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영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기억’의 대부분은 볼 수 없는 뇌 속에서 조작된 것이며, 나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굳게 믿기도 한다.
원자폭탄에 적잖은 피해를 입은 당시 일본인들은 종전 후 전쟁 도발의 책임을 일반 시민인 자 신들이 아닌 군부에 있다고 생각했고, 평화를 위해선 직접 눈으로 겪고, 귀로 겪고, 코와 피부로 겪은 전시의 고통과 그에 관한 기억을 수집해 이후 이 땅에서 살아갈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그 들은 평화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당한 피해자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탓에 역사왜곡이라며 이웃 국가들과의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일 본인들이 믿고 있는 사실과 이웃 나라들이 말하는 사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일본 은 ‘위안부’ 제도와 자신들 또한 누군가에게 남겼던 상처를 인정했다. 일본은 이렇게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갈대 같은 가를 추상적 문장이 아닌 구체적인 사례로 말하고 있고, 나는 내 기 억을 시력장애인이 점자를 읽듯 더듬어 보곤 한다.
엄마와의 잦은 갈등 속에 가장 많이 포함되는 단어는 단연 상처라는 단어고, 논리적이고 이성 적이게 행동하자는 교과서의 문구와는 다르게 어느새 상처를 더 많이 남기는 사람이 이기는 말다툼이 되어, 엄마와 나는 언성을 높였다. 엄마와 나는 본인을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던 일본처럼 지난 갈등 속에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끄집어내어 지금 내가 주는 가시돋힌 말을 합리화하곤 했다. 나는 맞았던 부위를 언급하고, 엄마는 나의 버릇없는 언행을 언급했다. 그 둘 뿐인 집 안에 피해자는 둘이었고, 가해자는 없었다. 이럴 때면 모양도 모르며 색깔 가지고 어떤 사물인지 유추하는 기억이라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화물 트럭에 타고 있는 듯 땀샘이 3배는 벌어진 듯 땀이 흘러내리며 불안해져 왔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과거의 기록은 기억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믿고 살아가는 기억이 아닌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리고, 목소리까지 담은 비디오를 보여준다면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내 생각만큼 착하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탓에 기억을 조작하는 것에 힘을 실었던 표정까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적나라하게 보여질 테니까.
우리의 기억은 유리하게만 기록되고, 그런 기억에 의지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 또한 든 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어떤 식으로 기록해야 할까? 일본을 욕하지만, 우리 또한 이순신과 세종대왕의 장점만을 기억한다. 가장 베스트는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과 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쫓을 수는 없기에, 우리의 현실은 엄마와 나처럼 선택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누군가의 손짓으로 인해 지 문이 가득 찍힌 역사고, 어쩌면 그 가득한 역사와 우리의 새치 혀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도 있는 노릇이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임은 이토록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구성했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그 밑 우리들 또한 이기적이어야 한다. 이미 권력자들은 이기적인 손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권력을 가질 힘조차 없는 우리들은 그저 그 손이 만들어낸 역사를 믿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