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미
내 친구 중에서는 특정한 아이만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항상 그렇듯,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달려가 예쁘다고 소리를 지른 뒤 쉬는 시간 내내 그 아이와 함께이다. 두 명이 모두 서로를 그 정도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우리 반의 독서 시간에 소음을 내 나의 뒷자리에 서 있게 되고 필사하는 나에게 와서는 “너 그거 전교 1등 하려고 하는 거지?”라는 말을 툭 내뱉고는 간다. 이런 빠른 태세전환이 누구에게는 불쾌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지 얘는 모르겠지…. 언제는 할머니 사진을 가리키며 나라고 하더니 또 다른 때는 내 사진을 보고는 귀엽다고 해준다. 예전에는 순간적인 기쁨이라고 느낄 수 있었으나 요새는 우리 반 남자애한테 등짝을 맞는 편이 그보다도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그 아이의 말도 안 되는 말에 반응할 때의 표정을 기억할 수 있다. 나 스스로도 무섭다고 느꼈던 표정을 내가 1:1로 직면하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이 나는 걱정된다. 나에게 친구란 존재는 소중하다. 쉬는 시간에 모두의 책상에 각자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나는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이 상상되는 것이 1차 충격을 받게 만드는데, 그 현실을 직면하는 2차 충격까지 받고 싶지 않다. 하루에 40분만이라도 대화를 나눌 친구를 찾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에메랄드 빛 가면을 만들었다. 에메랄드처럼 사람들이 서로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과도한 칭찬이 나의 습관이 되었다. 막상 쓰게 되니 숨 쉬기 좀 답답했지만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내 모습을 보니 유명한 연예인과 동급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하루에 몇 십 개씩 칭찬을 친구들에게 모두 만들어 주고 나니 가족에게 만들어 줄 칭찬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렇게 과도한 칭찬을 하면서까지 친구를 만드는 것이 학기 초 우리 반 아이들의 트렌 드였달까. 그런데 역시 5학년은 무엇인가 달랐다. 학기 중반이 되더니 아이들이 하나씩 그들의 나사를 풀고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수업 시간에 동물 소리를 내고 그렇게 크게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수 있는 아이들은 아마 우리 반밖에 없을 것이다. MZ 다음 세대인 나, 김아미가 트렌드를 놓칠 일은 없다. 주황색 가면을 사고 나타난 내 못을 약간 풀었더니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내일이 기다려졌다. 조용조용했던 내가 적극 활발해진 척하니 남자애들이 나한테 와서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너 4학년때까지는 진짜 모범생이었는데.” 웃기는 이야기였다. 4학년 때의 모범생 이미지도 결국은 내가 용돈 주고 산 내돈내산 모범생 마스크일 뿐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나니 느낀 것이 하나 있다. 한 번 손에 움켜쥐게 된 마스크는 절대로 상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가면 한 번 써서 남을 속일 수 있었다는 점도 그 근거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우와!”하며 감탄하는 그 순간 느꼈던 쾌락을 나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슴 깊이 새겨진 ‘권력’, 그 두 글자는 나를 장원영과 동등한 계급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가면이다. 가족 앞에서도 “나는 무덤덤합니다.’를 표현하는 가면을 쓰게 되고, 친구에게도, 심지어 내 셔츠에 주스를 흘릴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우월하다는 감정이 무서운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나를 조종하는 것이 아닌 남이 나를 조종하는, 마치 내가 AI 로봇이 도니 것 마냥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남에게 우월감을 주는지, 열등감을 주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쐐기가 박히게 되었다. 그들은 내 가면에 열등감을 느끼고, 나는 그들의 가면에 우월감을 느낄 뿐이라는 것을.
가면으로부터 숨겨진 내 본모습은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언니도,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아신다는 우리 엄마도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길거리에서 갖게 되는 성격이 모두 다르니 말이다. 이것이 가면의 한계이다. 나조차도 내 진짜 성격을 모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손등에 큐알코드를 새겨 기계에 찍어야만 자신의 진짜 성격을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는 입으로는 모두 복면가왕 가면을 벗고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배운다. 그러면서 돈을 들고 가면을 사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의 본모습은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면은 오늘도 품절 대란이 되고, 사람의 얼굴에 씌워져 서로 마주 보고 다니니 말이다. 내가 ‘나’가 아닌 사람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