. 히구치는 이 네 가지 규칙을 지키겠다고 명심하고 기차에 탄다.


나 같았으면 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보고 싶다 한들, 그 사람을 또 보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 보고 싶을 텐데 다시 얼굴을 봐봤자 혼란만 더 커지는 것이다. 살리지도 못하고 얼굴 한 번 보고 오는 건데 뭐 하러 타나? 나는 무섭고 다시 정리했던 것이 무너질까 봐 못 탈 거 같다. 교복 입은 여학생 말대로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고 아무리 살리려고 애를 써도 살릴 수 없다. 그런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보고 싶지 않다는 건 그동안 정이 참 많았고 질리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밝은 모습만 기억하려고 하기에 보고 싶지 않다는 거다. 보고 싶다는 것은 정이 많았지만 많이 오랫동안 사랑하지 못했다는 거기에 보고 싶다는 것이다. 보고 싶지 않다는 게 오히려 나쁜 건 아니다.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보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열차 탈선 사 로고로 순식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깊고도 큰 울음소리가 진짜가 아닌 가짜더라도 내 귓속엔 정이 많았다고 속삭이듯 들린다. 커다란 생명이든 아니었든 누군가에겐 미치도록 소중한 사람이자 동물이었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반복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이다. 이별은 언젠가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안녕이 있으면 “잘가”도 있기 때문이다. 안녕은 시작할 때 있는 말이다. 끝날 때는 잘가를 써야 한다. ‘안녕’을 쓴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작은 안녕이 정하지만 끝은 잘가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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