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범죄자들에게 관대할까? -책 최소한의 선의-

by 제이티

법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line)이자 최소한의 선(善)이라 한다. 머리로는 알겠으나 법은 우리의 분노와 감정을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것 같다. 연일 뉴스에 도배는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마치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을 비웃기라도 한 듯 솜방망이 처벌을 보면 혀를 쯧쯧차거나 역시 법은 강자의 편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돌리고 만다. 실제로 법은 지배층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이 함무라미 법전 시대도 아니고 고조선 8 조법 시대도 아닌데 이러한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있어도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법은 피해자 편을 들지 않고 가해자 편을 들까? 축구경기할 때 우리가 심판의 오심에 분노하면서 "심판 돈 먹었네" 말을 하는 것처럼 실제로 판사님은 돈을 드셨을까? 돈을 받고 범죄자를 구원해주는 변호사가 있으니까 반은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변호사들은 전직 다 판사이거나 검사였으니 말이다. 판사 입장에서 엄벌을 주거나 선처를 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이익은 없지만 '선처'를 하면 변호사에게는 돈이 된다.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처럼 거대 자본과 권력에 기대어 편승하는 악의 무리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범죄자에게 법은 더 관대할까?


책 최소한의 선의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법이 범죄자들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관대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범죄자들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이라고 법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존엄하다는 명제 아래 만들어져 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모기처럼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설령 모기보다 못한 존재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범죄자는 인간도 아니니까 죽여도 된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범죄자는 인권이 없을까? 그렇다면 그 기준은? 빵 하나 훔친 장발장부터 수십억을 횡령한 은행 직원과 수조 원을 횡령한 전직 대통령까지 어디까지가 인간도 아닐까? 가벼운 범죄는 봐주고 중범죄자만 처벌하자면 그 기준은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민주주의 사회니까 투표로 해야 할까? 물론 정치인들인 이 이슈를 놓치지 않고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겠다고 공약을 건다. 하지만 그 심판의 기준을 국가에 맡긴다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발상이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역모죄가 과연 꼭 '죄'가 있어서 끌려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반사 이익을 범죄자들이 누렸던 것이다.


예컨대 넷플릭스 소년심판에서 보다시피 지금의 청소년은 예전의 순수한 청소년이 아니다. 몸은 컸고 스마트폰에 멀리서 보면 성인과 다름없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양과 질을 봐도 성인 범죄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상황은 이런데도 법은 여전히 관대하다. 단순히 촉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연일 이슈가 되지만 왜 청소년의 범죄는 성인범죄보다 가볍게 다뤄야만 할까? 전전두엽이 완성되기 전 미완성인 상태로 충동적인 행위를 저지른 행위를 성인의 행위와 똑같이 평가하는 게 옳지 않다. 물론 청소년기라도 발달 수준은 제각각이지만 시스템이라는 게 개개별의 상황을 고려할 순 없으니 평균치를 코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 14세라고 했다고 하지만 이를 12~13세로 낮춘다면 그 기준은 또 투표로 해야 할까? 이는 정치인들의 표몰이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분노와 혐오는 지지율을 올리기 때문이다. 기준을 삶는대도 정확한 통계적 데이터와 뇌과학의 연구결과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소년범을 성인에 비해 낮게 벌하고 처벌보다는 교화를 해야 하는 이유도 간단히 말해 소년범이 더 교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엄벌에 처한다면 교도소라는 직업학교에서 피카추에서 라이츄 혹은 조커까지 진화해서 사회로 컴백한다면 오히려 그게 사회적 비용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러니 처벌보다는 교화가 사회의 안전과 평화 비용에 있어서도 더 나은 시스템이다.


공소시효 또한 방황하는 칼날처럼 15년 20년 100년이 지난 다음에 범죄를 처리한다면 거기에 따른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새로운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증거는 사라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몰비용을 포기하고 기회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든 법이 최대 다수의 행복을 보장하는 공리주의로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의는 한정된 자원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가해자는 10년 빵 살고 돌아와 버젓이 사회에 돌아다니는데 피해자는 숨어서 이사를 가야 하는 피치 못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따끔하게 엄벌을 처하면 어떨까? 그만큼 비용이 발생한다. 징역형이 길어질수록 교도소를 증설하고 예방 프로그램 및 교화시설 관련 인력 확충 둥 어마어마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거나 교도소 부지를 선정하려고 치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의로운 시민들도 '정의를 위한 세금'을 내기 싫어한다. 더군다나 내 집 앞에 교화시설을 더욱 말이 안 된다. 어째서 내 세금으로 벌레만도 못한 범죄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범죄자들을 예전 조선시대처럼 사약이나 유배 보내야 할까? 실제로 영국에서 호주로 범죄자들을 보냈지만 영국의 범죄율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엄벌을 처한다고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는다. 사형은 분명 또 억울한 죽음을 만들 것이다.


모기가 안 좋은 건 누구나 다 알지만 온 집안에 에프킬라를 뿌릴 순 없다. 멸종시키려고 한 대상이 모기아 아니라 인간이 될 수도 있기에. 모기가 어느 정도 없어지게 물구덩이를 없애고 방충망을 꼼꼼히 설치하는 정도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


법이 인간 사이에 최소한의 선의 라면 벌은 최소한의 악의다.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는 우리말처럼 교화가 훨씬 효과가 있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시원한 사이다 같은 답변을 기대했는데 고구마처럼 얹힌 거 같다면, 아무래도 법이 인간의 분노감과 정의감 감정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전한 법과 찝찝한 낡은 관습이 빨라지는 시대변화를 과연 담을 수 있을까?


인간은 분명히 존엄한데.. 범죄자들은 존엄할까?..

반대로 엄벌을 가하면 시원하긴 한데.. 과연 실효성은 있을까?


가치들은 충돌한다. 이럴 때는 애매모호 한 답변보다. 사람들은 선명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한다. 그런데 근본적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은 필연 사기꾼 아니면 표가 필요한 정치인이다.


해결을 하고 나면 또다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연옥이라면.. 분노와 욕설로 댓글을 도배하는 악플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라면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차가운 가슴이 필요할 듯 하다. 예를들어 '정의로운 세금' 말이다. 피카츄에서 조커까지 가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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