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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18. 2020

표정이 없는 아이 -아몬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느낌 일까?  너무 막연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감정이 없는 상태를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달려오는 차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공포영화를 보면 오싹한 기분이 들고,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숨죽인 채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뇌는 먼 옛날부터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있는 건 우리 조상님들이 맹수를 두려워하는 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감정이라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느끼는 본능적인 부분이다. 소설 아몬드 속 주인공 윤재는 이렇게 누구나 가지고 있는걸 없는 아이다.
 
 표정이 없는 아이 한마디로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
 
할머니는 그를 괴물이라 불렀다. 남과 같을 수 없는 아이 하지만 남보다 특별한 아이 그래서 예쁜 괴물이라 불리었다. 주인공 윤재에게 벌어진 사건은 무시무시하다. 태어나기 전에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눈 앞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괴한에게 칼에 찔리는 사건을 목격한다. 아마 어쩌면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큰 사건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겪은 윤재는 묵묵히 견뎌 낸다. 묵묵하다는 표현보다 오히려, 무심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사람들이 돌멩이를 밝고 지나갈 때, 돌멩이는 아프거나 괴로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돌멩이가 자신이 밟히는 고통을 느끼거나 안다면 과연 돌멩이의 기분이 어떨까?
남이 무심코 뱉었던 한 마디에 상처 받았던 기억, 혹은 내가 던진 한마디에 상처 준 기억 때문에 자책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면 돌멩이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윤재가 부러운 건 상처와 죄책감 다시 말해 슬픔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잔인하게도 행복했던 기억보다 괴롭고 슬픈 기억을 오래 간직하도록 만들어 놓은 듯하다. 기쁨 두 개 보다는 슬픔 하나가 없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날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하지만 슬픔을 느낄 수 없는 윤재의 세상에서는 기쁨도 없다. 마치 봄날의 꽃의 색깔이 회색인 것처럼 그의 눈에는 꽃도 돌멩이도 그렇게 같은 색일 뿐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무던함이 부럽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차마 이 글에서도 쓸 수 없는 부끄럽고 괴로운 기억은 의도하지 않게 이따금씩 밤에 잠 대신 찾아와 두통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비도 오고 햇빛도 쨍한 게 인생이라는데 가끔은 날씨도 시간도 느낄 수 없는 터널 속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괜히 가수 지코의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는 “아무 노래”가 차트 1위를 달리는 게 아니다. 그만큼 감정이라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눈”과 같아서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눈”이 없는 윤재는 차가운 쇠떵어리 로 만들어진 로봇과 같다.
 
눈물도 웃음도 없는 그런 사람.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사람
 
세상은 그런 윤재를 가엾게 바라볼 뿐 친절하지는 않다. 평범하지 않은 그에게 평범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잔인한 것도 없다. 할머니와 엄마가 끔찍한 사건을 당할 때 거리의 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했듯이, 평범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가족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아이 그렇게 소문은 무성하고 커져만 갔다. 윤재의 할머니는 집단생활에서는 언제나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미운 오리 새끼에겐 친구는 없었다.
 
평범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 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직업 졸업 괜찮은 직장 튀지 말고 일맥상통하는 것
 
모두들 평범이라는 단어를 하찮게 여기지만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어려운 걸 꼭 해야만 인싸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특별하게 태어나 평범해지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러한 평범하게 살려고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사실 아무도 평범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윤재처럼 솔직하게 특별함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마치 밖에 나갈 때 사람들이 안 쓰면 쳐다보니까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마스크는 낳은 편이다. 왜 하필 겨울에는 검은색 롱 패딩을 입어야 할까? 그리고 남들이 가는 맛집을 꼭 가서 인증샷을 찍어야 할까? 일맥상통하기 위한 것일까?  평범이란 단어는 집 단안에서 주류 다시 말해 인싸를 의미한다.
거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섭고 불안하다. 언젠가 자기도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그렇다. 소문을 내거나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중세의 마녀사냥의 대상이 괜히 소수자나 장애인 이민자인 게 아니다. 권력자들이 체제 유지를 위해 공포 정책 때문에 마녀사냥이 자행된 게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바라만 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양 있고 서울말을 두루 쓰는 그런 표준어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곤이라는 친구가 찾아온다. 윤재랑 딱 봐도 다른 아이 감정을 넘쳐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욕이 90프로가 넘는 아이 , 첫인사가 바닥에 침을 뱉는 아이, 말보다 손이 앞서는 아이 어울리지 않은 두 아이..
이상하게도 곤이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윤재에게 자꾸만 찾아간다. 윤재가 아들 노릇 대역이라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는지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는 것을 새로운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무서움을 주려고 한 곤이와 무서움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 그 둘의 이상하고 특별한 만남이 이어진다.
하지만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닮은 점은 둘 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아이 감정이 과도한 아이
그리고 둘 다 정상인 세상이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사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둘의 만남을 이어 갈수록 윤재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곤이의 기분을 맞추려 말을 가려하는 곤이의 모습이 보였다. 왜 하필 둘은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지 느꼈다. 나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를 닮아 가려고 했나 보다. 오랜 세월 고통과 외로움에 익숙해진 곤이는 그런 슬픔을 더 이상 느끼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만 강해지려고 센 척을 하며 살아왔는데, 센 척을 할 필요 없는 윤재를 만나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친구 도라를 만나면서 난생처음 윤재는 설렘이란 감정을 느낀다.


“너 심장이 빨리 뛴다.”
내가 너한테 가까이 다가가니까 심장이 기뻐서 손뼉 치는 거야

아무런 편견 없이 다가와준 도라는 윤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건넨다.

“넌 착해 그리고 평범해 근데 특별해 그게 내가 널 이해하는 방식이야”

아마 나는 이 대사가 이 소설의 결정적 한 마디 같다.

 “표정이 없는 아이가 아니라 착하고 평범하고 특별한 아이”

윤재에게 다가온 두 친구는 사람이 죽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윤재가 아니라 심장이 빨리 뛰는 아이로 생각한 것이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이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사람을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지 않은가? 아니 첫인상을 보기도 전에 소문을 먼저 듣고 거르지 않는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가 보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지는 가 더 중요한 게 평범한 어른들의 세상인데 말이다. 차가운 로봇이 아니라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게 이렇게나 쉽고 간단한 건데 그게 참 어렵다.

이렇듯이 윤재는 친구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머릿속의 아몬드가 점점 자란다.

마지막 위험한 처한 곤이를 구하려 달려갈 때 그때의 윤재는 엄마와 할멈이 괴한에게 칼부림을 당할 때의 윤재가 아니었다. 분명히 아픔을 느끼고 있었고, 눈에는 뜨거운 액체가 흘렀다. 그리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평범한 어른들과는 다른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성장하고 차가운 세상을 향해 달려갔다. 도라가 달리는 것처럼 아무런 목적 없이 말이다.

 때로는 기쁘고, 숨이차고, 지겹더라도 순간을 느끼면서...


머릿속에 남는 키워드는 감정과 평범함 그리고 온기라는 단어다.
나는 윤재와 같은 조금 다른 사람에게 편견 없는 온기라는 것을 보낸 적이 있었는가?
어쩌면 그런 온기를 받은 적이 없어서 주지 못하는 것일까?

요즘같이 인종 세대 성별 종교 정치 혐오가 판치는 세상에서 아몬드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진심.”

이 세 마디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 책이 아니라 감정이 메마른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https://youtu.be/t5cF4bApP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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