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by 제이티

김아미


언제나 엄마는 엄마 또한 학창 시절이 있었기에 나를 인정한다 말한다. 내가 미처 내 억울함을 알리지 못해 당하고만 있다 잘려버린 지우개만을 가져올 때도, 실내화 한 짝을 어딘가로 던져 버린 친구 덕에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지 못했을 때도 나는 그냥 옆에서 고개를 끄덕여주었으면 했다. 때로는 도움이 되는 조언보다도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일이 도움이 되곤 하니까.


인간은 다양성을 존중받아야 해서 존엄하다는 말로 답을 해줄 만했다. 엄마가 학창 시절에 보았던 다양한 아이들을, 누군가는 가난해 어린 나이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새로 산 장난감을 가져오던 상황을.. 그것을 눈으로 직접 관찰한 덕인지 나의 다양성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 또래 아이들처럼 나도 나만의 개성이 드러날 뿐인데 친구들처럼 그저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여줄 수는 없는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편해야만 했던 사람은 엄마였지만, 편하다기보다는 편해야만 했다고나 할까.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내 말주머니 펼쳐지기보다는 엄마가 요구했던 하루에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했던 그 종이 한 장들의 모음이 차라리 나의 모습에는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다양한 자식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 맞추어 교육을 시키려는 다양한 부모님 또한 존재한다지만 그것은 너무하다는 말에 적합하지 않을까. 아무리 서툴렀다 말해보아도,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말해보아도 엄마는 내공이 있다. 세상에 나와 엄마를 보고 웃음을 걸어보거나 입꼬리를 내려본 적밖에 없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과 나도 딸이 처음이라는 말은 때로는 같은 출발선에 서있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엄마가 게을러서 다른 사람들이 바람을 날리며 옆에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같았다.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아이와.


엄마의 무릎 옆에 있을 때는 마냥 행복했다지만 지금은 어깨 옆에 있다는 이유인지 생각도 어깨만큼 따라왔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릴 때 내 앞에 존재하던 엄마의 모습이 내 시작이었기에, 지금도 그에 따라 행복할 나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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