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티 May 09. 2020

나의 시간은 지금 몇 시일까? -책 시간을 파는 상점-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는 영화 “어바웃 타임” 드라마 “고백 부부”처럼 과거나 미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그런 뻔한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다르게 그런 판타지를 다루는 내용이 아니었다. 나의 기대와 염려를 불식시키며 소설은 속도감 있게 한 장 한 장 넘어가기 시작했다.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름: 백 온주

직업: 고등학생,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

ID: 크로노스 (시간의 경계를 나누고 관장하는 신)
온조는 온라인 카페 '시간을 파는 상점'을 운영하는 고등학생이다
첫 번째 의뢰는 ID 네 곁 에로부터 온 훔친 PMP를 제자리에 돌려놔 달라는 것,
두 번째 의뢰는 ID강토 로부터 온 할아버지와 '맛있게' 식사를 같이 해달라는 것,
세 번째 의뢰는 ID 들꽃 자유 로부터 온 한 달에 두 번 아이들에게 편지를 배달해 달라는 것이다.


 10대 여자 주인공 온조라는 아이가 갑작스러운 소방대원인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조금이나마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알바를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바를 통해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느낀다는 설정이 너무 흥미롭고 신선했다. 역시 돈을 벌어봐야 철이 든다는 말을 백 번 공감하면서, 공부하기 싫은 10대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꼭 알바를 권하고 싶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온조의 머릿속에 “시간이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 생각의 끝은 그녀를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이라는 위험천만한 벤처사업으로 이끈다.


주요 세 가지 의뢰를 받으면서 온조는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 누군가의 역할과 책임을 대신하면서, 시간의 여러 가지 의미를 깨닫는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단순히 심부름센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소녀 사장은 본인만의 기업가치를 내세워 의뢰인의 부탁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의뢰를 통해 시간이란 한 순간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누군가에게 흘러가는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돌이 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점도 느낀다.



 “시간은 가장 길면서 가장 짧은 것”


이 한 줄이 소설의 모든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하다. 소설 속의 손자를 대신해 식사해주는 의뢰를 부탁받으면서 온조는 강토 할아버지랑 식사를 같이한다. 강토 할아버지는 식사할 때는 말을 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핸드폰과 같은 기계를 멀리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담담하게 자신의 가정사를 소녀에게 털어놓는다.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정작 자식들에게 배신당한 스토리를 말이다.


그러면서 건네는 대사 “시간이 나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


온조는 시간 단위로 돈을 버는 알바의 시급을 통해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돈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면, 강토 할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시간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깨닫게 된다.


바로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



크로노스 대 카이로스


크로노스의 시간이란 '객관적 시간' 인간들이 시계라는 것을 만들어내서 쓰고 있는 표준 시간이라면, 카이로스적인 시간이란 그렇게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시간의 개념을 벗어난 '주관적 시간'이다.


시간은 빨리 가기도 하지만 늦게 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활용하고 가치 있게 보내는 건 다르다. 가령 아이유의 노래 중에 “금요일에 만나요”라는 노래가 있다. 이 번주 금요일에 약속을 잡고 만나자는 노래 속에


‘온종일 내 맘은 저기 시곗바늘 위에 올라타 한 칸씩 그대에게 더 가까이’


라는 가사가 있다. 지금 아이유의 시계는 1분이 1초일까? 1초가 1분일까?  사랑이 시작된 연인에게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길지만,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가는 연인에게 있어서 1초가 1분일 것이다. 시간이 이처럼 달콤하고, 가혹하다. 분명 똑같은 시간이지만 말이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은 언제 들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거나 함께 하고픈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시곗바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 시간과 공간에 집중하고 몰입했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난 후 기억에 남아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반면, 시간이 안 간다는 느낌이 들 때는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거나 함께 하기 싫은 사람들과 있을 때 시계를 자꾸 쳐다보게 된다. 주어진 시간은 똑같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있는 반면, 외롭고 지루한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말을 하고 있을 때 정확히 말을 주고받을 때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는 느낌이 든 적이 있다면, 분명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낀 게 확실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시간이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말을 주고받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귀로 듣는다는 행위를 넘어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고, 웃음소리가 반복되면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날의 음식의 맛과 코에 들어오는 찬 공기마저도 머릿속에 기억된다. 심지어 샴푸 냄새와 양말 색깔까지 말이다. 3년 만에 만난 친구가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다면, 그 만남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대변해 주고 있다.  3년이라는 숫자가 가리키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어떠한 의미도 주지 않는다. 첫사랑을 못 잊는 것처럼,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을 못 잊는 것처럼, 시간은 선이 아니라 점으로 기록된다.


 반면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고, 시간이 가지 않는 것도 말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티브이를 켠다거나,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카톡 할 상대를 찾는다는 것은 말할 상대가 지금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의미를 넘어  같은 시간 공간 분위기 속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이자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다.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처럼 말이다. 외로움을 느낀 다는 말은 크로노스의 시간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 시간이 그냥 의미 없이 흘러가는 느낌이 들고, 어제가 오늘 같다면 누군가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시계 바늘이 정지된 느낌 혹은 우주에서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그런 기분이 든다면 시간을 홀로 말 없이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괜히 교도소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이 독방인게 아니다.


