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영
매주 수요일은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기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이곳저곳 많은 상처를 입은 슬리퍼를 끌면서 손에는 더 이상 불필요해진 쓰레기들을 든 채 공동현관을 나섰다. 원래는 엄마와 함께하는 분리수거지만, 엄마는 바빴고, 분리수거 정도는 혼자서 해야 청소년이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벌써 봄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지나가지 않은 찬 바람이 내 살결을 만나려 했고, 난 그에 질세라 더욱 겉옷을 여매며 달리는 듯 걸었다.
플라스틱은 이쪽, 스티로폼은 저쪽, 수차례 허리를 굽히고 피기를 반복하며 어느새 나는 내 손에 많은 쓰레기들을 비워내는 데에 성공했다. 두어 번 손을 턴 뒤 잠시 빼 두었던 에어팟을 귀에 꽂고 또다시 106동을 향해 걷는 듯 달렸다. 내가 빈 깡통덩어리 들과 눈을 맞추고 있던 사이 가로등은 하나 둘 켜졌고, 어렴풋이 보이는 달은 나를 짝사랑하기라도 하는 듯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했다. 그 가운데 잠시 멈춰서 달을 보고 있자 하니, 내 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뱉었다. “집에 가고 싶다.. “
집은 따듯한 곳이다. 보일러를 키지 않아도, 암막커튼을 치거나, 담요를 덮지 않아도 오고 가는 입김 사이에 서로가 데워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을 따러 갔다가도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그곳이 바로 집이다. 그렇기에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확신으로 가득한 곳이어야만 한다. 언젠가는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 이곳은 따듯하다는 확신, 이곳에서의 나는 안전하다는 확신.
살면서 단 한 번도 약하거나 여리다고 생각하지 않은 내 몸이 아무런 이유 없이 처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 동그란 눈에서 눈물 한 방울 떨어질 것 같지 않다. 이미 몸에는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아주 소량의 수분만 남아있는 듯 입술은 푸석하게 굳어갔고, 속눈썹은 비빌 때마다 빠졌으며 승모근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아파왔다. 그럼에도 내 어깨를, 내 책상을 치고 달리는 저 아이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듯했고, 그 속에 잠자코 앉아있자 어느 순간부터는 나조차 나의 존재를 잊고는 했다. 내 이름이 불리면 내 이름이 무엇인지부터 떠올려야 했고, 그런 다음에서야 내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졸리다는 말로도 다 표현되지 못할 피로였다.
졸리다는 말은 어딘가 나태해 보였고, 힘들다는 말은 어딘가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 두 개의 표현을 하기에 나는 그저 4시간 잤을 뿐이고, 지금의 상태에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내가 누군지 생각할 힘조차 아껴야만 하는 상태였던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다는 말과 졸리다는 말 대신 집에 가고 싶다며 내 내면을 긁어 부스럼을 만든 뒤 상대에게 전했다. 바라는 것은 없었다. 공감도, 보상도, 치유도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고, 설령 바란다 한들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 마지막 남은 힘으로 스스로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었다. 다시 한번 내 이름이 불리면 그때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기 위해서 말이다.
진짜로 잠들어 버리기엔 아직 5교시였고, 다음은 이동수업이다. 잘 시간은 없었고, 불 꺼진 교실에 홀로 남아 도태될 시간도 없었다. 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나는 1등에게는 보이지 않을 저 먼 어딘가에서 겨우 추락하지 않은 어느 한 생명체였다. 짐이 되어버린 사지를 끌고 어딘지 모를 집을 애타게 찾으며 5층 음악실로 향했다.
인생은 힘들다. 지금의 내가 죽을 듯이 힘들어서 하는 말이 아닌 지금도 이렇게 힘들고 지루한데 6년 뒤엔 얼마나 더 힘들까를 고려해서 하는 말이다. 하루하루 하는 생각이 이 모양인지라 나와 내 친구에게 있어 무병장수는 어느덧 일종의 욕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불행한가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마치 소선영이라는 팔레트에 너무 많은 물감이 짜져 있어 그 물감들은 서로 섞여버렸고, 그 탓에 어떤 색인지, 어떤 색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지, 12가지의 색상은 하나로 묶여 아름답지 못했다. 내가 기쁜지, 내가 슬픈지 분명 이 둘 중 하나 일 테지만, 그 가운데에서 나의 감정을 유추하려고 할 때마다 넓다는 말로도 다 포용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우주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토성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각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채색 그 자체였다.
나의 집은 어딜까. 그토록 찾는 집이 있긴 한 걸까? 앞서 말했듯 집은 확신으로 가득 차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긍정적인 확신들이 집 안 액자로 걸려 있어야 하며, 그 확신들을 이불처럼 덮어야만 한다.
집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따듯함을 담은 집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 나는 집에 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집에 가고 싶다 말하고 있다.