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영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탓하는 법이 없었다. 자존감이 너무 높거나 한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외면하는 나름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잘 안 될 때면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오늘 지우개가 너무 더러웠네~” “색연필이 너무 오래됐네~ 바꿔야겠다.” 단순히 ‘내가 못 그 려서’인 뻔한 이유보단 다른 환경의 이유들을 어렵게 생각해 냈다. 장비 탓을 하니 필요 없는 물건을 자주 사고 다시 싫증을 내는 게 일상이었다. 사실 마음속 깊이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부족한 나를 인 정하는 건 두려우니까, 또 나를 발전시키는 일은 피곤하니까. 허전한 마음을 달 래미 위해서 나는 새것을 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로쟈와 소냐의 사랑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 다. 로쟈의 셋방은 한 명이서 살기에도 비좁고, 창문이 없어서 환기조차 안 되며 햇빛 한 줄기조차 들지 않는, 그야말로 독방이다. 그는 전당포 노파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가난한 것이라 믿었고 끝내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게 된다.
소냐는 반대로, 가족의 가난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지키 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지은 죄가 없음에도 온 세상의 벌이란 벌은 다 받 고 있었다. 로쟈와 소냐의 인연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로쟈는 죄를 지었지만 벌 을 받지 않는 자신과 달리 죄가 없어도 벌을 받는 소냐로부터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함과 함께 죄의식을 느낀 것이다. 소냐는 그에게 마치 한강처럼 동 떨어진 물줄기를 이어주는 역할이 된 것이다.
하지만 가난은 동요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조건 없이 사람을 밑바닥까지 끌 어내린다. 살인을 한 로쟈는 죄책감으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었고, 소냐는 아버 지의 술값을 대기 위해 창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깨끗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 해버렸다. 그것이 사회에 책임이든, 나의 책임이든, 내가 사회를 탓하든, 나 자 신을 탓하든. 심한 굶주림과 허기는 선택지 없이 자기 자신을 죽이게끔 만드는 것 같다. 로쟈의 셋방은 감옥이었다. 가난이라는 보이지 않는 죄로 인한.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슬픔과 억울함을 헤아려줄까? 아니, 애초에 내가 그들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전당포 노파는 어찌보면 벌레같은 악덕이지만 사실 꽤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가난’이라는 죄로 감옥에 갇힐 필 요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