결국 사람은 대화를 통해 시간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연결됨을 느낄 때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나마 잡을 수가 있다.


또한 시간은 몸을 움직일 때 흘러간다. 정신없이 바쁘다 보면, 벌써 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킨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시간을 보내면, 배꼽시계는 반응하지 않는다. 하정우의 걷는 사람 책을 보면 특별한 일이나 고민이 있다거나 할 때 그냥 걷는 다고 한다. 나 역시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러닝을 한다. 걷거나 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머리가 맑아진다. 시간이 잘 가면서 꽉 찬 하루를 보낸 느낌이 든다. 하물며, 하늘을 봐도 선명하고, 새소리까지 명확하게 들린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러닝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아침을 두 번 보내는 것처럼, 1분과 1초가 한 걸음 한 걸음에 새겨지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군대에서 행군은 그렇게 시간이 가지 않았다. 똑같은 행위지만 내가 몸을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는 것이 그 “자유의지” 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헬스장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동작과 논산에서 조교랑 함께하는 동작이 분명히 같아도 다른 것처럼


정리하자면 시간이란 말을 통해 연결되어있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몸을 움직일 때 흘러가고,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자가 되지는 못한다. 매 순간 의미를 찾으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고 싶은데 말이다. 어쩌면 시간을 분초 단위로 조각내어 철저하게 계산된  크로노스의 시간이야 말로 생산적인 결과물을 낳아야 하는 이 시대 꼭 들어맞는 신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은 금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다.” 등의 속담과 격언은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낭비 없이 반드시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쓰는 게 미덕이라 가르친다. 나 역시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게 낭비라고 생각하지 그것이 휴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분명 열심히 살아왔는데 전혀 남는 기억이 없다. 마치 강토 할아버지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자신의 부인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는 자식들을 보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게 시간을 “의미” 있게 생산적으로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할 때도 이 것이 나를 위한 “투자”인가 돈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시간이라 생각할 때만 몸을 움직였는지 모른다. 시간을 돈으로만 계산하며 살아왔다는 게 어쩌면, 당연하면서 슬픈 사실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반드시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성과가 나와야 된다는 믿음은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지, 내가 시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다. 언제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항상 “계획”과 “일정”이라는 게 존재한다. 하물며 아이들의 방학생활 계획표도 절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그 “계획”이라는 것이 지켜질 리가 만무하다. 그러면 다시 수정하고, 문제점을 찾고 새로운 계획을 한다.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따라서 지금 공들이고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 결과가 좋지 않다고 무의미한 게 아니다. 권선징악 혹은노력과 성공, 계획과 성과 등은 시간이 지난 후 인간이 그럴듯한 법칙을 갖다 댄것에 불과하다. 일기예보가 항상 맞지는 않는다.


따라서 과정 속에 내가 순간순간을 즐기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을 했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면 남들이 뭐라라든 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만약 미래의 좋은 결과를 위해 지금 괴로운 과정을 버티고 있다면,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 과정의 시간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시간은 다르다. 분명 아버지는 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에 남는 게 늦게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장면만 기억에 남듯이 말이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만나는 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는 게 현명하다. 먹고 싶은 음식은 먹고 싶을 때 먹어 야지, 나중에 먹으면 그 맛은 느낄 수가 없다. 그때의 공기와 나중의 공기는 다르기 때문이다. 온조의 아빠처럼, 강토 할아버지처럼 나중이란 어쩌면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둘 다 가족들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했지만 그들에겐 미래는 없었다. 시곗바늘은 그렇게 한 칸씩 움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장 난 시계로 영원히 같은 시간을 가리킬 수 있다. 사람마다 시곗바늘의 속도와 배터리의 양이 다르다는 점을 모른 채로 말이다.


사람을 추억의 동물이라고 부른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건 어쩌면 인생이라고 부를 수 도 없다. 기억남을 만한게 없을테니까.


평균 수명이 100살이 넘을 거라고 하는데, 그 100년의 시간 동안 나는 카이로스의 점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떠오르는 장면이 분명 일하거나 돈 버는 장면이 아님에 틀림없다.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차와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남들은 나의 보여지는 모습만 알지, 내가 살아온 과정은 모른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기준에서 살아간다면 강토 할아버지처럼 시간을 놓치게 된다.


속 빈 껍데기처럼,

인스타 속 화려한 사람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좋아할만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시간을 멈추고 싶은 사람과 일이 지금 나에게 있는지 작가는 나에게 묻고 있다.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그런데  시간은 어떤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바쁘다고 하면서 필요 없는 시간들을

너무 많이 소비하면서 시간 없다고  거라는 것을 알았어.

다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그게 결국 행복하게   거라고 믿어.





 


https://youtu.be/4Z3_l4CNXMw









매거진의 이전글 표정이 없는 아이 -아몬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