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말하는 진심

by 제이티

소선영

보정 어플을 처음 접했던 순간 내게 그 어플은 단순 어플이 아닌, 또 다른 세계 그 자체가 되어 주었다.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나는 연예인 버금가는 외모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새로운 세계가 아니고 무엇일까.


시크릿 쥬쥬와 디즈니 공주들의 인생 역전 이야기를 이미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뒤늦게 외모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사람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싸울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해 주셨지만, 신데렐라를 본 우리는 이뻐야만 백마 탄 왕자님이 나와 춤을 춰 준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만약 백설 공주의 미모가 왕자의 눈길을 끌 만큼 매혹적이지 못했더라면,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백설 공주와 왕자님의 전설적인 키스 신을 보며 우린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 만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길을 걷다가도 매력적인 남자나, 여자를 마주했을 때, 자연스레 딸려가는 고개, 나는 그것만큼 솔직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 코미디언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 있어 사람들의 관심과 이성의 눈길을 항시 생각한다고 말했다. 몇몇 이 들은 이 말에 곱지 못한 태도를 내 비출 수도 있지만, 난 꽤 솔직한 말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한계, 적정량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 적정량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늘 받아도 받아도 부족하다 느끼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니 말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 관심이라는 것, 그 하나 때문에 돌이킬 수조차 없는 노력을 한다.

두꺼운 가면을 쓰기도 하며, 거울 앞에서 자신의 외모를 이곳저곳 뜯어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지만, 돈 많은 건물주의 벤츠 바퀴가 한 번이라도 굴러가는 순간, 내가 그동안 쏟았던 시간은 그저 낭비가 되어버리고, 하늘의 끝을 모르고 높이 세워둔 성형외과에서 수십 번이고 얼굴에 칼을 대도, 태생이 아름다웠던 다른 이를 이기지 못한다.


통장에 표기되어있는 수가 조 단위인 사람도, 주먹만 한 작은 얼굴에, 지나가다가도 돌아보게 되는 이상적인 몸매를 가진 사람도 누구나 관심이라는 것을 받길 원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외모와 재력이 예선이라면, 성격은 본선이라고, 즉 외모와 재력이 되지 못한다면, 본선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층 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순간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당연한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가면 생활자’의 가면은 오직 형태만이 바뀐 채, 우리의 몸 곳곳에 침투해 번식해 나아가는 것만 같기도 하다.

책에서의 가면이란 외모만을 말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린 느낄 수 있었다. 외모가 차지하는 내면의 비중을 말이다. 우리의 가면이라는 것은 소름 돋을 정도로 간단명료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많은 모두가, 더 많은 가면을 지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면 아이들은 단 두 개뿐인 문을 향해 자신이 다른 이의 책상을 밀친지도 모른 채 뛰어간다.


옆집 동갑내기 친구에게 마지막 연기를 마친 뒤 집에 들어오자, 말 못 할 따사로움과 특유의 코튼향기가 느껴졌고, 그 속에서 함께 느껴지는 롱패딩에 배인 바깥의 거친 냄새와 그 냄새 탓에 방해받는 나의 코튼 향기에 입고 있던 롱패딩을 벗어던져 버렸다. 롱패딩을 벗자 비로소 느껴지는 해방감에 나는 돈 많은 백수라는 장래 희망을 이룬 것만 같았다. 부질없는 단체 활동과 왜?라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만 늘어놓게 만드는 과제,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줘야 하는 내 처지에 나는 맞지 않는 티셔츠라도 입은 듯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 마스크를 잠깐이라도 들춘 채 그토록 그리운 공기의 맛을 보고 싶었지만, 나는 스스로 더욱더 마스크의 끈을 꽉 조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욕심이었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내가 가진 매력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로 착각하던 때가 존재한다. 서투른 솜씨로 처음 가면을 만들어 맑은 얼굴 위에 썼을 때, 나의 가면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돈이라는 물질적 보상을 위해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무겁고 두꺼운 가면을 쓰신 어린이집 선생님께선 어떤 아이에게도 하지 않던 칭찬을 가면을 쓴 나에게 해 주셨다. 그때 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가면은 곧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관심이 주는 쾌락, 그리고 그 쾌락이 지닌 중독성은 엄청났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가면을 만들수록 나는 더 두껍고 완성도 높은 가면을 선보일 수 있었다.


맞지 않은 티셔츠가 내 몸을 조여 오면 조여올수록, 나는 더욱더 많은 관심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가면은 더 무겁고, 더 두꺼워졌으며, 더 정교해졌다. 그 무거운 가면을 버텨내느라 나의 목은 점점 땅을 향해 굽어갔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찌 보면 포기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저 관심을 구걸하기 위해 썼던 가면이, 어느새 사람들이 인식하는 내 얼굴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가면을 벗으래야 벗을 수가 없었다. 얼굴에서 가면을 떼어내는 순간 관심이 사라진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망감과 야유까지도 받아내야 한다는 것에서 나는 가면을 벗으려 들었던 손을 도로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때론 나에 대해 가장 잘 안다 생각했던 나조차도 나의 ‘진짜 얼굴’을 헷갈리곤 한다. 7 번째인지, 2번째인지 이제 나조차 가늠할 수 없다. 많은 가면을 얹은 채 가면으로 대화하고, 가면의 얼굴로 관계를 형성해 나아간다. 때론 그 사람의 말이 진심인지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가면이 친구를 사귀는 동안 진짜 나는 두려움 속에 갇혀있다. 가면에 가로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똑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진심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망설이고 끊임없이 가면을 만들고 만든다.

우리의 불행은 가면에서 시작된다.


과도한 욕심이 낳은 가면들 중, 하나라도 잊어버리거나, 깨져버리는 순간, 그것이 그저 가면이었음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그렇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가면을 들킨 이를, 가면을 쓴 자가 비난하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들었던 말들, 그리고 맺었던 관계들, 그 속에 진심은 존재할까? 쉬어지지 않는 숨, 그리고 굽어만 가는 목, 모든 것이 좋지 못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슬픈 것은 가면을 벗은 나를 나조차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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